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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l 07. 2023

양이의 사회적 거리 두기

코로나 기간 ‘사회적 거리’는 생활 언어가 되었고 팬데믹이 지난 지금은 우리의 일상에서 희미해진 용어가 되었지만, 양이와 나 사이에는 분명한 사회적 거리들이 존재하고 있다. 코로나 전염병 예방을 위한 사회적 거리가 2m인데 비해, 양이와의 사회적 거리는 1, 3, 5 m의 규칙을 지키고 있다. 1m는 제일 가까운 접근 거리로서, 일년에 몇 번 안 되지만 누워 있거나 앉아 있는 나에게 1m의 범위내로 다가오는 경우이다. 얼만 전에도 1m 거리가 한번 있었는데 누워 있는 나의 머리 곁에 엉덩이를 들이대고 10분쯤 앉아 있었다. 흔치 않는 1m 거리가 되면 행여 나의 작은 움직임에 양이가 가버릴까 가만히 있는다. 


3m는 양이가 가장 편안해하는 거리이다. 이해를 쉽게 하자면, 소파의 양쪽에 각자 앉아 있는 거리이다. 내가 소파의 오른쪽 끝에 앉아 TV를 보면, 양이는 왼쪽 끝에서 잠을 자는 것이다. 3m는 침대에서도 정확히 지켜질 때가 많은데, 내가 침대 한 쪽에 드러누우면 양이는 대각선으로 침대 끝자락에 자리를 잡는데 그 거리가 3m 정도된다.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할 때도 양이는 3m의 거리에서 나를 쳐다보는데, 심심할 때 내가 무엇인가 하고 있는 것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 눈치이다. 한편 양이가 불안할 때 보이는 거리는 5m이다. 낯선 사람의 방문이나 소음이 들리면, 벽장 속이나 침대 밑으로 숨어 버리는 거리이다. 


흥미로운 것은 양이가 일관적으로 1, 3, 5m 거리를 지킨다는 점이다 기분이 좋다고 갑자기 거리를 줄이거나 기분이 안 좋다고 멀어지는 것과 달리, 자기 나름의 규칙을 갖고 움직이며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양이의 거리두기에 맞추다 보면, 양이의 규칙을 존중하고 조심하게 된다. 양이가 3m정도 떨어져 있으면 덩달아 편안한 마음으로 내 할 일을 하게 되고, 양이가 벽장 안에서 잠을 자고 있으면 양이의 존재를 잊은 채 지낸다. 한 쪽이 규칙을 정하니, 다른 한 쪽도 따라가면서 상호간의 편안함을 유지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충동적인 행동을 절제하는 것이 필요한데, 기분이 좋다고 가만있는 양이를 만지거나 큰 소리로 노래를 하는 행동 같은 것을 삼가하는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상담에서 가장 인기 주제어는 관계이다. 관계로 신날 때가 있는 반면 관계로 죽을 것 같은 고민을 호소한다. 관계는 곧 나와 너 사이의 거리의 문제이다. 냉랭하고 거리감이 느껴지는 관계에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끼기도 하고, 반대로 나와 너가 없을 정도의 뒤섞인 관계에서 갈등을 경험하고 상처를 주고받기도 한다. 가족 상담 이론 가운데는, 가족 관계를 도식으로 표현해서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일방적으로 통제하는 짝사랑 관계, 한 쪽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다른 쪽에다가 푸는 삼각 관계, 그리고 관계에 서로 몰입하여 뒤엉킨 관계로 설명하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관계안에 독립된 주체 로서의 ‘나’와 ‘상대방’이 없다면, 관계의 구멍이 생길 수 있다.  


관계를 유지하는 건강한 거리는 나와 상대방 모두를 존중하는 것이다. 상대방에 맞추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고, 반대로 상대방이 나의 모든 것을 맞추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것도 생각하고, 나의 시간과 돈이 중요하다면 상대방의 시간과 돈도 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또한 내가 수고한 것을 상대방이 알아주는 것처럼 상대방의 애씀도 헤아리는 것이다. 관계에서 한 쪽으로 치우친 불균형은 갈등의 주된 원인이 된다. 관계 안에 상대방보다 내가 더 많이 있거나, 반대로 상대방이 너무 많이 있는 불균형의 문제인 것이다. 건강한 관계는 나와 상대방이 비슷하게 공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 쪽의 희생이 때로 상대방을 살리기도 하고, 한 쪽의 배려가 관계를 유지시키는데 필요하지만, 항상 희생과 배려를 담당하는 쪽은 지치기 쉽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도 양이의 1, 3, 5 원칙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아주 가깝고 의지가 되는 관계, 적당히 편하고 즐거운 관계, 형식적인 관계 등으로 나누어 생각하면, 각각의 관계에 대한 만족도를 높일 뿐 아니라, 관계로 인해 빚어지는 실망과 혼란을 줄일 수 있다. 관계처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도 없지만 관계처럼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양이처럼 자신의 성향이나 조건에 맞게 각각의 관계를 분명하고 유연하게 할 줄 아는 것은, 중요하고도 어려운 삶의 기술이다. 양이가 사회적 거리두기에서는 우리보다 한 수 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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