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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어 Nov 04. 2021

그날, 운을 믿기로 했다

- 희망을 감싸주는 단단한 껍데기

예중을 졸업하면 당연히 예고에 진학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이 벌어졌다.


“실기가 불안하니까 다른 예고에 지원해”


실기 담당 선생님이 딸한테 예상치 못한 통보를 했다. 딸의 실기 성적이 낮은 것이 문제였다.


중학생 때 드나든 교문을 고등학생 때도 계속 드나들 것으로 알았던 딸은 충격을 받았다.


다른 예고에 간다는 것을 ‘실패’와 ‘낙오’로 받아들여서 딸은 심한 좌절감을 느꼈고, 상처를 받았다.


나와 아내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경기도에 있는 예고를 가게 되면, 이사를 가야 하는지부터 이것저것 고민이 많아졌다.


그때 딸한테 ‘귀인’이 나타났다. 학교 선생님 가운데 한 분이 딸을 책임지고 가르치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말렸는데도 ‘귀인’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그날부터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난 후 밤 12시, 1시까지 고된 레슨이 매일 이어졌다.


딸은 하루가 다르게 몸이 야위어지고,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하지만 희망을 품어서인지 눈빛은 살아있었다.


무용 실력도 점점 좋아졌다. 결국 딸은 3년 동안 드나들었던 교문을 계속 드나들 수 있게 되었다.


딸과 친했던 반 친구 한 명은 다른 예고로 진학했고, 또 한 명은 입학시험에 떨어져서 일반 고등학교를 다니게 됐다.


고등학교를 의미하는 ‘高’ 자가 누군가에게는 ‘苦’이고, 진학에 실패한 이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故’ 일 수가 있다.  




마음고생을 한 후에 진학한 학교라 딸은 중학생 때보다 즐거워 보였다.


‘바라보는 시간은 길어도 지나간 세월은 짧다’ 이것은 인생에서 절대 불변의 법칙이다.


딸이 예고에 입학했을 때 3년이라는 시간이 길게 느껴졌는데, 어느새 2학년이 됐다.


2년 동안 나와 아내는 너무 안일했다. 학교에서 외부 레슨을 받지 말라고 강조해 우리는 그대로 따랐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몰래 외부 레슨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딸은 실기 성적이 또 하위권이었다. 그나마 공부는 상위권이라 딸이 목표한 대학에 지원할 수 있을 것으로 알았다.


그 예상과 기대는 완전히 빗나갔다. 2학년 말이 됐을 때, 또다시 실기 성적이 발목을 잡아 딸은 다른 대학 반에 들어갔다.


“그 대학도 좋은 학교니까 너무 실망하지 마”


나와 아내가 딸을 위로하고, 격려했지만 소용없었다. 딸은 의욕을 잃고 방황하기 시작했다.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한지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졌다.


학교 수업과 레슨을 마지못해 대충 하면서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다. 몸무게를 관리해야 되는데도 이것저것을 마구 먹어대었다.


매일 신경이 곤두서 있고, 툭하면 짜증을 냈다. 나와 아내도 참는데 한계를 느껴 화를 내고, 소리를 질러대는 게 일상이 돼버렸다.




다행히 고3 수험생이 되자 딸은 마음의 정리가 됐는지, 학교에서 정해준 대학에 지원할 준비를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영화와 드라마처럼 대반전이 일어났다.


원래 딸이 목표로 정했던 대학의 입시 전형이 변경된 것이었다. 입시 전형에 공부 성적을 더 많이 반영한다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공부로는 자격을 갖췄지만, 실기 성적이 낮아서 지원조차 못하게 될 상황이었던 딸한테는 가슴 벅찬 희소식이었다.


결국 딸은 그토록 원하던 대학에 지원할 수 있게 됐다. 희망이 생기니 딸은 180도 변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아침 6시부터 밤 12시까지 학교 수업과 외부 레슨을 받는데도 표정이 무척 밝았다.


레슨 선생님도 딸을 가족처럼 여기며 헌신적으로 가르쳤다. 딸이 또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에 ‘귀인’을 만난 것이었다. 그 덕분에 딸의 무용 실력과 실기 성적이 점점 좋아졌다.     


삶에서 고통과 좌절은 무조건 해롭거나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그 아픔을 겪고 난 후, 무언가에 희망을 품으면, 고통과 좌절로 생긴 상처의 딱지는 희망을 감싸주는 단단한 껍데기가 된다.


드디어 얼마 전, 딸이 수시로 대학 입시를 치렀다. 요즘 딸은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면서 초조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나는 사주와 운세를 믿지 않지만, 아내는 종종 보러 간다. 딸의 사주와 운세를 볼 때마다 매번 똑같은 말을 듣는다고 한다.


“얘는 걱정할 것 없어요. 꽉 막힌 것들도 결정적인 순간에 어떻게든 풀리니까”


갑자기 입시 전형이 바뀌어서 딸이 간절하게 바라던 대학에 지원할 수 있었던 것은 운이 따라준 게 아닐까. 그날부터 운을 믿기로 했다.




며칠 전, 나의 운세가 궁금해 사주를 보러 갔다. 그동안 아무한테도 듣지 못한 위로를 그곳에서 듣게 됐다.


“무능력하거나 게을러서가 아니라 초년, 중년에는 ‘결실’이 안 들어있어서 일이 뜻대로 안 되는 것이니까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 “때로는 의외의 인물이 마음에 울림을 준다. 그의 위로가 체한 듯 답답한 마음을 풀어주면, 그 말은 ‘감성 소화제’가 된다.      


그나저나 딸이 마침내 합격하면, 운을 맹신하게 될 것만 같은 상쾌한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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