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월의 선물
폭우가 세상을 삼킬 듯이 쏟아지던 몇 해 전 칠 월의 밤이었다.
와이퍼가 비명을 지르며 유리창을 닦아내도 앞이 보이지 않던 도로 위로, 털 뭉치 하나가 뛰어들었다.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멈춰 선 차 앞에 비를 쫄딱 맞아 생쥐 꼴을 한 강아지 다가왔다.
우산도 없이 마주 선 빗속에서 녀석은 꼬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처음 본 사이였지만, 생의 모퉁이를 돌아 다시 만난 인연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자세를 낮추자 녀석은 비를 피하려는 듯 내 다리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그 축축하고 따스한 온기가 바지를 적실 때 직감했다. 오늘 밤, 혼자 잠들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오후 7시가 지난 시각이라 유기견 보호소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빨간 장바구니를 꺼내 녀석을 담았다.
녀석은 좁은 바구니 속에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내 팔에 턱을 괴고 나를 바라보았다.
빗줄기를 뚫고 집으로 향하는 내내, 녀석의 순한 눈망울이 내게 묻는 듯했다.
‘당신이 나를 구해줄 사람인가요?'
집에 돌아와 마주한 풍경은 처절했다.
자꾸만 귀를 털어대는 모양새가 수상해 털 사이를 뒤져보니 소름이 돋았다.
녀석이 겪고 있는 가려움의 가해자인 진드기가 부족을 이루고 있었다.
비위 약한 나를 부정하고 별 헤는 밤이라 생각했다.
다만 터뜨려야 하는 별들.
한 마리라도 놓치면 망한다는 심정으로 달려들었다.칠월이는 그 모든 손길에 얌전히 몸을 맡겼다.
오십 마리도 넘는 부족을 몰살시키고 목욕까지 마쳤다.
정들지 않으려 의도적으로 눈 맞춤을 자제했으나, 젖은 털을 말려주는 손길 끝에 전해지는 녀석의 맥박이 가슴 깊숙이 파고들었다.
다음 날 아침, 녀석은 침대 밑을 지키고 있었다.
어제보다 한층 뽀송해진 털 사이로 왕만두 발뭉탱이가 보였다.
투박한 발소리로 거실을 누비고, 짧은 시간에 ‘앉아’까지 마스터한 영리한 녀석에게 속수무책으로 빠져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해야 했다.
두 마리 중 한 마리의 반려견을 얼마 전 떠나보낸 상태였고 세 마리의 마당냥이까지 있는 상황에선 무리였다.
칠월이를 발견했던 장소 주변 마을 이장님과 맘카페를 수소문해도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적한 시골길은 반려동물을 유기하기에 최적의 장소라는 말이 가슴을 찔렀다.
이별의 시각은 피할 수 없었다.
떠나기 전, 먹성 좋은 녀석에게 마지막 점심을 든든히 먹였다.
보호소로 향하는 30분, 녀석은 창밖을 보다 이따금 나를 보며 내 마음과 꼬리를 동시에 흔들었다.
보호소 철장 앞에 서자 헤어짐을 직감했는 지 먹은 것을 다 토해버렸다.
홀쭉해진 배로 철장 안에 갇히면서도 녀석은 끝까지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고 흔들고 자꾸만 흔들었다.
꼬리의 언어는 무엇이었을까.
원망이었을까, 짧은 만남에 대한 예우였을까.
하나 뿐인 길이 폭설에 막혔을 때도, 쓰러진 오동나무에 길이 막혀도 안 우는 나다.
그러나 눈물이 났다.
서로 좋아하는데 헤어지면 슬픈 거다.
엄마가 우리를 보육원에 두고 갈 때와 닮아서 울었다.
도망치듯 보호소를 빠져나오며 룸미러를 보고 엉엉 울었다.
"걱정 마, 칠월아. 내가 좀 까다로운 사람인데, 내 마음을 훔쳤으니 넌 분명 사랑받을 거야."
몇 개월 뒤, 떨리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어 칠월이 소식을 물었다.
칠 월이는 서울의 어느 다정한 가족에게 입양되었다고 했다.
칠 월의 빗속에서 나를 선택했던 복 많은 발뭉탱이가 좋은 보호자를 만난 것이다.
비 오는 칠 월이면 빨간 장바구니 속 칠월이를 기억한다.
그 안에 담겼던 따스한 기적을 복기한다.
서울의 어느 거실에서,
두툼한 발뭉탱이로 꼬리를 흔들며 사랑받고 있을 칠월이는,나의 남은 모든 칠 월에 따스한 갈색 옷을 입혀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