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1 다-다 오픈세미나 두 번째 시간 "사이버스페이스"
나의 요즘 관심사는 내가 쓰고 있는 판타지 소설 '브라잇 동맹'과 가상현실(VR) 기술이다.
오랫동안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면서 머릿속으로 발전시켜온, 나에겐 그 어떤 세상보다도 훨씬 더 멋진 세상인 '브라잇 동맹'을 전 세계의 모든 이에게 직접 보여주고 마음껏 경험해보기를 희망한다. 그곳은 정말로 아름답고 흥미진진하며 모험이 끊이지 않는 아주 놀라운 장소이기 때문이다. 또한 땅덩이가 얼마나 드넓고 변화무쌍한 지 아무리 가도 가도 끝이 나지 않을 정도인데, 물론 나의 상상 속에선 딱히 정해놓은 한계가 없으니 당연한 이치이다.
VR기술이 더욱 상용화된다면 내 소설 스토리를 한번 가상현실로 옮겨보고 싶다. 책이나 활자를 그대로 옮긴 또 다른 세상, 우리가 꿈꾸고 직접 경험하며 모험도 할 수 있는 가상세계 '브라잇 동맹'을 공개적으로 오픈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난 가끔 혼자서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있다.
아마도 흥미를 가지고 방문한 사람들이 난쟁이왕국 '딥언더니아'의 지하 원형광장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키릴장막아케이드'의 광장에서 쇼핑을 하거나, 심장 약한 사람은 타지 못하는 공룡 두개골을 직접 타볼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현재 2권 초반까지만 소설을 올렸지만 지금 몰래 쓰고 있는 4권의 배경인 1780년 8/9일 중국 열하에 도착한 박지원과 조선사행단 일행에 끼게 된 소설의 주인공인 수진과 이안을 따라 그곳을 경험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거기서 여름휴가까지 덤으로 보내게 될지도 모른다. 상상만 해도 너무 재미있고 근사하지 않은가? 그만큼 가상현실인 사이버스페이스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것이다.
예전에 가상현실에 대해 브런치에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오늘은 그것을 세부적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한다. 운이 좋게도 난 이 주제와 관련하여 얼마 전 한 세미나에 참석할 기회를 얻었었다.
문화창조아카데미에서 5/11에 열린 '다-다 오픈세미나'였다.
세미나의 큰 주제인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문화콘텐츠 산업"의 두 번째 시간으로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에 관한 것이었다. 홍릉에 위치한 아카데미는 KIST(한국과학기술원) 단지 안에 아담하게 들어가 있었다. 처음 그 건물을 발견한 나의 마음은 한순간 심쿵 했다. 이런 지리적 위치가 아카데미의 원 취지를 그대로 상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콘텐츠와 과학기술의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아카데미 총감독이신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님이 쓴 수많은 책들의 주제이기도 했다. 그날 난 감독님이 쓴 책을 가지고 가서 직접 사인을 받고 인사도 드렸는데 절판된 책을 가지고 왔다며 무척 반가워하셨다.
브라잇 동맹을 쓰면서 간간히 필요한 부분을 이 책에서 찾아보곤 했었는데 글 쓰는 과학자이신 감독님의 중요 주제를 매번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건 바로 신화적 상상력이 과학을 만나면 이전보다 더 큰 가능성과 창조적 혁신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작가인 나 역시 그분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그래서 내가 매번 이렇게 IT기술 콘퍼런스를 직접 찾아다니는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오픈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이인식 총감독님이 나와 먼저 키노트를 발표하셨다. "사이버스페이스와 가상현실"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시고 관련 SF소설이나 책들에 대해 설명하셨다. 특히 나의 관심을 끈 책은 윌리엄 깁슨(William Gibson)이 쓴 '뉴로맨서 [Neuromancer, 1984]'였다. 난 이 책이 그렇게 유명한지 몰랐었는데 이 자리에서 마침내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사이버스페이스 Cyberspace, 매트릭스 Matrix라는 신조어가 이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는 걸 말이다. 가상공간, 즉 가상현실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한 기념비적인 작품이었다. 놀랍게도 책이 1984년에 출판되었단다. 1984년에.. 매트릭스가... 참, 지금 생각해도 할 말이 없다. 난 뭐 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서 Michael Benedikt가 그의 책 Cyberspace :First Steps, 1991에서 언급한 '사이버스페이스'의 정의를 한번 알아보자.
"Cyberspace is a globally, computer-sustained, computer-accessed and computer-generated, multidimensional, arfiticial, or 'Virtual' Reality."
지금 한국에서 4차 산업혁명이란 명제 아래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니 연일 뜨겁게 화두가 되고 있다만 이미 미국에선 오랫동안 연구되어오고 발전되어온 기술인 것이다. 더군다나 관련 SF소설이나 할리우드 영화산업까지 뛰어들며 전 국민의 전폭적인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오면서 말이다.
이인식 감독님은 가상현실이 상용화되고 로봇과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디스토피아(Dystopia, 어두운 미래)로 향할 것이라 예상하신단다. 대부분의 SF소설이나 영화의 주제는 거의 그쪽 편이긴 하다.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난 가까운 미래에 기계와 인류가 서로 공존하여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믿는 편이다. 아마도 내가 사이보그란 존재에 대해 어떤 막연한 흥미를 가지고 있고 워낙 낙천적인 성격이기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난 유토피아(Utopia)적 미래를 꿈꾼다. 그리고 판타지 소설인 브라잇 동맹의 마지막 결말은 새로운 SF소설의 처음과 이어질 것이다. 내가 써 나갈 다음 작품인 SF소설은 신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시작될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고희동 Kist 책임연구원 님이 나오셔서 "사이버스페이스로서의 가상현실 기술"에 대해 발표를 시작하셨다. 한국방송 최초의 가상스튜디오와 경주 세계문화 엑스포 2000 주제 영상관에서 '서라벌의 숨결 속으로'란 가상현실 영상을 만드신 아주 유명한 과학자이시다. 그런데 그가 한 발표의 많은 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다. 왜 그런지는 아래 발표자료를 보면 바로 알게 될 것이다.
어쨌든 그분의 마지막 요지는 앞으로 4차 산업혁명은 물질, 생명, 정보 세계를 융합하는 Cyber-Physical System, (CPS)의 핵심기술인 인공지능, 로봇, 사물 인터넷, 자율주행, 3D 프린팅, 나노 기술 등이다. 그러나 예전의 산업혁명들과 다르게 기술의 독점이 아닌 정보와 기술의 개방화로 서로 다른 분야들과 초연결형, 협업형 사회로 바뀔 것이라 예상하셨다.
앞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생각을 해야 하고 학교에서 암기 위주의 수동적 지식은 더 이상 필요 없다고 했다. 예민한 문제의식과 호기심, 예술적 감수성, 뛰어난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어 창업을 하지 않으면 힘든 시대가 될 거라며 발표를 끝맺으셨다.
발표 때보다 오히려 패널토론에서 그분이 매우 세련된 감각을 지니고 계시구나를 새삼 깨닫아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비록 자신의 전공이 가상현실 기술이지만 그저 현란하고 요란한 보여주기 식의 가상현실보다는 적재적소에 최소한으로 쓰이는 단순함의 지혜를 강조하셨다. 순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떠오른 건 왜인지? 아마 잡스가 끊임없이 주장하던 단순함의 미학이 떠올라서 그랬나 보다.
다음 연사로 내가 정말로 고대하던 정연두 아티스트가 무대에 등장하였다. 우리 엄마가 천재 작가라며 항상 치켜세우는 바로 그분, 정연두 님이었다.
그분의 사진작품들을 갤러리에서 드물게 보곤 했었는데 이 자리에서는 일본 '아트타워 미토'에서 가졌던 개인전 <Just Like the Road across the Earth(지상의 길처럼)> 이란 가상현실 작품과 전시 준비과정을 소개하러 나오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과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일본 이바라키 현의 미토시에서 만난 한 시각장애인 사진가와의 만남, 눈에 보이지 않는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을 늘 안고 살아가는 미토 시민들에게서 영감을 받아,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대비를 표현하고자 VR기술을 이용해 작업을 하게 되었단다. 서울대공학부를 직접 찾아갔고 1년간 공동 프로젝트로 진행시켜 완성시킨 작품이란다.
위의 사진처럼 쓰레기로 잔뜩 차려진 미술관 가운데로 길이 하나 나 있는데 관객이 직접 VR고글을 쓰고 길을 지나가며 보면 쓰레기가 아름다운 자연으로 변화되어 나타난다. 고글을 벗으면 쓰레기, 쓰면 아름다운 자연으로 보이는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이는 쓰레기와 가상현실 공간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숲이 서로 대비교차되는 순간이다.
정연두 작가님은 VR의 만족스러운 몰입감은 칭찬하셨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의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상상을 완벽하게 표현해내기는 불가능한 것 같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이때쯤엔 내 정신력이 차츰 흐려지고 멍해졌기에 기억력이 확실치는 않다. 다만 작가님은 해리포터의 광팬이신데 책을 읽었을 때 폭 빠져들었던 마법세계에 대한 재미와 흥미가 막상 영화를 보곤 퍽 실망하셨다는 점을 예시로 든 것 같다.
이로서 주제발표가 모두 끝나고 간단한 패널토론과 질문시간이 이어졌다.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전혜현 교수님이 패널로 참여하셨다. 이 자리에서 난 직접 정연두 작가님께 스스로 고민하던 질문을 던질 수 있었다.
"언젠가 제가 쓴 판타지 스토리로 과학기술자들과 협업하여 멋진 가상현실 공간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솔직히 예술가와 과학기술자의 협업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저만 보더라도 제가 만든 세상을 조금도 손대지 않은 채 그대로 완벽히 표현하고 재현해내고 싶은 고집 센 예술가이지만 과학자의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니 서로 양보하면서 편하게 가자고 요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정연두 작가님께서 직접 서울대 공대를 찾아가 협업을 요청하셨고 함께 작업을 진행하면서 분명 어려운 점이 있었을 텐데 저에게 조언을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전 고양이와 개를 같이 키웠었는데 둘이 싸우면 한방에 집어넣습니다. 시간이 좀 지나서 지켜보면 둘이 으르렁을 멈추고 가만히 있어요. 예술가와 과학자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고양이와 개처럼 서로 무척이나 어색하고 불편하고 힘들겠지요. 그런데 제가 막상 공대를 방문하니까 교수님께서 무척 반가워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프로젝트 진행상황을 저에게 보여주시고 저도 같이 놀라워하며 즐겁게 1년간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다른 두 존재가 공존하여 협업할 수 있고 놀라운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저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게 모든 세미나가 끝이 났다. 하지만 난 한 가지 질문이 더 남아있었다. 무대에서 마지막으로 내려오는 정연두 작가님께 후다닥 달려 나갔다. 나의 소설이 올려지는 여기 브런치 주소가 적힌 명함을 건네드리며 인사한 후 정말로 내게 고민이 많이 되고 있던 마지막 질문을 드렸다.
"근데요. 어떻게 서울대 공대까지 직접 찾아갈 생각을 하셨어요? 전 생각은 많은데 막상 찾아가려 해도 용기가 나지 않아서요. 겁도 나고, 무슨 꿈꾸냐며 비웃을 것도 같고, 말도 안 통할 것 같고, 발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아무튼 그렇습니다."
그런데 정연두 작가님이 툭 던지신 대답. 그 말을 듣자 그분이 주먹으로 내 머리를 탁 때린 듯 순간 멍해지고 눈앞이 흐려졌다.
쌓여야지요.
아마 남이 들었으면 무슨 뜻인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난 바로 알아들었다. 내가 침을 꼴깍 삼킨 후 겨우 되물었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을 때까지 쌓여야 된다고요?"
"네."
작가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하셨다. 그래, 아직 내 마음 수양이 거기까지 차오른 것은 아니었나 보다. 작가님처럼 천재라 일컫는 분도 쌓이고 쌓이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스스로 먼저 걸음을 옮기셨는데 나는 뭐가 잘났다고.. 그동안 불안하던 마음이 누그러들면서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다.
그래서 아직 조금 더 기다려보련다. 나도 도저히 어쩔 수 없을 정도로 절실해지면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고 스스로 협업할 기회를 찾게 되겠지. 조금만 더 기다려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