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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그니 Mar 26. 2024

박 씨 부인 동성애 스캔들의 전말

1482년 6월 10일 투서로 시작된 희대의 조작극

동성애법에 서명하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

동성애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뜨거운 감자다. 단순히 '정상적'인 부부 또는 연인이 아닌 남성간 또는 여성간 사랑은 생물학적으로나 유전학적으로나 좋지 않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다. '더럽다' '혐오스럽다'는 표현이 항상 따라다닌다. 좋고 나쁨의 이분법도 따라다닌다. 어릴 적 친구들끼리 팔짱 끼고 노는 것은 괜찮고 어른이 손잡고 다니는 것은 죄악인 것도 같은 논리다. 미국 흑인 문학의 거장 어니스트 게인스가 던졌던 "왜 우리는 하나의 문화로서, 두 손을 잡고 있는 남자보다, 총을 들고 있는 남자를 보는 게 더 편한 걸까?"라는 질문에 우리는 아직도 대답을 못하고 있다. 보수적인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자칭 '진보'라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종류의 차별에 반대한다는 '차별금지법'이 언급되고 '레즈비언'이니 '게이'라는 단어가 사회 곳곳을 누비고 '사랑에 남녀가 어디 있냐'는 말까지 나돌고 있지만 정작 자신과 관련된 문제로 다가오면 손사래를 치며 뒷걸음질 치기 바쁘다.

지금도 그럴진대 남녀가 엄격했던 시기, '남녀 칠 세 부동석'을 외치던 조선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다. 세종 때 세자빈 봉 씨의 동성애 사건은 조선 왕실은 물론 사회까지 뒤흔든 대형 사건이었다. 동성애가 자신의 잘못을 덮으려는 행태도 나온다. '박 씨 부인 동성애 스캔들'의 등장이다.  

1482년 6월 10일. 대내(大內, 왕과 왕비, 대비 등이 거처하는 곳)에 한 통의 언문 서한이 날라들었다. 내용이 충격적이었다. 성종의 사촌 동생이자 예종의 둘째 아들 제안대군 이현의 아내 박 씨가 계집종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다는 것이었다. 세종 때 세자빈이었던 순빈 봉 씨의 동성애 스캔들에 대한 악몽이 아직 남아있던 시절, 박 씨가 몸종들과 놀아났다는 소문은 그 자체로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내명부와 관련된 일인 만큼 왕실의 가장 큰 어른이었던 왕대비에게 알리는 것이 시급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실이 확인되기 전까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막는 것. 성종은 서둘러 환관과 형방승지를 담당했던 우부승지를 불러 비밀리에 이 사실을 왕대비전에 알리고 철저히 비밀로 하도록 했다.

사실 확인을 위한 국문은 신속하게 이뤄졌다. 먼저 박 씨의 시중을 드는 몸종과 유모가 불려 왔다. 이들이 밝힌 내용은 이랬다. "이현의 계집종이었던 내은금과 금음덕, 둔가미가 한 달 전부터 박 씨와 동침을 했습니다." 계집종들을 문초하자 더 구체적인 내용이 흘러나왔다. 내은금은 박 씨가 '내은금이 없으면 그리운 생각이 난다'는곡을 지어 노래를 불렀다고 진술했고, 금음덕은 "나는 사양했으나 부인이 '네 사내의 흔적이 네 몸에 붙어 있느냐'며 잠자리를 강요했다고 덧붙였다. 유모 역시 불과 며칠 전 박 씨 부인의 또 다른 몸종과 함께 내은금과 부인이 함께 자는 것을 보았다고도 했다. 이들의 말만 들으면 박 씨 부인은 몸종들과 동성애를 한 것이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이들의 진술은 이틀 뒤 이뤄진 승정원의 국문 과정에서도 그대로 반복됐다. 몸종들은 박 씨 부인의 명을 따르기 싫었지만 거절하기 힘들었다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

아즈텍 동성애자들이 대화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

지금도 동성애 사실이 밝혀지면 사회적으로 매장당한다. 연예인이건 운동선수건 마찬가지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성전환수술을 한 사람과 동거를 했는데 상대가 성전환수술을 한 동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 이상 영웅 대접을 받지 못한 게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박 씨 부인은 어땠을까. 동성애자라는 낙인이 평생을 따라다녔을 게 뻔하다. 가문에서 쫓겨나거나 아무도 몰래 죽임을 당했을 수도 있다. 제안대군 부인으로는 더더욱 살아갈 수 없었을 것이다.

박 씨 부인이 동성애를 했다는 것으로 끝날 것 같던 사건은 바로 다음날부터 반전을 맞이한다. 승정원 심문관들이 박 씨와 동침한 여자종은 사형을 면할 수 없다고 다그치자 분위기가 변했다. 잠자리를 같이 했다고 한 둔가미는 "유모인 금은물과 내은금의 꾐에 빠져 잠자리를 같이했다"라고 말한 반면 금음물은 "그렇지 않다"라고 반박했다. 여종들의 진술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틀 뒤에는 박 씨가 자신이 무고를 당했다며 직접 나섰다. 여종들이 동침을 하겠다며 왔지만 자신이 꾸짖어 돌려보냈다는 게 부인의 하소연이었다. 여종과 같이 잠자리에 누워 있었던 것도 자신이 잠든 상이 몰래 들어왔다며 당시 상황을 자세히 설명했다. 정황상 박 씨가 누명을 썼다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후 박 씨 스캔들이 조작됐다는 증언이 줄을 이었다. 박 씨와 함께 관계를 나눴다고 했던 노비 둔가미는 금음물(유모)와 내은금(여 몸종)이 부인과 잠자리를 함께 하도록 강요했지만 박 씨가 거부해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실토했고, 다른 여종들도 짜인 각본대로 대답했다고 이전 진술을 뒤집었다.

사건의 진상이 드러남에 따라 스캔들을 주도적으로 조작했던 유모는 사형에 처해지고 나머지는 장 100대와 삼천리 밖 오지로 유배를 떠나게 됐다.

판결은 이렇게 내려졌지만 의문이 여전했다. 왜 종들이 거짓말로 주인을 모함하려 했을까. 그들에게 무슨 이익이 된다고.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제안대군에게는 원래 부인이 있었다. 하지만 신경계에 이상이 있어 현기증을 겪거나 걷다가 쓰러지기를 반복하자 대왕대비 정의완후의 명으로 이혼을 시키고 박 씨를 새 부인으로 맞았다. 후대를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

문제는 다음부터였다. 사건이 일어나기 한 달 전 제안대군은 자신이 버렸던 첫째 부인인 김 씨(金氏)와 몰래 만나고 있었다. 조선에서는 정실부인을 둔 상태에서 이혼한 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을 법으로 금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했다. 오히려 재결합을 강력히 요구했다. 제안대군의 입장에서 본다면 박 씨는 첫 번째 부인 김 씨를 들이는데 걸림돌이었을 것이다. 1525년 12월 14일 제안대군이 사망했을 때 제안대군에 대한 사관의 평가는 눈여겨볼 만하다. "이현(제안대군)은 성격이 어리석어서 남녀 관계의 일을 몰랐고, 날마다 풍류와 음식 대접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성종은 제안대군의 행실을 감싸기만 했다. 김 씨 부인을 만나는 제안대군의 죄를 물어야 한다는 대신들의 벌떼 같은 상소에도 성종은 '그럴 수 없다'며 눈감고 넘어갔다. 예종의 둘째 아들이자 원자로 책봉돼 사실상 적장자의 지위를 가졌던 제안대군 대신 자신이 왕위를 차지한 데 대한 미안함이 한몫했을지도 모른다.

왕대비였던 정희왕후의 행보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정희왕후는 사건 발생 6개월이 지난 후 박 씨가 '불손한 일'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제안대군과 박 씨를 갈라놓을 것을 임금에게 청했다. 성종 즉위 이후 7년이나 수렴청정을 했던 정희왕후였다. 서슬 퍼랬던 세조의 부인이기도 했다. 성종에게는 청이 아닌 명령으로 들렸을 것이 분명하다. 과연 박 씨가 쫓겨나야 할 만큼 잘못한 '불손한 일'은 무엇일까. 정희왕후의 설명은 황당했다. "그(박 씨)가 궁에 들어왔을 때 간곡하게 부녀의 행실을 가르쳤는데 즐겨 듣지 않았는데, 제안의 말을 즐겨 듣겠는가. 불손한 것이 이와 같으니 의리로 마땅히 버려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이 말하는데 딴짓을 하거나 의문을 제기했다는 의미다. 누가 들어도 핑계로밖에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정희왕후의 위세에 눌러 아무도 나서지 못할 때 사헌부가 총대를 멨다. 대사헌 이철견은 제안대군이 박 씨와 이혼한다고 하자 '불가'를 외쳤다. "자상하게 가르치고 나이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다 끝내 고칠 수 없는 뒤에 버려야 하는데 어찌 마땅히 나이 어린 사람에게 성인의 도리로써 모두 꾸짖겠습니까." 말은 용서해 달라는 것으로 포장했으나 속으로 담고 있던 '별 것 아닌 일로 이혼시킬 수는 없다'는 의중을 담았다. 이철견의 반대는 한 번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상소는 무려 다섯 번이나 이뤄졌다.

대사헌의 반대에도 제안대군의 이혼은 이뤄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제안대군이 첫째 부인 김 씨와 다시 결혼하려 했다. 그때 성종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제안대군이 둘째 부인인) 박 씨를 박대하니, 이것으로 인해 노비가 박 씨를 모해하여 못하는 짓이 없었다." 박 씨의 동성애 스캔들이 제안대군으로 인해 발생했다는 것이다.

드디어 진실의 문이 열렸다. 동성애 스캔들은 제안대군이 김 씨와 재결합하기 위해 박 씨를 모함하면서 벌어진 무고사건이었다. 주연은 제안대군, 조연은 정희왕후와 몸종들이 출연한 '스캔들'의 진실은 이렇게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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