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성윤 Jan 06. 2020

영어를 잘하려면 골프를 배워보라

골프보다 쉬운 영어

성인이 영어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거쳐야 하는 과정과 가장 유사한 것이 무엇일까? 모든 분야를 통틀어 나는 주저 없이 골프를 배우는 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영어와 골프. 이 둘은 닮아도 너무나도 닮았다. 어디 함 볼까?  


골프에서 "드라이버샷"(티 박스에 올라가 1번 우드로 치는 샷)을 순 우리말로 뭐라 하는지 아는가? 네 글자.  

"왜이러지"이다.


그렇다면 페어웨이에 떨어진 공을 치는 "아이언샷"은 우리말로 뭐라 할까? 이것도 네 글자.

"이상하네"다.


골프를 수 년째 배우고 연습했어도 막상 필드에 나가면 맘 같이 안 될 것이다. 공이 똑바로 나갈 때보다 왼쪽(훅) 또는 오른쪽(슬라이스)으로 날아가거나 공의 윗부분을 잘못 때려 땅 위를 굴러가는 하키샷을 할 때가 많다. 그래서 공을 치자마자 입에서 나오는 말이 "왜이러지" 또는 "이상하네"다. 이런 현상은 연습이 부족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연습을 많이 한 경우에도 종종 일어난다. 골프 이론에 너무 집착하여 생각이 많아지고 근육이 맘같이 움직이지 않는 Paralysis by Analysis (직역하면 '분석으로 인한 마비') 일 경우가 많다.


스윙을 했으나 공은 그대로. 헛스윙을 하고도 "왜이러지" 할 때가 종종 있다


이 점은 영어도 마찬가지다. 수년간 성문종합 영어와 보카 33000을 달달 외워 시험에 고득점을 하고도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난다. 관계대명사니 전치사니 온갖 문법 지식들은 생각할수록 머리가 마비되는 느낌이다. 분석할수록 마비 증세가 더 온다. Paralysis by Analysis 그 자체다. 전 국민이 How are you? Fine thank you, and you? 딱 여기까지다. 이후로는 머릿속이 하얗다. 한국어로 생각하고 그것을 영어로 번역하여 - 이것을 Mental Translation이라고 한다 - 대답을 하려고 하면 상대방은 이미 가고 없다. 우리는 영어를 배운 게 아니라 영어 시험 치는 법을 배운 것이다.  


대부분의 구기 종목이 공을 보내는 방향과 시야의 방향이 일치한 다. 따라서 관절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에 맞게 몸의 각 부분을 움직인다. 그러나 골프는 드물게 좌우로 몸을 빨래 짜듯 꼬면서 자기가 바라보는 방향의 직각으로 공을 쳐 보내는 운동이다. 그래서 평소에는 전혀 안 쓰던 근육을 쓰게 된다. 골프를 처음 배울 때 생전 아파 보지 않았던 근육이 쑤시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 다. 내 몸에 이런 근육이 있었나 싶을 정도다.

영어라는 생소한 언어를 배울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된다. 평소에 안 쓰던 방식으로 혀를 제어해야 하고 뇌라는 근육에 영어라는 이질적인 언어를 안착시켜야 한다.


사실 골프와 영어를 배우는 원리는 같다. 주장이 아니라 뇌인지과학적으로 그렇다.


둘 다 우리 뇌의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이 아닌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에 의존하여 습득한다. 서술적 기억은 소위 말하는 "암기"에 동원되는 기능이다. 전화번호, 자동차 번호판, 집주소, 첫 데이트 때 그녀가 입었던 옷 등. 의식적 기억이라고도 한다. 서술적 기억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망각하게 된다. 반면 절차적 기억은 "습득"이 되는 것들이다. 악기, 자전거, 수영, 골프, 그리고 언어를 배울 때 의지하는 뇌의 기능이다. 시간이 지나도 우리의 "몸 기억"으로 남는 것들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하는 시험공부는 서술적 기억을 동원한다. "공부"가 영어 실력 향상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전에 쓴 <새해에도 당신은 영어가 안된다>의 쌍쌍바 vs 돼지바 비유와, <영어공부의 허튼짓, 단어 암기>를 참고하기 바란다.


절차적 기억으로 습득되는 것들의 공통점 두 가지로부터 우리는 영어를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다. 적어도 여태껏 학교에서 하던 방법은 모두 중단해야 함을 알게 될 것이다.  


첫 번째 공통점, 암흑기가 존재한다. 다른 말로 잠복기. 노력한 것에 비례해서 실력이 늘지 않고 어느 순간에 실력이 수직 상승하는 느낌이 온다.


     서술적 기억                  vs                절차적 기억


제가 몇 년 동안 하면서 느낀 건데... 제 경우 실력이 조금씩 조금씩 느는 것 같지 않습니다. 즉 한동안 전혀 실력이 늘지 않다가 어느 순간 뭔가 딱 깨달음을 얻고 실력이 수직으로 상승합니다. 그 후로 또 한동안 실력이 그 수준에서 늘지 않다가 또 어느 순간 확 늘고... 그런 식이었습니다.


이 글은 인터넷 모 블로그에 올라와 있는 ‘게임 실력이 늘지 않는다’라는 네티즌의 고충에 대한 어느 고수 학생의 댓글이다. 이렇게 온라인 게임 실력조차 계단형 그래프를 그리며 성장한다. 절차적 기억으로 습득이 되기 때문이다.  


영어, 골프, 자전거, 수영, 피아노, 온라인 게임 등 절차적 기억으로 배우는 모든 것은 아무리 노력해도 진전이 없어 보이는 ‘암흑기’가 존재한다. 사실은 암흑기가 아니라 실력이 축적되고 있는 '잠복기'인 것이다. 그러나 암흑기든 잠복기든 우리같이 ‘빨리빨리’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일이다. 하루하루 차도를 보여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꾸준히 하기보다 성과가 없어 보이면 금세 방법을 바꾼다. 이런 이유로 '딱 100일만', '하루 10분', '30일 완성' 정도의 문구가 나와야 눈이 간다. 그러나 이 우주를 통틀어 30일 만에 외국어를 완성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학원을 선택할 때에도 단기간에 실력을 늘게 해주는 학원이 인기가 많다. 학원의 상술에 넘어간 많은 학부모들이 자녀의 영어실력이 하루하루 느는 것이 눈에 보인다며 흐뭇해한다. 학원에서 암기력을 키우고 있는 사이에 아이의 머리는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골프를 배워 본 사람은 자신의 골프 스코어가 계단형을 그리면서 향상된다는 사실에 공감할 것이다. 스코어가 100타 밑으로 좀처럼 내려가지 않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90타대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다 다시 한동안 점수가 꿈쩍도 안 하다가 갑자기 또 한 번 발전하여 80타 대에 진입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잠복기를 제대로 보내는 것인가?

 

두 번째 공통점, 생각의 축적이 필요하다. 절차적 기억으로 습득되는 것들의 두 번째 고통점은 잠복기 동안 생각의 축적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 잠복기를 가장 잘 보내는 방법은 생각할 수 있는 Input 환경에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노출시키는 것이다.


골프 실력이 늘기 위해서는 연습장에 가서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런데 연습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 생각 없이 같은 스윙을 반복적으로 훈련하는 것이 아니다. 자세를 바꾸어 보면서 방향이 왜 안 맞는지, 거리가 왜 안 나가는지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반복해야 한다. "왜이러지", "이상하네"는 필드 나가서 하는 게 아니라 연습장에서 하는 것이다. 필드에 나가서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연습량을 믿고 아무 생각 없이 스윙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린 반대로 하고 있지 않았었나? 연습장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반복만 하고, 필드에 나가서 공이 안 맞으면 그때부터 생각이 시작된다.


우린 영어 공부를 할 때에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소위 말하는 '패턴 잉글리시' 인강을 제공하는 성인 왕초보 영어 프로그램들을 보라. 아무 생각 없이 패턴을 암기하고 반복한다. 그러고 나서 막상 영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연습하고 외웠던 것을 머릿속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머리가 바빠진다. 실전에서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하고 싶은 말이 저절로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의 다른 말은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인 것이다.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다.


영어는 사고(상상, 추론, 비판, 감상)하는 과정이 축적되어 스스로 깨달아(자각) 저절로 생기는 능력이다. 


평소에 생각을 축적하면 실전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는 것이 언어인 것이다. 우린 여태 반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 적고, 반복 훈련하고, 암기하고. 실전에 닥치면 암기한 것을 기억해 내느라 머리가 바빠진다. 머릿속으로 한국어로 생각하고 영어로 번역해서 문장을 구성해야 말을 할 수 있고, 영어가 들어오면 한국어로 해석해야 이해가 간다. 아주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은 암기한 것을 기억해 내는 행위가 아니다.     


생각의 축적을 하는 행위 중 가장 효과적이고 검증된 것은 독서뿐이다. 게다가 독서는 커뮤니케이션의 3가지 요소인 사고력, 언어자각력, 그리고 관점 획득력을 동시에 축적시키는 아주 이상적인 학습 행위이다.          


결국은 Reading이 답이다.

<영어공부의 허튼짓, 단어 암기>의 후반부에 어떻게 Reading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놓았으니 참고 바란다.


물론 Listening을 위해 영화, 미드, 영드, TED 동영상 등을 잘 활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Reading Listening 뇌에서 비슷한 처리과정을 거친다

<Linguistic and Psychological Factors in Speech Perception and their Implications for Teaching Materials>, Wilga Rivers, SMT


다음 글은 영화, 미드 등을 활용하여 어떻게 리스닝을 향상할 수 있는지 써 볼 생각이다.



이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