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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Sep 27. 2023

물이 언제 들어오냐고요? 저도 잘 몰라요

한 손님이 다가온다. 50대 초반쯤 됐을까. 거침없이 다가오는 품새를 보니 분명 무언가를 물어보기 위함이다. 손님들의 질문은 대부분 뻔하다. 이 동네 맛 집이 어디냐, 관광지를 가려하는데 어떻게 가면 되나 이런 것들이다. ‘이 손님은 무엇을 물어보려고 저렇게 당당히 올까. 뭐 비슷하겠지.’ 섣부르게 판단해 본다. 

“여기 포인트가 어디예요” 헉! 허를 찔렸다. 이런 질문이 나오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잠시 멍해졌다. 포인트? 분명 낚시 포인트를 말하는 것이겠지. 그걸 왜 나한테 물어볼까. 내가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였나. 아니면 강화에 있으니 그 정도는 알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낚시라고는 태어나서 딱 한번, 그것도 제주도에서 가족 낚시를 한 게 전부다. 아내와 아들 역시 마찬가지. 남들이 수십 마리 잡을 때 우리는 손가락만 한 고기 세 마리 잡은 게 고작이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니라 우리 가족 세 명이 잡은 고기 수다. 아내는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열받는다고 말한다. 이런 사람에게 낚시 포인트가 어디냐고 물으면 어떻게 하나. 

이럴 땐 괜히 아는 척하면 안 된다. 괜히 엉뚱한 곳을 말했다가 욕만 먹을 수 있으니. 최대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한다. “제가 낚시를 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여기선 말끝을 흐리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상대방도 더 이상 묻지를 않는다. 사실 손님들이 무슨 죄인가. 강화에서 카페를 하니 당연히 강화에 대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입장을 바꿔 내가 고객으로 갔어도 당연히 그렇게 여겼을 것이다. 그 손님 입장에서는 대답을 제대로 못한 내가 오히려 이상했을 터다.

동해나 서해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 중 십중팔구는 바다를 보고 싶어 한다. 넘실거리는 파도와 보석처럼 반짝이는 수면을 생각하며 발길을 멈춘다. 운이 좋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상당수는 실망을 하고 돌아가기가 일쑤다. 서해, 강화는 동해처럼 어느 때 가든 푸른 바다와 출렁이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바닷물이 들어와 있는 해변을 볼 수 있는 기회는 10번 중 2~3번 정도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모두가 잠들거나 앞이 잘 보이지 않는 밤에나 경험할 수 있다. 당연히 ‘바다 보러 왔다가 뻘밭만 보고 가네’ ‘너무 아쉽다’는 탄식이 자주 들린다. ‘강화에는 왜 바닷물이 안 들어와요’라는 항의 아닌 항의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카페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바닷) 물이 언제 들어와요”다. 솔직히 나도 잘 모른다. 아는 것이라곤 초등학교(라테는 국민학교) 때 배운 밀물과 썰물이 지구와 달의 인력 때문에 생기는 사실과 그것이 일정한 시간을 두고 반복된다는 것뿐이다. 문제는 조류가 바뀌는 게 시간차다. 12시간이나 24시간마다 바뀐다고 하면 오죽 좋을까. 언제 들어올지 예측 가능하니 말이다. 오늘 오전이 썰물이면 밤에는 밀물이 될 테고 내일 오전에 다시 뻘밭을 보게 된다고 얘기할 수 있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후 갯벌 밖에 보이지 않는 동막해변. 저 멀리 보이는 바닷물이 밀물인지 썰물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조류의 흐름이 바뀌는 간격이 6~7시간이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침에 들어올 때도 있고 밤에 들어올 때도 있다는 얘기다. 매일매일 지켜보지 않는다면 언제 들어올지 알기 힘들다. 우리처럼 주말에만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물론 예측은 해 볼 수 있다. 보통 카페에 올 때 갯벌만 보이면 오후 4~5시쯤에는 바닷물이 들어온다. 그저 지금 바닷물이 어디쯤 있는지 눈대중으로 보고 언제쯤이면 카페 앞 해변에 도착하겠구나 하고 짐작할 뿐이다. 바닷물이 멀리 있으면 그나마도 알기 힘들다. 물의 흐름을 볼 수 없으니 들어오는 것인지 나가는 것인지 감으로 때려잡아야 한다. 그나마도 맞으면 다행이다. 언젠가는 썰물 때를 밀물 때로 착각해 1~2시간 후면 들어올 것 같다고 했다가 난감해한 적도 있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척 하지만 속으로는 자책하기 일쑤다. 가장 손쉽고 정확한 것은 스마트폰으로 밀물과 썰물 때를 알려주는 시간표를 찾는 것이다.

이런 질문이 나오게 된 근원은 아주 단순하다. 강화 해변에서 카페를 하고 있으니 강화도에 살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물론 여행객보다는 많이 알 수 있다. 초지대교를 지나서 동막해수욕장까지 가는 길이나, 중간에 마트가 어디에 있는지는 누구보다 빠삭하다. 길이 막혔을 때 안 막히고 빠르게 갈 수 있는 나만의 비밀 루트도 있다. 그게 전부다. 강화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은 어떻게 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이런 것들은 전혀 알 수가 없다. 정족산성을 쌓을 때 이곳 주민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신미양요 때 총을 들고 나섰던 포수들은 어느 집안사람들이었는지, 초지대교가 만들어지고 강화 곳곳에 생긴 펜션과 카페의 주인 중 상당수가 왜 외지인들인지, 원주민들은 다 어디 갔는지 나는 알 길이 없다. 주말에만 몸을 강화에 둘 뿐 나머지는 모두 서울에 두고 다니는 이 노예는 강화 주민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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