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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 경 Jun 28. 2023

프롤로그: 고양이처럼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

사 년 전 미국에서 살던 딸이 귀국을 하며 기르던 고양이를 데리고 왔다. 고양이라고 하면 멀리서만 봐도 길을 돌아갈 정도로 싫고 무서웠던 나는, 딸의 귀국 소식이 기쁘기 짝이 없었지만 고양이와 지내야 한다는 것이 무섭고 싫었다. 고양이를 데리고 독립할 때까지만 같이 지내자는 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이유는,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오랜 시간 떨어져 살았던 딸과의 동거를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양이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나의 집으로 입성한 첫 날 밤, 거실에 있는 화장실에 갈 수가 없었다. 야행성인 고양이가 깜깜한 밤중 거실 구석에서 튀어나와 공격할 수도 있다는 무서움 때문이었다. 아침이 되어 어디선가 웅크리고 있을 고양이를 잔뜩 경계하는 마음으로 살금 살금 화장실을 다녀오며, 화장실은 물론 이런 상태로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암담했다.  


사년이 지난 지금, 직장을 다니는 딸의 부재로 인해 나는 고양이와 단둘이 지내는 시간이 대부분이 되었다. 아침 밥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앞발로 나를 깨우는 고양이에게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을 주고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고 물 그릇을 갈며 하루를 시작한다. 중간 간식도 먹고 짬짬이 쥐돌이 놀이도 하지만 낮시간의 대부분은 쉼과 잠의 연속이라 있는 듯 없는 듯한 고양이가 나의 룸메이트가 된 것이다. 가끔 신기할 때가 있다. 고양이 하면 제일 싫어하는 동물로 꼽고 음흉하고 어두운 동물로 여겨 몸서리를 치던 내가 짝궁이 되어 살다니. 아마도 죽기 전에 싫어하던 것들과 화해하고 오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여긴다. 지금은 어떠냐고? 오랜 길거리 생활로 겁이 많고 조용하며 움직임이 별로 없는데다, 먹는 것, 노는 것도 단순하기 짝이 없는 심심한 고양이와 알콩달콩은 아니어도 무난히 롱런하는 룸메이트로 살고 있다. 


우리집 고양이의 이름은, 양이이다. 귀국하자마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간 동물병원 차트에 이름을 적어야 하는데 급한 마음에 양이라고 적은 것이 이름이 되었다(영어 이름은 데이지였다). 사람한테 람이라고, 강아지한테 아지라고 부르는 것 같아 개명을 시도했지만 뚱하고 소심한 성격, 검은색과 회색의 장모가 뒤섞인 흔치 않은 장발 이미지에 어울리는 이름을 찾지 못해 양이로 계속 부르기로 했다. 양이와 사년을 함께 지내며 고양이가 무섭지 않게 된 것도 있지만, 고양이만의 특별한 점들을 알게 되었다. 양이는 인기 고양이 영상들에 등장하는 귀여운 외모와 발랄한 성격, 사람을 따르는 고양이들과는 많이 다르다. 외모부터 검은색 장모종이라 호감형이 아닐 뿐 아니라, 반려묘로서 중요한 사람과의 친화력이나 애교, 영리함이 없다. 그러다 보니 반려동물과의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과 재미보다는, 각자 알아서 생활하는 동거와 의리가 섞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양이와 일상을 함께 하다 보니, 양이 나름의 평온한 라이프 스타일, 나와의 적절한 거리 유지, 자신을 관리하는 깔끔함, 홀로 알아서 사는 독립성 등이 눈에 띄었다. 쉼과 잠을 중요시하고 조용히 지내면서 누군가를 귀찮게 하거나 요구하지도 않지만 동시에 방해도 받지 않는 존재감이 신기할 따름이다. 자기 스스로를 지키고 돌보는 모습, 함께 사는 가족과 관계를 맺어가는 모습, 자기만의 고유함을 유지하며 꿋꿋이 살아내는 모습을 보며, 깨닫는 것들이 많아지고 종종 양이처럼 살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붙박이 장 속에서 코를 골거나, 호불호가 분명한 식사를 하고, 캣타워 일층에서 햇빛을 쪼이며 평안한 하루를 보내는 양이를 볼 때마다, 나와 딸은 동시에 하는 말이 있다. 양이 팔자가 최고네! 팔자 좋게 살아가는 양이의 라이프 스타일을 분석해 보며, 비록 양이와 종은 다르나 우리의 일상에도 적용해 볼 수 있는 지혜들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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