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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indy Hwang 황선연 Sep 29. 2017

스타트업의 간장 계란밥은 고통이자 희망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따듯한 밥에 계란프라이든 날계란이든 얹은 후 간장으로 비비는 간장 계란밥을 먹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물론 예외가 아니다. 정말 반찬이 없어서 밥을 먹긴 먹어야겠는데 할 수 없이 택했던 것이 이 음식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나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아무리 반찬이 없어도, 즉 밥과 계란프라이가 있어도 절대 간장에 비벼 먹지 않게 되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궁금하시리라. 이제 그 이유를 설명해볼까 한다.

 

 난 IT기술 다큐멘터리를 주로 찾아서 보곤 한다. 내가 쓰고 있는 판타지 이야기를 현존하는 산업기술들과 접목시키고 싶기 때문이다. '출판'이라는 개념을 지금껏 보여주지 못한 아주 신선한 방법으로, 다른 식으로 한번 해보고 싶다. 그래서 여기 브런치나 다양한 채널을 통해 열심히 관련 기사들을 훑고 다닌다.

 특히 EBS나 공영방송 등의 다큐멘터리 들은 내가 직접 가보지 못한 실리콘밸리나 중국의 선전 같은 도시들을 샅샅이 찾아다니며 다양한 IT회사나 유망한 스타트업들, 그리고 최신 동향 등을 많이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고 필요할 땐 따로 수첩에 정리해놓고 직접 알아보기도 한다. 아무튼 꽤 유용하고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그런데 한 번은 EBS에서 한국의 스타트업들에 대한 다큐를 방영해주었었다. 어떤 스타트업이었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임대료가 아주 저렴한 조그만 주택을 임대하여 전 사원 열몇 명을 입주시키고 있었다. 몸이 피곤하면 자고, 일어나면 일하고, 여자와 남자의 구분이 전혀 없는, 그리고 주말에도 일하고, 정 외출이 필요하면 회사에서 꾸미고 나가 일 보고 다시 돌아오는 그런 거주형스타트업이었다. 다들 정말로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식사시간만 되면 같이 모여 일하던 직원들이 한 명씩 교대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회사의 젊은 대표가 드디어 모니터에서 고개를 들어 자리에서 일어나자 카메라가 그를 따라갔다. 


 그는 주방으로 향하였다. 그리고 커다란 대접을 꺼내 전기밥솥에서 밥을 푹 푸고 싱크대 옆으로 다가갔다. 세상에나, 거기엔 계란이 두 판정도 놓여 있었다. 이미 다른 직원들이 먹고 계란은 5개 정도 남은 상태였다. 그는 계란을 두 개 톡톡 깨뜨려 김이 올라오는 밥 위에 얹더니 그대로 전자레인지에 넣고 돌린 후 간장을 마지막으로 한 숟갈 집어넣었다. 그리고 그대로 일어선 채 밥을 비며 먹는 것이었다. 카메라맨에게도 똑같이 해서 한 그릇 건네는 여유도 보이었다. 

 그러면서 대표는 카메라를 향해 이렇게 말했다.


"간장 계란밥이 제일 간단하잖아요. 영양가도 있고 후딱 해치우기도 편하고. 아마 자세히 안 세어서 모르겠지만 저희 회사에서 거의 몇백 판은 먹었을 겁니다. 근데 희한하게 물리지가 않아요."


 나는 그 말을 하던 대표의 잔잔한 미소가 몇 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남들은 참으로 이상하다 싶겠지만 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어서 그런지 IT기술 못지않게 대표나 직원들의 식사나 일상생활 같은 것도 관심 있게 보는 편이다. 나랑 얼마나 다른 생활을 하는지 호기심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매끼를 간장 계란밥으로 때우다니. 아마도 그것이 나에게 큰 충격으로 남았나 보다. 그때부터 난 절대 그것을 먹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저번 살충제계란 파동이 일어났을 때 난 제일 먼저 그 스타트업의 대표가 떠올랐다. 그들은 몇 백판이나 먹었다는데 건강은 괜찮을까? 살짝 걱정이 들기도 했다. 



 예부터 예술하는 사람은 가난해야 좋은 예술품을 창조시킬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물론 고난이 그들의 양식이 되어 생존해야만 한다는 절박함으로부터 자신이 예상치 못한 놀라운 예술적 재능이 발휘될 가능성도 있기는 하다. 우리가 잘 아는 화가 고흐나 영국여류작가 제인 오스틴처럼 말이다. 하지만 난 솔직히 아니라고 본다. 그건 배가 고파 보지 않는 자들의 허황된 로망일 뿐이다. 나 역시 살아오면서 배가 너무 고파 굶어 본 적은 없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대신 많은 고전소설들에서 엄청나게 목격하게 되었다. 예술을 하는 주인공이 생활고에 지쳐 자살하거나 알코올중독이나 약물중독이 되거나 아니면, 이건 진짜 공포스러운데 너무 먹은 것이 없어서 진짜 말 그대로 굶어 영양실조로 죽거나, 아님 결핵 같은 병에 걸려 피를 꽥 토하고 경련을 일이키며 죽는 등 너무 비참하고 무시무시한 상황들이 '예술'이라는 것과 맞바뀌어지는 상황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나에게 어떤 이득도 있었다. 어디서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존능력과 밥벌이의 중요성을 심어준 것이다. 밥벌이는 정말로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굶는 것보다야 계란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건 하늘과 땅 차이일지도 모른다. 또 그것을 더욱 확장시킨다면 우리는 맛있는 레스토랑으로 자주 외식하지 못한다고, 매체에서 보여주는 다양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불평을 늘어놓곤 한다. 그러나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기아 난민사태가 벌어지는 나라들에 비하면 지금 이렇게 회사 식당밥이라도 먹을 수 있다는 게, 굶지 않고 살 수 있다는 게 축복이란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안심이 되기도 한다. 역시 모든 것은 다 상대적인가 보다. 아이고, 이야기가 너무 비참하게 흘러서 미안하다.


 아무튼 그 스타트업이 몇백 판의 계란을 깨뜨려 밥에 비벼 먹어도 물리지 않는다는 사실은, 직원들이 불평조차 않은 채 묵묵히 견디고 있는 현실은, 지금 그들이 겪는 고통이 먼 훗날 언젠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다는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장 계란밥은 그 스타트업에게 현재의 고통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이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한쪽 바닥에 쌓인 계란판들을 바라보며 아련한 미소를 짓던 대표가 또다시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소개하고자 한다. 


 평소 고전소설을 좋아하는 저자로서는 그것에 자주 등장하는 굶어 죽는 비참한 상황을 탈피하고자 내 판타지 소설의 주인공들에게만은 최대한 먹을 것을 후하게 주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서 그들이 먹는 식사의 메뉴도 가능하다면 세세히 써 보려고 노력한다. 앞으로 '브라잇 동맹'이 전 세계인들에게 호흥을 얻어 즐기게 된다면 여기에 나오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식사메뉴를 따로 모아 팔아보아도 좋겠다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몇 가지만 심심풀이로 알려줄까 한다.


 먼저 '제1권 딥언더니아편'에서 수진이 게이트'빅락'을 지나 '하하호호히히'세상으로 넘어 온 다음 날 아이스크림가게 주인 박지원이 차려준 아침식사 장면이다. 링크가 걸려있으니 한번 가서 보시길.


[ 다음날 아침, 1층 주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식탁 위로 음식들이 거나하게 차려졌다. 달걀프라이와 블루베리 머핀, 건포도가 박힌 스콘과 장미 잼, 닭고기를 넣어 만든 수프, 칠면조 구이, 계란 묻힌 토스트와 쿠키, 사과파이, 요구르트, 자몽주스, 우유, 커피 그리고 사과와 오렌지가 쟁반 위에 먹기 좋게 잘려져 있었다. ]


 음, 나도 아침에 저 정도로 차려주어서 한번 먹어보고 싶다.


 

 두 번째로는 우리의 주인공 이안과 수진이 난쟁이 왕국 '딥언더니아'에 막 도착하여서 들어간 한 레스토랑에서였다. 링크가 걸려있다.


[ 소금궁전으로 가는 터널 근처에 위치한 이 호텔은 1층부터 5층까지 벽면의 한 구획을 다 쓰고 있었고, 1층 레스토랑을 통과해야만 호텔 로비가 나오는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레스토랑의 근사한 바비큐 냄새에 혹한 수진이 이안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채 다짜고짜 안으로 들어가 털썩 자리를 잡고 말았다. 바로 붉은 곱슬머리와 붉은 턱수염을 단 직원이 메뉴를 들고 달려왔다. 그녀는 이곳의 인기 메뉴인 ‘꾸이꾸이’를 시켰고, 이안은 피 두 잔을 주문했다. 놀랍게도 이번에 개최될 캠프에 대비하여 피를 미리 비축해놓고 있었다. 바비큐가 나오자 그녀는 외양을 보고 화들짝 앉은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다. 가운데 배를 가른 커다란 야생 들쥐였기 때문이다. 얼굴과 수염까지 그대로 달려있었다. 그러나 한입 맛을 본 후 그녀는 순식간에 남김없이 다 먹어치웠다. ]


 '꾸이꾸이'는 실제 남미 여러 나라에서 즐기고 있는 음식이다. EBS세계테마기행에서 너무 재미있어 보였기에 내 이야기에도 한번 넣어 본 것이다. 그리고 쥐는 하수구 같은 지하에서도 잘 사니까 지하세계에서도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훌륭한 단백질제공원이 되어줄 것이다.


 암튼 이것 말고 지금 올리고 있는 '제2권 메리슨 폰데 캠프의 비밀'에서도 다양한 메뉴들이 속속 등장할 예정이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만약 간장 계란밥에 대한 나의 이중적 잣대가 필요하다면 나의 소설에도 한번 등장시켜보리라. 이안은 뱀파이어서 불가능하지만 수진에게는 한 끼라도 대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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