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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Feb 15. 2017

3. 메리슨 폰데 캠프의 개막

3. 메리슨 폰데 캠프의 개막

 

 그렇게나 기다리고 기대하던 ‘메리슨 폰데 캠프’가 열리는 역사적인 날이 밝았다. 


 이안과 수진, 카할은 예정된 시간보다 좀 이른 2시에 벌써 ‘황금의 문’ 앞에 도착하였다. 일찍 왔으니 그들밖에 없는 게 당연했다. 예전의 접수처와 석판, 접수원은 다 사라지고 텅 비어있었다. 한껏 들뜬 기분으로 부풀어 오른 세 아이는 이런저런 수다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앞으로 어떤 모험을 하게 될지, 어떤 음식을 먹게 될지, 푸다크 별궁은 어떤 곳이고 머무를 방은 좋을지 별로일지, 이야깃거리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2시 20분쯤, 저 멀리서 한 소년이 뚜벅뚜벅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동양인이었는데 아마도 오나시아 왕국에서 온 참가자인 것 같았다. 그런데 그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수진은 그만 깜짝 놀라 심장이 턱 멎을 뻔하였다. 롤리마을의 이상민을 완전히 빼다 박은 것이었다. 키는 그보다 조금 작았지만 뚱뚱한 몸집, 욕심이 두둑두둑한 얼굴은 쌍둥이처럼 닮아있었다. 옆에 서 있던 이안도 같이 충격을 받은 듯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그들은 잠시 멈춰 선 채로 서로를 어색하게 쳐다보았다. 그들 사이의 이상한 기운을 눈치챈 카할이 먼저 소년에게 다가가 악수를 건네며 쾌활하게 말을 걸었다. 그러나 먼저 아는 척했다는 사실이 매우 큰 모욕으로 느껴졌는지 소년의 얼굴이 갑자기 확 달아오르더니 증오의 눈빛 총알을 마구 발사하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총알세례에 카할은 어쩔 줄 몰라 슬그머니 이안과 수진 옆으로 되돌아왔다.

 

 잠시 후 수진이 용기를 내어 그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혹시 이상민?”


“난 상민이 아니야!”


 곰처럼 두꺼운 목소리를 가졌던 상민과 달리 그의 것은 낭랑한 편이었다. 그는 그녀를 기분 나쁘게 째려보더니 그녀의 어깨를 거칠게 밀치며 황금의 문으로 성큼 다가갔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그녀는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 어쨌든 이상민은 아니었다.


 어디선가 세찬 바람이 훅 불어왔다. 이곳은 막혀있는 지하세상이라 강한 바람이 불리가 없는데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바람이 멈추자 마법처럼 누군가가 그들 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뱀파이어 소녀였다. 금발에 하얀 피부, 유리같이 투명한 보라색 눈, 큰 키와 늘씬한 몸매를 가진 아주 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마치 바비인형이 눈앞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키릴장막 아케이드에서 수진과 부딪쳤던 그 미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말 아름다웠다. 


 그녀는 차가운 눈으로 모여 있는 그들을 쭉 훑어보다가 이안에게서 시선이 딱 멈추었다. 그도 슬쩍 그녀를 쳐다보았다. 머릿속 계산이 끝난 그녀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먼저 그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안녕, 나는 안젤라 카피야.”


“안녕, 나는 이안 일, 아니 이안 드보르자 라고 해.” 


 그녀는 자기 마음에 쏙 들었는지 그의 곁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처음에는 그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다. 하지만 그녀가 노골적으로 관심을 보이자 그는 점차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녀의 질문에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몸을 아예 수진 쪽으로 돌려버렸다. 둘이서 농담하며 떠드는 모습을 바라보던 안젤라의 보라색 눈동자가 그의 미소를 전적으로 받고 있는 수진에게로 향하였다. 그리고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노골적으로 훑어본 후 아주 가증스럽다는 듯 “흥” 코웃음을 쳤다. 자기와는 상대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녀의 외모가 무척 평범했기 때문이었다.


 안젤라는 눈을 아래로 깔더니 자신의 하늘색 원피스가 구겨지지는 않았는지, 검은 에나멜 구두에 얼룩은 없는지 열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그녀는 안심하고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완벽한 미소를 얼굴에 띠었다. 그녀의 핑크빛 립스틱을 칠한 입술 밑으로 도자기처럼 하얗고 긴 송곳니들이 드러났다. 


 미모를 마음껏 뽐내며 거만한 표정으로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는데 그만 넋을 잃고 바라보던 카할과 시선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그러자 그녀 역시, 아까 오나시아의 소년처럼 마치 큰 모욕이라도 당했다는 듯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휙 돌려버리는 것이 아닌가? 두 번이나 그런 경험을 한 카할의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는 부모님께 들어 익히 알고 있었다. 비록 ‘딥언더니아’가 ‘브라잇 동맹’에 들어가 있지만 저들과 비교하여 몸집이 작고 못생기고 지하에 우글거리며 사는 난쟁이 딥언더니아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말이다. 그런 면에서 수진과 이안이 그에게 먼저 호의를 보여준 첫 외부인들임을, 그리고 그것은 매우 희귀하고도 별난 사건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저기 터널 입구 끝에서 흰 반바지만 입은 초록색 소년이 어그적어그적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걸음속도는 일반인보다 느리고 어쩔 땐 기우뚱하거나 절룩거려, 보는 이로 하여금 왠지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다.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피부가 초록색 비늘임을 알아차렸다. 뭍으로 나온 인어였다. 그의 손에는 공 모양의 플라스틱 어항이 들려있었는데 그 안에 투명한 물과 해초, 산호꽃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무척이나 아끼는지 품에 꼭 껴안고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항 물이 넘치지 않도록 조심하였다. 그의 머리카락과 몸은 촉촉이 젖어있었다. 그는 어항을 땅으로 조심히 내린 후, 앞에 있는 수진에게 손을 쑥 내밀어 인사했다.


“안녕, 난 아쿠아니아 왕국에서 온 해마라고 해. 앞으로 잘 지내자!”


“응, 수진이야. 나도 잘 부탁해.”     


 예정된 개막시간까지 약 9분 정도 남았을 때였다. 또 누군가가 걸어오는 모습이 모두의 눈에 포착되었다. 놀랍게도 우란이었다. 그녀가 멀리서 손을 흔들자 수진이 환호성을 지르며 맞으러 뛰어나갔다. 수진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아 힘차게 흔들어대며 외쳤다.


“너도 참가하는 거였어? 그때 진작 말해주지 그랬어?”


“놀라게 해 주려 그랬지. 그리고 저 뱀파이어가 정말로 무서웠거든. 다시 만나서 정말 기쁘다.”

     

 이럭저럭 개막시간이 거의 다 되었다. 그러나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인원은 겨우 7명. 이안은 어떻게 캠프 참가자가 7명밖에 안 되는지 당최 이해가 되질 않았다. 적어도 수십 명에서 수백 명 정도는 거뜬히 참여할 거라 기대했었는데 고작 10명도 안 되는 숫자라니.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가 확 꺼져버린 실망감이 그의 얼굴에 짙어졌다. 하지만 혹시 지각하는 이도 있을 수 있기에 그는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기로 했다.  

 



 3시 정각이 되었다. “철컹”소리와 함께 황금의 문이 앞으로 서서히 열리었다. 이때 문 앞에 서 있던 뚱뚱한 오나시아 소년은 전에 이안과 수진이 딥언더니아로 들어올 때 겪을 뻔 한 압사사고를 피하기 위해 뱃살을 출렁이며 힘겹게 달려야만 했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안에서 나팔과 북을 든 악단이 줄 맞춰 걸어 나오며 연주를 했다. 비슷한 키에 연두색 빵모자와 연두색 원피스를 맞춰 입은, 꼭 녹색 버섯들이 줄지어 행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악단이 한쪽에 모여 계속 연주를 하는 가운데, 그들보다 덩치가 우람하고 은색 갑옷을 차려입은 씩씩한 병사들이 머리에 은색 투구를 쓰고 어깨에 긴 창이나 도끼를 들고서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마치 스스로가 이동벽이나 된 것처럼 캠프 참가자들 주위를 넓은 원으로 벽을 치며 둘러쌌다. 벽의 한 면을 이루던 병사들이 갑자기 양옆으로 비켜서며 길을 터주었다. 그 사이로 한 무리의 딥언더니아인과 키가 크고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하얀색 로브를 차려입은 젊은 남성이 원 안으로 들어왔다.  


 제일 앞장서서 들어온 자의 외양은 특이했다. 붉은 곱슬머리와 붉은 수염을 단 딥언더니아인으로 그의 용맹스러운 외모가 유난히 튀었다. 그의 이마에는 번쩍이는 황금 왕관이 쓰였는데, 금띠로 두른 그것의 양쪽 귀 위로 각각 거대한 멧돼지 송곳니가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있었다. 왕관의 정 중앙 이마에는 초록색 에메랄드가 박혀있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영롱하게 반짝였다. 옆의 병사들보다 몸집이 더 크고 건장한 그 역시 은색 갑옷을 착용하였는데, 배 부분만 볼록하게 반달처럼 튀어나와있었다. 왕위를 상징하는 금도끼를 어깨에 메고 있는 그가 맹렬하게 불타는 눈동자로 참가자 전원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우란과 카할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옆의 다른 이에게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스톰펌 왕이야.”

      

 장성한 병사 네 명이 낑낑거리며 방금 뚫렸다가 막힌 벽을 다시 뚫고 안으로 쳐들어왔다. 그들의 어깨 위에는 황금으로 만든 높은 연단이 들려있었다. 그것이 참가자들 앞에 내려지자 왕은 그 뒤로 붙은 계단들을 올라가 섰다. 이젠 그가 그들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었다. 그는 아주 만족스러운 듯 유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헛기침을 여러 번 해 목을 풀더니 아랫배로부터 울려 나오는 소리로 환영사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의 목소리가 얼마나 크고 우렁찬지 우란과 카할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의 귀도 다 얼얼해질 정도였다.

     

“에헷, 환영합니다. 딥언더니아 왕국에 온 것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바입니다. 

 난 딥언더니아의 왕 스톰펌 입니다. 캠프가 열린다는 사실이 도끼로 목을 후려칠 정도로 기뻐 오후 낮잠도 거른 채 직접 마중 나왔습니다. 많은 걸 배우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저 역시 성공적인 캠프를 위해 후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그럼 배 터질 정도로 잘 처먹고 잘 게기며 지내, 이런 제기랄, 제 말은 그러니까 캠프 끝날 때까지 건강히 잘 지내봅시다!”


 짧게 환영인사를 마친 그는 연단 끝에 주저앉더니 바로 아래 서 있던 우락부락해 보이는 신하에게 작은 소리로 따지듯이 물었다.


“분명 8명이라고 하지 않았어? 그런데 한 명이 비잖아. 어떻게 된 거야?"


 신하가 주위를 둘러보며 누군가를 급히 찾았다. 그는 참가자들 옆에 서 있는, 여기에서 가장 키가 우뚝 크고 하얀색 로브를 입은 젊은 남자에게로 재빨리 뛰어갔다. 신경질적으로 보이는 그 젊은이는 허리를 잔뜩 숙여 눈높이를 맞춘 채 신하에게서 말을 전해 들었다. 그리고 길고 하얀 손가락으로 참가자들의 머리를 꼭꼭 찍으며 여러 번 세어보았다. 그의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거 참 이상하네.” 

 

 그는 중얼중얼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누군가를 발견하고 그리로 달려갔다. 바로 책상에 앉아 접수를 받던 긴 수염의 노인이었다. 그는 노인에게 반말로 짜증스레 물었다.


“실크롱! 참가자가 총 8명이라고 하지 않았나?"


“흠흠, 8명 맞는뎁쇼, 위원장님. 흠흠, 금화가 모두 24개이지 않습니까? 흠흠, 눈 크게 뜨고 잘 세어보시라고요.” 


 상대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메시지를 노골적인 눈초리와 비딱한 어투로 드러내며 노인은 자신의 비단결 같은 수염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위원장의 손바닥에 금화를 하나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의 손은 24번이나 수염 속을 헤쳐 들어가 나오기를 반복했다. 왕이 계신 중요한 자리에서 체면을 구기게 되자 위원장의 얼굴은 잔뜩 찌푸려졌다. 그는 손바닥 위의 금화 개수를 꼼꼼히 체크한 후 돌려주며 또다시 반말로 명령했다. 

 

“응, 개수는 맞는데. 참가자 명단 좀 이리 줘봐.” 


 금화를 쥐지 않은 실크롱의 다른 손이 수염 속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휘젓더니 말려있는 종이뭉치를 꺼내 들었다. 만능가방이 따로 없었다. 위원장은 그것을 신경질적으로 낚아챈 후 명단을 부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면 손을 들라는 요청까지 덤으로 했다.


“이안 드보르자, 황수진, 카할 캐이브, 우란 미스가, 안젤라 카피, 왕허준, 왕허준? 아니 우리 캠프에 ‘오나시아’의 왕자가 오셨소? 실례가 안 된다면 누구신지 귀하신 손 좀 들어 올려 주시겠습니까? (왕자는 바로 롤리마을의 이상민을 쏙 빼닮은 그였다. 그를 바라보는 위원장의 얼굴에 아부 섞인 미소가 과하게 지어졌다.) 오호라, 이 먼데까지 잘 오셨습니다. 앞으로 계시는 동안 작은 불편이라도 느끼시면 당장 나를 찾아오세요. 무슨 일이든 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해마? ‘아쿠아니아’에서 온 해마? 그래, 수분캡슐은 충분히 가져왔습니까? 혹시나 해서 우리도 상비해두었으니 모자라면 꼭 찾아오십시오. 마지막으로 어제 등록한 티앤 단까오, 티앤 단까오? 티앤 단까오? 손 좀 들어보지?  엉, 아직 안 왔구먼. ‘스위티니아’출신인데, 얘 때문에 한 명이 모자란 거였군.” 


“티앤 단까오, 여기 왔습니다!” 


 말소리뿐 아니라 같이 섞여 들려온 괴상한 소음에 고개들이 그쪽으로 돌려졌다. 한 소년이 병사들로 세워진 벽을 뚫으며 급히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끝이 기다랗고 뾰족한 두 귀 사이로 노란 빵모자를 끼어 쓰고, 초록 쫄바지에 헐렁거리는 노란 티셔츠를 입은 티앤 단까오가 불룩한 배낭을 짊어진 채 숨을 헉헉거리며 아이들 옆에 멈춰 섰다. 배낭 겉으로 조그만 냄비와 프라이팬, 쇠 주전자, 컵 여러 개, 포크와 스푼 여러 벌이 매달려있었다. 움직일 때마다 쇠가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무척이나 요란했다. 


 수진은 문득 예전 키릴장막아케이드에서 만났던 레드점핑초코가 떠올라 혼자 배시시 웃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티앤 단까오는 연단 앞으로 나와 왕에게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한 후 위원장과 참가자들을 향해 늦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드디어 참가자 전원이 도착하자 명단을 든 위원장과 스톰펌 왕, 그 밖에 다른 관계자들은 멋쩍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나 열심히 돈을 뿌리고 몸을 불태우며 광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참가자 인원이 예상보다 너무 적었던 것이다. 그들의 얼굴에는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버핏 위원장은 이리 올라오시오.”


 가까스로 표정관리를 마친 왕이 정중히 요청하자 위원장은 연단으로 다가왔다. 연단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왕에게 존경과 고마움을 표시한 후 옆으로 지나쳐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 왕 옆에 나란히 선 그가 환영사를 발표했다.     


“‘메리슨 폰데 캠프’에 오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저는 캠프 위원장인 '버핏 지그워드'입니다. 여러분을 만나게 되어 한없이 기쁩니다. 비록 참가자 수가 저의 예상을 깨고 매우 저조하지만, 올해는 캠프가 다시 개최될 수 있었다는 사실에 큰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특히 이번 캠프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딥언더니아’의 스톰펌왕에게 위원회를 대표하여 진심 어린 감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모두 박수! (참가자들보다 주위의 관계자들과 악단, 병사들이 더 요란스레 박수를 쳤다.) 그분이 아니었다면 절대 개최될 수 없었을 겁니다. 


 이 캠프는 브라잇 동맹의 설립과 함께 만들어졌지만 10회 정도 열리다가 이름 자체도 완전히 잊힐 정도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2,900년 만에 다시 열리게 되어 새로 뽑힌 캠프 위원장인 저에게 많은 설렘과 기대감을 심어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캠프의 원래 목적은 동맹국 간의 우호증진과 교류입니다. 그런 의의를 잘 계승하여 열흘 동안 우리 서로 잘 지내봅시다. 진심으로 다시 한번 여러분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이것으로 제11회 메리슨 폰데 캠프의 개막을 기쁜 마음으로 선포합니다!”     

 

 녹색 악단의 환영 음악이 시끄럽게 연주되었다. 캠프의 시작 선언에 대부분은 설렌 표정을 지었지만 딱 한 명 예외가 있었다. 바로 이안이었다. 캠프가 2,890년 만에 열린다고 확신한 자신의 계산이 틀렸기 때문이다. 그가 쓰라린 표정을 지으며 카할을 힐끗 쳐다보자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연신 흔들어댔다.  


 바로 이어 ‘11회 메리슨 폰데 캠프 - 딥언더니아 (그 아랫줄에 ‘3001년 우정의 달 1일’이라고 적힘 )’라고 적힌 현수막을 매단 기둥 두 개가 연단 양쪽에 각각 세워졌다. 8명의 참가자들과 버핏 위원장, 실크롱과 여럿 관계자들이 한 줄로 나란히 섰다. 왕은 홀로 연단 위에 서 있어 현수막 바로 아래에 위치했다.

 

“찰칵.”


 역사적인 메리슨 폰데 캠프의 재시작을 알리는 사진 촬영이었다. 


 이안과 수진, 여기의 그 누구도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아름답지만 위험하고 위대하겠지만 처절한 운명의 수레바퀴가 서서히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사진에서만은 그런 운명을 비웃기라도 할 듯 다들 상기된 표정이었고 캠프에 대한 기대감으로 한껏 부풀어있었다.


 부디 최대한 늦게까지 이 행복한 꿈에서 깨어나지 말기를,


 순조로운 바람과 밝은 희망이 오랫동안 그들과 함께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기원해주고 싶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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