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모를 누군가를 위해 남기어 보는 그날의 대화
작아지는 마음, 그러니까 나를 작게 여기는 마음은 비교할 때 생겨납니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 또는 내가 부러워하는 어느 대상의 옆에 지금의 나를 붙여 놓으니까, 계속 그 상대와 나를 같이 보게 되고, 내게 부족한 걸 찾게 돼요. 나는 모자라고 아름답지 않은 거죠. 내가 나를 그대로 바라봐 주지 않고 자꾸 다른 무언가와 견주니까요. 그럴 땐 시선을 옮겨 나를 바라보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수용해주어야 해요.
... 내가 나에게 집중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이대로도 충분히 괜찮고 잘하고 있다고 나를 믿으면 되는 걸까요? 그게 합리화랑 어떻게 다르죠?
나를 믿는 일도 합리화의 일종이긴 하죠. 제가 듣기에 지금 말한 '합리화'는 변명과 불평이 섞인 불순한 쪽인 것 같아요. 스스로 알잖아요. 내가 오늘 어떤 일을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주변 탓을 하며 미루고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인다면 그건 회피가 되겠네요. 당연히 나를 믿어 주는 일도 아닐 테고요. 미래를 알지 못하는 우리는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며 한 걸음씩 나아갈 수 밖에 없어요. 그때 자신에게 말하는 겁니다. 나는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았다'고요. 내가 나를 믿어주고 수용해 줘야죠. 무엇 때문에 못한 것이다, 어떤 이유가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어요. 그게 사실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아까 말했듯 사실 나는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 이유 때문에 못한 것인지 아닌지. 변명이나 탓을 하려 든다면, 그럼 이건 나에게 집중하기 위해 믿어 주는 일을 한 것이라 볼 수 없겠네요. 본인을 믿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