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작가의 책을 읽고

by 안미정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에 가자는 아들. 눈을 감고 온몸을 축 늘어트린 채 소파에서 달콤한 휴식을 즐기던 나의 미간이 쭈그러들었다. 맘 같아서는 '좀만 더 있다가'하고 우렁차게 대답하고 싶었지만 아이는 이미 나갈 준비를 마친 상태. 좀처럼 볼 수 없는 재빠른 몸놀림을 보니 정말 나가고 싶은 모양이다. 난 좀 아닌데.


밥을 먹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나면 스르륵 찾아오는 식곤증에 정신을 못 차린 지 벌써 여러 날.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단단히 마음먹은 지 고작 3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다.


"엄마 일어나~"


하고 잡아끄는 아들 덕분에 겨우 소파에서 일어나 앉았다. 그런데 신발 신으러 향하는 아들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스르륵 몸이 다시 뉘어진다.


"엄마! 안돼!"


짧고 굵게 울리는 아들의 목소리. 아들은 어느샌가 뒤를 돌아보며 나를 쏘아보고 있다.


"아니, 미끄러진 거야~"


나는 애꿎은 소파를 툭툭 치며 '거참 미끄럽네'하고 나지막이 무안한 맘을 흘려본다. 소파에서 일어나서 한 걸음을 떼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 싶다. 문득, 어제 내가 뭘 했는지 떠올려본다. '이렇게까지 피곤할 일이 없을 텐데'하며 기억을 더듬으니 살며시 웃음이 난다. 아, 맞네. 나 어제 와인 마셨구나.


결혼 전 음주 가무를 즐겼던 터라 소주 한 병은 거뜬했는데 아이를 임신하고 나면서 술을 끊었더니 이제는 술을 입에 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거추장스러운 숙취 후유증을 갖게 되었다. 이제 자기 없이 어디 가서 술 마시지 말라고 당부하던 남편의 말도 떠오른다.


나만 늙어가나 뭐. 갑자기 오기가 생겨 이 정도 숙취는 가뿐히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하며 기지개를 켰다. 목 뒤에 접혔던 주름, 무릎 뒤 갑갑하도록 땀 찼던 주름이 쫘악 펴지는 느낌은 꽤나 상쾌했다. 아직은 슬로 모션으로 작동하는 무거운 눈두덩을 두어 번 힘차게 올렸다 내리고 보니 세상도 맑게 보인다. 그리고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고 있는 아들도 아주 잘 보인다.


"엄마, 간다 간다~"


양말도 신지 않은 채 대충 발을 운동화에 구겨 넣고 현관문 앞에 널브러진 남편의 커다란 후드를 둘러 입었다. 아들의 얼굴을 한 번 더 살피니 기분이 조금 풀어진듯하다. '아들아 웃어보렴'하는 기원을 담아 조금은 높은 톤으로 그리고 신이 난 기운을 마구 얹어서 말해본다.


"자, 출발~"


하늘을 향해 뻗어본 나의 두 팔은 조금 오버였던 듯하지만.


허물을 벗고 나온 매미들이 맴맴 우는 건 이런 기분 때문일까? 집에만 머물다 보니 바깥의 공기가 참으로 다르다는 것이 실감 난다. 차고 옅고 가볍다. 된장찌개와 생선구이 냄새, 토마토 파스타와 빵 구워진 냄새가 뒤섞인 무거운 집안의 공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나도 모르게 들숨과 날숨을 깊게 내쉬고 있다.


그러자 정신이 더욱 또렷해진다. '아 나 좀 더 잘 챙겨 입고 나올걸. 누구라도 만나면 정말 창피하겠다'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아들의 얼굴을 보니 '엄마 집에 가서 옷 갈아입고 올게'라는 말은 꺼낼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하는 건 아마 아이의 초롱초롱한 두 눈에서 눈물을 쏟아내게 하고 말 것이다. 그래, 엄마가 그냥 창피할게.


"아들, 우리 어디 가?"


나는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우리 동네에는 두 개의 놀이 터가 있는데 하나는 가깝고 하나는 멀다. 나에게는 그저 거리감 정도로 다가오는 감흥 없는 놀이터일 뿐이었으니 나는 내심 아이가 가까운 놀이터를 선택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그 바람을 갖지 말았다면 덜 슬펐을까 후회했다. 아이는 먼 놀이터를 택했다.


차로 5분이면 갈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겠다는 아이를 따라 뛰기 시작했다. 들숨인지 날숨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숨이 차오른다. 아이는 이미 저만큼 멀찍이 나아갔다. 기분이 참 이상하다. 아이는 언제나 나의 곁에 혹은 나의 뒤에 혹은 내가 끌고 가는 유아차를 타고 함께 걸었는데. 자전거라는 도구를 통해 빠른 속도로 앞질러 나가게 된 아들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내 마음은 뭔가 허전하다.


아들이 두 발 자전거를 처음 탄 날도 그랬다. 앞으로 나아가면서 두발을 페달에 올려놓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던 아이가 어느 순간 균형을 잡고 깃털이 되어 내 손을 빠져나갔었다.


"계속 가. 멈추지 마. 엄마가 따라가고 있어!"


라고 외쳤지만 나는 곧 따라가기를 멈추어야 했었다. 아이의 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배밀이와 걸음마를 통해 내 품의 영역에서 벗어나고 집안의 구석구석을 차지했던 아이는 어느새 자전거를 타고 우리 동네를 활보하고 있다. 그것도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속도로. '앞으로 아이가 자동차를 타게 되고 비행기를 타게 되고 우주선을 타게 되면 나는 어떻게 이 아이를 따라갈 수 있겠는가'싶다.


"엄마, 빨리 와!"


생각이 깊어져 아들의 뒷모습을 놓칠 뻔하던 찰나, 아들이 가던 길을 멈춰 서서 나를 부른다. 멀리서 들려온 그 소리는 미래의 아들이 과거에 멈춰버린 엄마를 부르는 것 같다. '빛의 속도로 달려가는 아들이 멈춰 서서 돌아봐 주지 않으면 또는 내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따라잡지 않으면 아들과 영영 속도를 못 맞추는 것이 아닌가'하는 아찔한 생각이 스쳤다.



아등바등 아이를 쫓아 놀이터에 도착하니 아름다움이 한 아름이다.



그리고 평소에 눈여겨보지 않았던 조각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앗, 이것은?"


어젯밤 와인을 따기 전 즐겁게 읽었던 책의 한 등장인물이 떠오른다. 인류 최초의 우주 터널 탐사 하루 전 사라진 우주비행사 최재경. 김초엽 작가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실린 단편소설의 인물 중 한 명이다. 인류 최고의 기술력으로 재탄생한 사이보그 인간이 바다에 뛰어들어 우주가 아닌 심해로 사라지는 선택을 한 이유가 참 궁금했었다.


책을 읽을 당시에는 '그녀가 미션을 성공할 자신이 없었나 보다'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지금 이 조각상을 보니 다른 이유가 떠오른다. 우주 터널을 지나 저 너머의 세계를 목격하는 최초 인류가 되었다고 한들 이미 수많은 개조를 거친 몸을 가진 그녀가 지구에서 남은 생을 살기에는 감당해야 할 외로움이 너무나 크다. 그 외로움은 분명 '다른' 그녀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차단하고 상처 주는 식의 외로움이었을 것이다. 우주 터널 탐사를 떠나기도 전 수많은 구설수에 올랐던 그녀는 분명 그 족쇄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터.


그녀는 심해에서 자유로울까? 진정한 외로움은 한편으로는 진정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일까? 그녀의 미래를 감히 추측해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유로운 그녀를 가두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미안해진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기술력이 발전할수록 인간 외로움의 총합은 커진다"이다. 내가 오늘 사소하게 겪은 자전거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기술력은 우리가 꿈꿔왔던 것들을 이루게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술력을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를 더욱 크게 만든다. 결국, 기술이 인류를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는 이상적인 발상은 필연적으로 오류를 갖고 있다. 그래서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는 현재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가로 외로움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아갈지도 모른다.


김초엽 작가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기술력이 발전되어 우리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한 것을 알게 되는 날,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인한 외로움의 총합이 느는 것을 막고 사랑의 총합이 늘어나도록 하려면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 나는 그러기 위해선 아마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이 개조되어야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미래를 살아갈 내 아이에게 따뜻한 마음을 심어주는 것. 그래서 보듬고 사랑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깨우쳐주고 믿게 하는 것이 내가 아이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진화되고 강력한 인간적인 기술일 것이라고 믿는다. 자 그럼 오늘은 무엇을 먼저 해볼까.


"엄마 나 잡아봐라~"


하는 아이를 잡으러 나서야겠다.

그리고 아이를 잡으면 꼭 안아줘야지.

사랑한다고 말해줘야지.


상상과 현실의 중간쯤이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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