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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Apr 25. 2022

'공항멍'이 내게 알려준 것

비행기가 착륙할 때마다 긴장이 된다. 과장하자면 내가 기장 및 부기장보다 더 몸에 힘을 줄 것이다. 지면과 바퀴가 세게 부딪히는 순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올라갔으면 내려와야 하는 법. 빠른 속도로 달리던 물체가 바닥에 내려 앉으려면 약간의 마찰은ー반드시 아니 어쩌면ー수반해야 하는 법. 어쩔 수 없다는 걸 잘 알지만 말이다.


숙소 창문 너머 제주 공항의 활주로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비행기들이 순서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이륙과 착륙을 번갈아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비행기들이 아주 부드럽게 착륙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흔들림 없이, 우아하게, 슝. 그야말로 미끄러지듯 공항으로 들어갔다. 지금 내가 저 비행기 안에 앉아 있다면 '쿵' 소리와 브레이크 밟는 속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어딘가에 손을 집고 있을 텐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편안하게 올랐다 내렸다 하는 비행기들을 보니 왠지 속은 기분이었다.


아하. 멀리서 보면 별일이 아닌 것들을 너무 가까이에서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넓게 보면 예민하지 않아도 될 일들은 너무 좁게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 잠시잠깐의 흔들림을 거대한 지진처럼 여기는 것은 아닌지. 약간의 부딪힘이 있을 순 있으나 분명 오래가지 않을 테다. 미끄러지듯 삶은 굴러갈 테다.


어둑해져 가는 하늘 위로도 비행기는 쉴 새 없이 오르고 내렸다. 하늘에 노을이란 조명이 켜지고 비행기 날개에도 새하얀 플래시가 켜질 때쯤, 삶은 길고 넓게 보라던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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