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포그니 May 31. 2022

무너진 확신, 프랜차이즈의 공습



카페를 열기 위해 동막해변 앞을 무심코 지나던 중 현수막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3월 그랜드 오픈.' 카페가 또 들어서가 보군 하고 무심코 지나가려다 상호를 보고 깜짝 놀랐다. 한국형 커피 전문점을 내세운 대형 프랜차이즈였다. '평일에는 손님이 거의 없는 유원지인데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겠어. 절대 안 들어올 거야'라던 확신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 순간이다. 

전조는 있었다. 1년 전쯤인가. 우리 카페에서 좀 떨어지기는 곳에 한때 국내 매장 수 1위를 자랑했던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섰다. 아주 먼 거리도 아니다. 가보지는 않았지만 동막해수욕장 앞에 '3km 앞 ******가 있습니다'라는 안내판이 서 있는 것을 보면 차로 5분 이내면 갈 수 있는 곳이라 짐작할 수 있다. 대형 카페는 종종 있었지만 모두 개인사업자들이었지 기업형은 이곳이 처음이었다.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사회경제용어가 있다. 자영업자들이 어느 상권을 들어와 주변을 발전시키자 사람들이 몰린다. 서울 홍대 입구나 연희동, 삼청동, 이화동 같은 곳이 대표적이다. 매출이 올라가자 임대료도 따라 뛴다. 상인들은 게다가 높은 임대료를 주고 대기업 프랜차이즈 같은 거대 자본이 들어온다. 높은 임대료를 주는 곳이 있는데 건물주들이 굳이 영세 상인들에게 가게를 내줄까. 결국 상권은 기존 상인들에서 대기업 중심으로 바뀐다. 거대자본의 골목상권 침범이다. 바로 그 현상이 동막에서 지금 막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강화도 동막해수욕장을 처음 갔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선 '조개구이집'들이었다. '한 집 건너 한 집'이 아니었다. '한 집 옆에 한 집'이었다. '배 터지게 먹는 집'부터 '아이돌이 다녀간 집'까지 가게 홍보 문구도 다양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많은 가게가 저녁만 되면 사람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이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언제나 조개 굽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우리 국민들이 이렇게 조개를 좋아하는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 

코로나 탓이었을까.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조개구이집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3~5개가 몰려있던 가건물이 철거되고 그 옆에 있던 가게도 자취를 감췄다. 경쟁이 심해지고 전염병까지 겹치다 보니 떠난 것이 아닌가 싶다. 조개구이집은 더 이상 동막의 제왕이 아니었다. 

권력은 공백을 허용하지 않는다. 상권도 마찬가지다. 하나가 떠나면 다른 하나가 그 자리를 메운다. 지금 동막의 상권을 차지한 것은 카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동막해수욕장에 들어서면서 해변에 늘어서 있는 카페 수를 세 보았다. 무려 6개다. 해수욕장에서 불과 100여 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우리 카페는 포함하지도 않은 숫자다. 이 중 5곳은 우리가 카페를 차린 2~3년 뒤 생긴 것이다. 카페가 우후죽순처럼 생긴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권력 이동은 정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이 자그마한 동네에서도 힘의 변화가 일어난다.

카페가 이렇게 많아지고 대형화됐다는 것은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그만큼 치열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새로 생긴 카페들이 우리처럼 커피와 음료만 팔지 않는다. 대부분 베이커리 또는 술도 함께 취급한다. 규모도 비교가 안 된다. 우리 카페는 29평 정도의 소규모 영업장이다. 새로 생긴 곳은 적어도 2~3배는 돼 보인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에서 경쟁은 결코 실력만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낀다. 서울 강남 대치동 주민들의 자녀가 공부를 잘하는 이유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그 비싼 학원에 다닐 수 있을 만큼 많은 돈을 쏟아부을 수 있는 능력이 되기 때문일 터다. '개천에서 용 나는' 시절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카페도 마찬가지다. 자본은 곧 경쟁력이다.  

매출이 줄어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예년 같으면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은 밀려오는 손님들로 정신이 없었다. 이러다 죽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 옛날 얘기다. 얼마 전 어버이날 때의 일이다. 조카 결혼식이 있는 날이라 좀 늦게 나왔고, 날씨도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매출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5시간 노동의 대가는 딱 한 팀의 방문이었다. 개업 초기 가졌던 장밋빛 환상은 그날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춘 저녁노을 마냥 사라졌다.

대신 카페를 하면서 생긴 버릇이 하나 있다. 틈만 나면 SNS에 들어가 보는 것이다. 홍보를 하기 위한 게 아니다. 우리 부부는 SNS를 거의 하지 않는다. 인스타그램도, 페이스북도 계정만 있을 뿐 게시물은 거의 공란이다. 하는 게 있다면 아내, 아니 사장님이 블로그를 하는 정도다.  이것 역시 카페 얘기는 거의 없다. 모르는 사람과 말을 섞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장님이 전혀 본 적 없는 사람들에게 주절주절 얘기를 늘어놓을 턱이 없다. '일상을 기록하는 용도' 정도다. SNS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남들은 홍보를 위해서라도 SNS를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솔직히 자신이 아니다. 그건 선전이지 소통이 아니라는 자존심도 한몫했다. 비용을 대면 SNS 홍보를 해 주겠다는 곳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럼에도 SNS에 들어가 보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 하는 것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좋은 평가를 받으면 프랜차이즈 카페의 공습에 대한 위안을 받을 수도 있다. 물론 가지 말라는 글을 남기는 손님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손님은 SNS에 "이렇게 맛없는 커피를 팔면서 그렇게 비싸게 받아 처먹어!' 하면서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손님마다 취향이 다를 수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하면서도 속 넓은 척해보지만 어딘가 쓰린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반면 '커피가 맛있다' '그림 같다' '나만 알고 싶다'는 등의 평가가 나오면 기분이 '업' 된다. 자존심 강한 사장님은 '내가 했는데 당연하지' 하고 말하지만 남들의 평가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노예는 고맙기만 하다. 

얼마 전 강화도에 카페 여행 온 적이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손님은 블로그에 남긴 글을 본 적이 있다. "강화도 찾아가면 이 카페 꼭 들러주길/사람이 많아지는 것은 싫지만 그렇다고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 것은 더더욱 바라지 않으니 말이다/사장님 오래오래 카페 운영해 주세요." 소심하게 여기서나마 답해본다. "고맙습니다. 끝까지 살아남아 보겠습니다. 꾸벅." 

이전 04화 로망에 대하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