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미등록 도서'입니다
내 책에 바코드가 없는 이유는 출판사 등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판 수업을 들을 때 혼자 사업자 등록을 내고 바코드를 받아 책을 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독립 서점에는 유통이 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바코드 없는 책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내지 선정부터 표지 디자인까지 혼자 하고 있었던 데다 생각보다 책을 내는데 시간을 많이 소요해서, 일단은 책부터 내보자는 마음이 컸다. 심지어 이사을 하고 있던 때라서 아무리 간단하다 해도 사업자등록에 필요한 서류 등은 무엇인지 알아볼 힘도 없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 이후로 내가 책을 세 권이나 내게 될 줄은 몰랐다.
뒤표지 어딘가에 아주 긴 숫자가 쓰여 있어야 할 것만 같은데 그런 게 없으니 책을 덜 만들었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독립출판이란 '기성출판'과 다르다는 것이 특징이니까 이 위화감마저 안고 가기로 했고, 나에게는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더 중요했지, ISBN이 없다는 사실이 중요하지는 않았다. 이 책을 사람들이 번역가의 삶을 궁금해하길래 만들게 되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이것은 절반만 맞다. 내 속에서 꺼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시도를 선택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바코드 없는 책일지언정 많은 이들이 사랑해주어서 기쁠 따름이었다. 리뷰라는 이름으로 찾아본 피드백도 모두 고맙고 좋았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책을 어떻게 알리고 어디에 선보이면 좋을까 하는 막연한 고민도 존재했다.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기는 하는, 이 작디 작은 책이 갈 곳은 어디일까. 첫 책치고 잘 만들었다는 평을 주변에서 들었지만 요즘 독립서점 가 보면 다들 기성출판 뺨 치게 책을 잘 만든다. 가끔 여기가 독립서점 매대가 맞나 싶을 정도고, 숙련된 솜씨가 엿보여 이런 건 독립출판 정신에 어긋나지 않나(?) 싶은 책들도 있을 정도다. 게다가 대체 어느 인쇄소에서 인쇄를 한 건지 제본 상태도 좋다. 종이 질도 남다른 것 같고. 내가 만든 내 책을 못난이라 말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좀 그렇지만 소중한 내 새끼가 싫다는 건 절대 아니고, 그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기죽을까 봐 맘이 그런 것 뿐이라 말하고 싶다.
이런 내 마음의 소리가 하늘에 닿은 걸까. 어느 날 '미등록 도서'라는 주제로 전시에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무조건 좋다고 했다. 무대가 간절한 배우에게 과연 거부권이 있을까. 그런데 이것이 시간과 여러 사람을 거치면서 세계 책의 날을 기념하는 전시 및 판매의 형태로 진화해 오늘부터(4월 1일)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을 서울 광화문에서 선보이게 됐다. 제목은 살짝 바뀌어서 <우리는 책 짓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마음으로 출판을 시작하게 됐고, 그렇게 만들게 된 책은 무엇인지를 25명의 작가가 함께 이야기한다. 이 중 언론에 나오는 유명 기성 작가는 없다. 내가 직접적으로 기획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진행 과정을 지켜보는 일은 '미등록 도서라서 좀 그런가' 했던 마음이 '미등록 도서라서 자격이 됩니다'로 바뀌는 아주 이상하고도 신기한 순간이었다.
정확히 작년 오늘부터 직접 만든 책을 세상에 내다 팔았다. 작은 시도가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는 것을 올해 봄에도 직접 목격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이 기쁘다.
(아직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지만 이 과정에서 출판사 등록을 하게 된다면 이름을 무엇으로 하면 좋을지도 떠올랐다. 이곳에 출판사 등록 소식을 포스팅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