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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Nov 11. 2016

12. 딥언더니아 - 3


 아직  캠프 신청 마감까지 이틀이 남은 관계로 그들은 먼저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지나가는 이들에게 겨우 묻고 물어 왕국에서 유일하게 존재하는 호텔을 찾아갔다. 소금궁전으로 가는 터널 근처에 위치한 이 호텔은 1층부터 5층까지 광장 벽면의 한 구획을 다 쓰고 있고, 1층 레스토랑을 통과해야만 호텔 로비가 나오는 특이한 구조였다.


 레스토랑의 근사한 바비큐 냄새에 혹한 수진은 이안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붉은 곱슬머리와 붉은 턱수염을 단 직원이 메뉴판을 들고 달려왔다. 그녀는 이곳의 인기 메뉴인 ‘꾸이꾸이’를 시켰고, 이안은 피 두 잔을 주문했다. 놀랍게도 여기서는 곧 개최될 캠프에 대비하여 뱀파이어를 위한 피를 미리 비축해두고 있었다. 


 '꾸이꾸이' 바비큐가 나왔다. 그녀는 그것의 외양을 보고 앉은자리에서 화들짝 뛰어오를 뻔했다. 가운데 배를 가른 커다란 야생 들쥐였기 때문이다. 얼굴과 수염까지 그대로 달려있었다. 그러나 한입 맛을 본 후 그녀는 순식간에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냅킨으로 입 여기저기 묻은 소스와 기름을 닦던 그녀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던 이안을 발견하였다. 그녀는 인상을 팍 쓰며 따갑게 쏘아붙였다.

 

“숙녀가 식사할 때 그렇게 쳐다보면 실례인 거 모르니?” 


 그는 시선을 거두어 잔을 한 입 들이켠 후, 무덤덤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숙녀가 그렇게 먹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특히 쥐고기를 먹는 숙녀는 처음이거든.” 


“배고픈데 어떻게 그럼. 우선 쥐라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근데 뭐, 이렇게 요리해 주니 맛만 좋네.”


“한 그릇 더 시킬까? 두 그릇도 시킬 수 있어.”


“됐어!”


 그녀는 입을 삐죽거렸다. 만약 지금 자신의 손에 실과 바늘이 있다면 당장 그의 입을 꿰매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위해 그가 따로 주문해둔 달콤한 옥수수 푸딩이 디저트로 나오자, 좀 전의 나쁜 생각은 사르르 사라졌다. 


 그녀는 빅락을 건넌 후로 한 가지 뼈저리게 느낀 인생의 참된 진리가 있었다. 

 바로 먹을 것이 있을 때 많이 먹어두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터지거나 도망칠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만약 그와 헤어지기라 하는 날이면 혹시나 굶는 사태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매우 평범치 않은 그와 매우 평범한 자신이 같이 지내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식사를 마친 그들은 레스토랑을 통과하여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문이 두 개 있었다. 오른쪽은 닫혀있고, 왼쪽은 활짝 열린 채 음식이 준비되는 부엌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닫힌 문에 걸린 석판에는 제일 위로 룬문자가 씌어 있고 그 아래에 ‘언제든지 빈방이 있는 호텔’이라 적혀 있었다. 


 이안이 호텔 문을 안으로 밀며 들어갔다. 딸랑거리는 종소리와 함께 작은 홀이 나타났다.

 홀 한가운데에 정사각형으로 구획 지여진 청동 틀이 놓여있고 그 안에 새빨개진 석탄더미가 산처럼 쌓여있었다. 더미 전체에서 뿜어 나오는 불꼬리가 천장을 향해 길게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불 주위로 기다란 나무 소파들이 서로 마주 보며 놓여 있는데 희한하게도 앉아있는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음울한 적막이 흐르는 홀 주변으로 그들의 발걸음 소리가 요란스레 퍼져나갔다. 별안간 비어있던 호텔 안내데스크 옆으로 직원 한 명이 뒤뚱거리며 나타났다. 그는 데스크와 맞먹는 높은 의자 위로 기어 올라가 그들을 내려다보며 앉았다. 그런데 귀찮게 시리 왜 왔냐는 듯 오히려 그가 손님들에게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객실은 어떤 것을 원.. 합니까? 딸꾹, 제일.. 비싼 거어랑 딸꾹, 보통 거엇..제일 싼 긋이 있습니다, 소온님.”


 코가 불그스름한 그 직원은 이미 만취상태로 발음조차 명확하지 않았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갈색 맥주가 찰랑이는 유리잔이 들려있었다. 이안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대답했다.


“제일 비싼 방으로 각각 주세요.”


 그 말을 듣자 직원은 놀랍게도 좀 전과 완전히 다른 태도를 보여주었다. 그의 충혈된 두 눈이 번쩍 뜨이더니 술잔을 재빨리 탁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래 서랍을 열어 안에 든 잡동사니를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오래 써서 솔이 완전히 눕혀진 칫솔, 구멍 뚫린 국자, 풍선껌이 엉켜 붙은 양말 한 짝  등등, 별의별 물건들이 다 튀어나와 데스크 위에 점점 쌓여갔다. 그는 녹이 슨 열쇠 두 개를 간신히 꺼내어 흔들었다. 


 그렇게 먼지를 턴 후 그가 뒤뚱뒤뚱 의자에서 내려왔다. 밑에서 램프 두 개에 불을 켠 후 손에 든 채, 전과 달리 매우 상냥하고 공손한 태도로 손수 그들을 안내하였다. 


 제일 비싼 객실들은 이층 복도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다. 문 앞에 도착하자 그는 각자에게 열쇠와 램프 하나씩을 건네며 편히 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깜깜한 복도 속으로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여기 호텔 맞아? 완전 지하 감옥 같은데.”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램프로 복도를 비춰보는 동안 그는 그녀의 방 열쇠를 열쇠 구멍에 넣고 돌렸다. 철컥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차갑고 묵직한 공기가 그들의 얼굴로 불어왔다.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그녀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그는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태어나서 이렇게 작고 간소한 방은 처음이었다. 난생처음 호텔방에서 자본다고 잔뜩 기대했던 그녀의 표정이 극도의 실망과 좌절감으로 팍 찌푸려졌다.


 침대라고 부르기에는 좀 그런, 긴 나무판자 하나가 회색 벽에 쇠사슬로 매달려 있고 베개와 쑥색 군용 담요가 그 위에 놓여있었다. 그 옆으로 바위벽을 안으로 둥글게 파서 만든 긴 탁자와 조그만 나무의자 두 개, 탁자 위 바위벽에는 정오의 태양 아래 옥수수를 수확하는 딥언더니아인들이 그려진 그림액자가 걸려있었다. 그것들이 이곳에 있는 물품의 전부였다. 우중충해서 들어가긴 꺼려졌지만 다행히 개인 화장실도 딸려 있었다.

 

 그가 나가자 그녀는 문을 잠그고 걸려있는 빗장을 여러 번 확인한 후 바로 침대에 누웠다. 침대는 딱딱하여 매우 불편했지만 참으로 피곤한 하루였기에 그녀는 금세 잠이 들었다.  


 이안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그러나 그의 키보다 작은 판자 때문에 영 불편하여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몸을 일으켜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을 안으로 파서 만든 긴 탁자가 눈에 띄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램프를 바닥으로 내린 후 그곳에 누워보았다. 몸을 안으로 깊숙이 밀며 틈새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생각보다 아늑하고 기분이 좋아졌다. 많이 피곤했는지 그도 평소와 달리 곧 잠에 빠져들었다.


"똑똑~똑똑~"

 

 시간이 꽤 흘렀나 보다. 누군가가 그의 방문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는 그냥 무시했다. 그러자 이번엔 발로 문을 차기 시작하는데, 문에 걸린 허술한 빗장이 쾅쾅 차는 압력을 버티지 못하여 튕겨져 나갔다. 문이 화들짝 열리며 수진이 안으로 또르르 들어왔다. 


“아니, 왜 그렇게 문을 안 여는...”


 말을 채 끝내지 못한 그녀의 심장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탁자 위에 얌전히 누워있는 그의 모습이, 마치 오래된 지하 카타콤 석관 위에 누워있는 썩지 않은 시체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품속에 안긴 것처럼 그는 매우 편안해 보였다. 


“이안!”


 그가 천천히 눈을 뜨며 소리를 꽥 지른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생각했지만 사실 그는, 그녀 뒤의 휑하니 열린 문에 시선을 고정시킨 것이었다. 그는 벌떡 옆으로 일어나 벽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뭔가를 줍더니 안내데스크로 씩씩거리며 돌진해갔다. 


 좀 전에 열쇠를 주던 그 술 취한 남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중후한 인상의 직원이 또렷한 정신으로 의자에 앉아있었다. 이안이 그의 앞으로 부서진 빗장을 던지며 매우 화난 표정으로 항의했다. 


“이봐요, 이것도 아무 소용이 없어요. 문이 여자 발차기 몇 번으로 그냥 열렸다니까요. 이 정도면 전혀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것 아닙니까? 호텔 객실이라면 안전해야지요. 그것도 여기서 최고 비싼 방인데.”

 

 그러나 그는 쩔쩔매는 반응 같은 건 아예 없이, '지가 알아서 할 것이지 귀찮게 시리 왜 이리 난리야.'란 표정으로 아주 황당한 대답을 내놓을 뿐이었다. 


“만약에 손님방으로 도둑이 들어오면요, 뱀파이어시니까 송곳니를 내밀어 무서운 표정을 지으세요. 그러면 십중팔구 줄행랑 칠 겁니다. 만약 악질이어서 계속 손님을 위협한다면 그의 피를 빠세요. 그것에 대한 사후 책임은 전적으로 저희 호텔에서 질 테니까요. 중요한 소지품이 있으면 저에게 맡기시던 가, 아님 속옷 안에 집어넣고 주무세요. 며칠 후에 열릴 캠프를 위해 호텔 신축공사까지 했는데 참가율이 너무 저조해 지금 당장은 수리할 여유가 전혀 없어요. 그러니 각자 알아서 대비할 수밖에요."


“그럼 저는 그렇다 치고, 얘가 (손가락으로 옆의 수진을 가리켰다) 자고 있는 방에 도둑이 들면 어떡합니까? 뱀파이어도 아닌데요.”


“정 불안하시면 이것을 빌려드릴게요. 도둑이든 누구든 문으로 들어오면 사정없이 던지라고 하세요. 도둑으로 잡혀 지하 용암 구덩이에 던져져 화형을 당하던지, 현장에서 맞아 죽던지, 다 똑같은 거 아닙니까? 여기서는 범죄자에 대한 형벌이 아주 엄격하거든요. 그런 놈들은 죽어 마땅하지요. 원하시면 하나 더 드리지요.”

 

 손에 딱 잡히는 조그만 도끼 두 개를 전해 받은 이안은 어이가 없어 잠시 그것들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직원은 할 말을 이미 다 해버려 더 이상 볼일이 없다는 듯 고개를 돌리려던 찰나였다. 정문에서 뭔가를 발견하곤 그의 인상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그가 침을 “퇫”뱉으며 고래고래 윽박질렀다.


“아무리 찾아와도 소용없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우린 다른 대장간에서 구매를 한단 말이야. 또다시 찾아오면 그땐 저 손도끼가 네 머리통으로 날아갈 줄 알아! 알아들었냐? 카할 캐이브.”


 듣는 순간 귀를 의심할 정도로 깜짝 놀란 이안과 수진이 동시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름의 주인공은 이미 문을 닫고 나간 후였다. 그들은 재빨리 광장으로 뛰어갔지만 이미 그는 군중들 틈에 사라진 후였다. 그녀가 핸드백에서 미할이 건넸던 주소 종이를 꺼내자 그는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 지금 그의 아들을 만나볼까?”      


 붐비는 광장을 가로지르는 그들의 가슴은 앞으로 개최될 캠프에 대한 벅찬 기대와, 

 새롭게 사귈 친구에 대한 설레는 우정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으로 마구 부풀어 올랐다.


 앞으로 어떤 모험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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