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어제 글쓰기 강연을 들었다. 사실 주제가 글쓰기인 줄은 몰랐다. 강연회 제목을 보고 저자가 책을 썼을 때의 비하인드 스토리나 책 속에 담긴 특정 이야기를 나누려는 줄 알았는데 강연은 정직하게 글쓰기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마침 글이 써 지지 않아 난감하던 참이었는데 글쓰기 강연이라니. 기초를 다 잡지도 않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내려 하지 말라는 하늘의 계시일까. 여느 글쓰기 강사나 관련 서적이 말하는 것처럼 강연자도 글쓰기 관련 책만 읽지 말고 일단 써야 한다고 당부했다. 수영을 잘하고 싶은 사람이 수영장에 가지 않고 수영과 관련된 유튜브 영상만 본다면 언제 수영을 잘할 수 있겠냐면서 말이다. 일단 시작하는 것, 실천의 힘은 대단하고 또 중요해서 언제 어디서나 언급될 수밖에 없는 듯하다.
생각해보면 나는 화가 나고 속상할 때 글을 쓰기 시작했다. 평소 애용하는 플래너 한쪽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퍼붓듯이 써 내려가면 켜켜이 묵은 억울함과 속상함이 점차 내려가는 행간을 따라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오른쪽 세 번째 손가락이 살짝 저려 올 때까지 꾹꾹 눌러 적으며 차분함을 되찾고 나면 덤으로 문제해결의 실마리까지 보였다. 무언가를 결정해야 할 때도 쓰는 행위의 힘을 빌렸다. 나를 갈팡질팡하게 만드는 두 가지의 이름을 적고 그 아래 좋은 점과 아쉬운 점을 일대일 대응 형식으로 써 보면 대충 답이 나왔다. 물론 좋은 점이 훨씬 많아도 마음이 가지 않는다면 그 선택을 뒤집는 일도 빈번히 발생했다. 글을 써 보니 나는 감정을 논리적으로 정리할 줄 알고, 누가 봐도 논리적인 사항을 감정으로 뒤집는 일도 가능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무언가를 쓸 때 나는 스스로에게 무척 솔직한 사람이 된다. 그래서 놀랄 때가 많다. 쓸 때마다 나의 원초적인 모습과 본능을 마주한다. 입 밖에 내길 주저하던 표현까지 써 가며 진심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나의 무능함에 지쳐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고, 질투의 화신 못지않게 타인의 행복을 있는 힘껏 배 아파한다. 그리고 한 꺼풀 벗는다. 노트를 덮으며 마음을 짓누르던 돌덩이를 내려놓고 다음의 한 걸음을 내딛는다.
2019년 4월 5일. 어느 이름 모를 독자의 메시지를 받았다. 당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과연 괜찮은 것인지를 자문하고 있던 시기라 혼란스러운 마음을 담아 글을 적어 올렸다. 다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소리 높여 말하는데, 그 일이 일상이 되었을 때 나는 행복한지 그리고 내 주변은 나로 인해 행복한지가 궁금했다. 이름 모를 독자는 말했다. 일을 하다가 우연히 블로그에 들러 글을 읽게 되었는데 공감이 되어 한마디 남기고 간다고. 당신의 고민이 와닿고, 앞으로도 응원하겠다고 했다. 내 안에 존재하는 불안을 끌어냈더니 나에게만 존재하는 불안이 아님을 알게 됐다. 글을 쓸 때 나는 소통하는 사람이 된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도 그렇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고, 반대로 그렇게 말해주는 사람의 위로를 받는다. 말하지 않았던 내면의 이야기를 드러내니 이름 모를 누군가와도 끈끈한 연대가 형성된다. 메시지를 받고 개운한 감정에 흠뻑 빠졌다. 그리고 생각했다. '역시 이 맛 때문에 글을 쓰는 거겠지.'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 지 30주가 지났다. 시작점은 2018년 11월 30일. 마음먹은 순간 곧장 스마트폰 달력 어플을 켜서 수요일엔 '초고 완성'을, 금요일엔 '완고 업로드'를 적어 매주 반복되도록 알림을 설정했다. 초고를 완성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평소 느꼈던 바를 어떻게든 적어낼 때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으며 나는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어 간다. 이곳은 세상 앞에 겁쟁이인 내가 용감해지는 자리다.
"자신이 용감해지는 자리를 알기. 내가 글을 쓰는 이유도 이것이다." - 은유, <다가오는 말들>
일상에서 느낀 요즘의 생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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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의 일상 @yeonbly_iam
원래 수다 떠는 걸 좋아했지만 요새는 더욱 즐겁습니다. 부족한 글솜씨지만, 앞으로 일상 속 말의 무게를 좀 더 섬세하게 담아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