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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말 자연인 Jun 14. 2022

슈필라움을 찾아서

나만의 공간이 갖고 싶었다. 뉴질랜드에서 1년 정도 생활한 덕분인지 카라반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었고 평생소원이라며 아내를 설득해 카라반을 구입했다. 하자 때문에 카라반 판매자를 원망하면서 맘고생하기도 했고,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던 카라반 캠핑이 점점 부담이 된 건 한적한 공터에서 몇 번 마을 주민에게 쫓겨나고 나서부터다. 그즈음 내가 재밌게 읽던 김정운 교수의 에세이에서 슈필라움이란 개념을 접했다.


​슈필라움이란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놀이공간이라고 했다. 이 시대 중년 남성이 슬픈 건 자신만의 공간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자신만의 공간이라 여기는 자동차 운전석에서 앞 끼어들기에 그토록 분노하는 것이고, 나는 자연인이다에 열광하는 것이라고. 수긍가는 부분이다. 아무튼 김정운 교수는 외로움을 담보로 여수 섬마을 미역창고를 시세보다 배는 주고 구입해 자신만의 슈필라움을 만들어 매일 바다를 바라보면서 만족하고 살고 있다 한다. 여담이지만 그 섬은 내 고향과 가까워 여행 간 적이 있는데 산책하다 정말 몇 발자국만 더 갔더라면 집 대문이라도 구경할 수 있을 뻔했다. 아깝다.

대출이 많아 더 이상 은행빚을 늘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업무지식을 조금 활용해 국공유지 임대로 방향을 잡았다. 수의계약이 되기만 하면 저렴한 가격에 땅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국유지는 경작용으로 쓰면 수의계약이 가능한데 실무적으로 경작이란 고의로 불법경작을 이미 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변상금 조금 내고 수의계약으로 저렴하게 쓰는 것이다. 실제 기사를 보면 한국자산관리공사 임대계약은 90프로 이상이 수의계약이다. ​


나는 그게 부당하다 생각했고 주말농장을 할 테니 수의계약으로 바로 쓸 수 있게 해달라고 담당자와 싸웠다. 그렇게 여러 기관에 다수의 민원을 넣고 결국엔 수의계약 임대료의 10배 금액을 쓰고 낙찰을 받아 땅을 찾은 지 1년 정도가 걸려서야 카라반을 정박해 놓을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았다.

그 간의 과정은 정말 눈물겹다. 수동적으로 공고에 올라온 임대 물건에 입찰한 것이 아니라 바닷가 바로 앞의 땅을 직접 답사하는 등의 발품을 팔아 담당자에게 공고를 올려달라고 했다.

내 슈필라움에는 몇 가지 조건이 있었다. 카라반 진입이 가능하고 몽돌해변 바로 앞에 위치할 것, 막다른 골목에 있어 조용하고 원주민이 사는 곳과는 조금 떨어질 것, 아내 마음에 들 것. 위성지도를 샅샅이 뒤져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곳을 찾아 담당자에게 공고를 올려달라고 했다. 수개월씩 일처리 하는데 기다리는 것이 힘들었다. 속으로 무진장 욕했다. 수차례 전화를 해서 공고가 올라왔고 2주간의 공고기간에 전국에 있을 가상의 적과 얼마를 투찰 해야 하는지 상상하면서 심리적 에너지를 고갈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은 지적도가 잘못 올라갔다며 투찰 마지막 날 공고를 취소했고 다음 차수에 바로 공고해달라고 했지만 무시하고 한 달 뒤에 다시 공고를 올려줬던 것이다. 담당자가 나를 약 올리나 마음고생 많이 했다. 같은 지역 최대 낙찰률이 3배인 것을 감안해 5배 가격을 써냈지만 10배 쓴 사람에게 죽 쒀서 개준 것이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자본주의 하에서 얼마나 간절한지는 중요치 않다. 돈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 뒤로 6개월간 퇴근하고 매일 밤 위성지도로 위치를 알아보고 몇 개씩 모아놨다가 아내에게 드라이브 가자는 핑계로 둘러봤지만 아내는 전부 맘에 안 든다고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찾은 것이 현재 내가 슈필라움으로 명명한 곳이다. 카라반 진입여건이 좋고 몽돌해변은 아니지만 모래사장과 갯벌이 펼쳐져있고 본 마을과 떨어져 있어서 한가롭다. 아내도 맘에 들어했다.

그때부터 담당자에게 다시 연락해 공고를 올려달라고 했고 또 담당자는 시간 많이 끌었다. 이 핑계 저 핑계대면서 말이다. 결국 10배의 가격으로 낙찰받고 현장에 가보니 분명 있었던 흙을 옆집에서 반 정도 퍼가서 집 짓는 데 썼다. 옆집과 이 일로 싸우기도 했고 큰 개를 풀어놓아 아이가 어리니 조심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하고 민원도 넣고 하면서 이젠 원수보다 못한 사이가 되었다.

정말 눈물 나는 우여곡절 끝에 주말만이라도 아이들에게 바다를 보며 놀 수 있게 하겠다는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5일은 도시에서 2일은 바닷가 마을에서 지낼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앞으로 내가 패들보드를 타는 동안 아내는 아이들과 모래놀이를 하고, 늦봄엔 산책하면서 산딸기를 따먹고 푸른 들판을 보면서 자전거를 탈 것이다. 여름엔 비파 열매를 따먹고 겨울엔 화목난로를 피워 고구마를 구워 먹을 것이다. 가끔 바다를 바라보면서 해먹에 누워 살랑살랑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바닷가 마을에서의 추억을 선물로 주고 싶다.

여전히 10배보다 조금 더 쓴 낙찰 가격에 마음이 상한다. 배가 아프다. 주위 임대인들보다 10배나 주고 쓴다니 말이다. 이런 상황을 김정운 교수는 경제학적 이유와 심리학적 이유로 가뿐하게 정리했다고 한다. 교환가치와 사용가치라는 개념을 가져와 추상적인 시장의 가격보다는 본인이 직접 사용하려는 가격으로 이용한다고 하면 그것으로 된 것이고, 한 일과 하지 못한 일 중 후자가 더욱 괴롭다는 심리학자의 연구를 인용해 심리학적 이유는 그렇게 정리했다. 하지 못한 일로 인해 너무 많은 심리에너지를 허비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은 얼마든지 살면서 합리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그렇게 슬픈 것이라고 한다. 김정운 교수의 학문적인 정신승리를 차용해 나도 그렇게 극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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