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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Feb 04. 2024

인정과 애정을 촛불처럼 옮기는 온보딩

팀원들 마음속의 어린 아이를 바라보자

첫째에게 아기 동생을 처음으로 소개할 때


꽤 오래전 우연히 보게 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의 한 에피소드 중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아직 3,4살 정도의 아기인 첫째가, 신생아에 가까운 아기 동생을 너무 심하게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문제 행동을 처음 본 저는 '저렇게 어린데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이 하나만 있으면 기를 쓰고 괴롭히는구나. 역시 사람은 날 때부터 악해.'라며 비관적인 생각으로 혀를 끌끌 차고 있었는데


마법 같은 오은영 선생님의 솔루션 시간,


신생아인 둘째 아기를 첫째에게 처음 보는 순간이, 엄마 품에 둘째가 꼭 안겨있는 모습이었던 점


둘째 아이가 생긴 순간부터 신생아 육아로 바빠진 탓에 첫째에게 이전처럼 시간을 내어주지 못하고, 관심을 바랄 땐 오히려 둘째를 봐야한다는 이유로 밀어내던 부모님의 행동 등을 짚어내셨습니다.


이어,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되면 원래 있던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순간에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기를 품에 안고, 원래 있던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새로운 아기를 만나는 것을 권장하는 화면이 나왔고,


그렇게 아기를 만나고 나서는, 엄마가 직접 첫째 아이의 손과 아기의 손을 대어 크기를 비교해주고 얼마나 여린지 보여주면서 세상에 갓 나온 아기는 너에 비해 너무나 연약하고 작다는 것을 알려주고 '그러니까 우리 함께 아기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자.'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퇴근 후에 바로 아기를 보러 가기보다는, 먼저 옷도 갈아입기 전에 첫째에게 가서 애정과 관심을 듬뿍 표현해준 뒤 함께 손을 잡고 아기에게로 가는 것을 권하셨습니다.


이후 드라마틱하게 바뀐 첫째의 모습은 방송의 힘인지도 모를 일이지만, 


적어도 내가 아직 어린 아이인데 부모님이 어느 순간 새로운 아기를 데려오더니 아기에게만 집중하고 원래 함께하던 시간들이 사라져버린다면,


그것을 폭력적으로 분출하지는 않더라도, 아주 아주 공허한 마음은 꼭 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엄마 아빠가 다시 예전처럼 퇴근하자마자 나를 안아주고, 내 손을 잡아주고 내게 눈을 맞추며 함께 아기를 보러 가준다면 눈물나는 행복감과 함께 그간의 서운함이 사르르 녹아내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음이 어린이에게만 들까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인정과 관심과 사랑을 오롯이 나에게만 부어주던 사람이 어느날 갑자기 다른 대상에게 그것을 훽 돌려버린다면 어느 어른이라도 같은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이 어릴 때보다는 훨씬 성숙해졌더라도 말입니다.



어른이라고 다를까?


그렇게 오래 전에 본 프로그램을 잊고 살아가던 중, 


스타트업에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사회생활을 해나가던 동생으로부터 고민 상담 전화를 받고서 문득 이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들어보니 이직 후 처음 입사했을 때 모두가 자신을 환영해주고, 미팅에서 자신의 결과물을 발표할 때마다, 한명당 하루에 줄 수 있는 갯수가 정해진 칭찬 이모지를 자신에게 전부 쏟아부어주던 동료들이 더 이상 그러지 않아 속이 탄다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어하고 서운해하는 동생이 안타까웠지만 , T인 제가 해줄 있는 반응이라고는 아주 안타까운 목소리로 현실을 알려주는 정도였습니다.


"온보딩 기간을 기본값으로 생각하면 힘들지. 아무래도 언제까지나 네게 모든 칭찬 이모지를 쏟아줄 수는 없는거니까......"


그러자 동생이 더 속상해하며 답했습니다.


"나도 안다? 온보딩 기간이어서 그랬던 것도 알고, 언제까지나 나한테 다 쏟아줄 수 없다는 것도 알고, 머리로는 너무 이해해! 근데 그러니까 더 힘들어. 대놓고 말을 할 수는 없는데 근데 그걸 다시 너무 받고 싶고, 그래서 나 요즘 밤을 새고 일한다? 그 놈의 이모지를 다시 받고 싶어서? 나 진짜 한심하지 언니......"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물음을 들은 T는 동생과 다른 이유로 괴로워하며 예전에 보았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에피소드를 생각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멋지게 사회 생활을 해나가는 모두의 마음 속 한구석에는, 여전히 받던 사랑과 인정을 빼앗긴다고 느낄 때 너무나 서럽고 속상한 첫째 아기를 데리고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문제를 정의하고 최고의 해결책을 찾아내겠다며 열심히 굴러가던 머리가 차분히 멈추어 섰습니다. 


"하나도 안 한심해. 그건 누구라도 속상할거야. 우린 칭찬 스티커로 자란 아이들이라고! 근데 이제는 어른이니까 티도 못 내고 말도 못 하니 얼마나 힘들어... "



해결책은 없을까?


결국 뾰족한 해결책을 생각해내지 못하고 열심히 공감만 해주고 속상해만 해주다가 전화를 끊은 저는 어쩔 수 없는 찝찝함에 스스로 계속 문제와 해결책을 정의해 보았습니다.


특히나 팀을 리딩하고 있었고, 그 중 한 파트는 구성원이 딱 1명이었다보니 제가 곧 풀어야 할 숙제를 동생이 미리 예고해 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 첫 파트원한테 쏟고 있는 열심과 애정을, 새 파트원이 들어오면 그대로 들어다가 옮겨둘거야? 어른이라고 해서 그게 안 서운한 건 아니야. 티를 못 낼 뿐이지.'라고 말해준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자 머릿속에, 첫째 아이와 새로운 아기가 처음 만나는 순간에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아기를 품에 안고, 첫째 아이는 엄마의 손을 잡고 새로운 아기를 만나는 것을 권장하던 화면,


그렇게 아기를 만나고 나서는, 엄마가 직접 첫째 아이의 손과 아기의 손을 대어주며 '우리 함께 아기가 튼튼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켜보자.'는 메시지를 주는 화면,


그리고 원래와 같이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첫째 아이에게로 달려가 안아주며 하루가 어땠는지 묻던 부모님의 모습 등이 떠올랐습니다.


그러자 과연 이 솔루션들을 다 큰 어른들이 민망하지 않은 정도로, 부담스럽지 않은 정도로 조절해서 매니징에 적용하려면 어떤 부분을 어떻게 신경써야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늦게 들어온 팀원이라고 해서 기존 팀원보다 더 환영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신경쓰려면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붙인 불이 밝아야 옮기는 불도 밝을테니까


고민하다보니 어렵게 전략적으로 뭔가를 짜기보다는 새로운 구성원이 오기 전이든 후든 신뢰와 인정과 애정을 최대한 많이 보이는 것이 우선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으로 붙이는 불이 밝게 타야 그 불을 옆으로 옆으로 옮겨줄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제가 얼마나 팀원분을 믿고 아끼는지 최대한 진심을 담아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 빼면 아무것도 없는 시기에 이렇게 함께 해주고 많은 것을 기다려주고 함께 만들어가 주어서 제가 얼마나 감사한 마음인지 몰라요."


"ㅇㅇ님처럼 실무도 잘하고 밝고 성실하고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분을 첫 팀원으로 모시게 되어서 진심으로 저는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감사해요. ㅇㅇ님 들어오실 때 약속드렸던 것들 지킬 수 있도록, 진짜 좋은 포트폴리오 쌓으실 수 있도록 제가 계속 더 노력할게요."


작업물이 훌륭하게 완료된 모습을 볼 때마다 소위 말하는 '주접'을 떠는 일도 넘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아... 진짜 이번 작업 난리났어 어떡해. 우리 ㅇㅇ님 너무 훌륭해서 어떡하면 좋아."


"이게 뭐에요! 어떻게 지난번보다 더 잘할 수가 있어. 이젠 칭찬 듣기도 민망하지 않아요? 언제까지 내가 주접을 떨게 할 셈이야."


처음 들을 땐 민망해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나중엔 안 해주면 섭섭해하는 모습이 괜히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수시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다보니, 수정 사항에 대해 가끔 짚을 때도 혼을 내는 느낌이 아니라 '어? 혹시 여기 살짝 틀어지지 않았나요?'와 같은, 팀원분을 존중하며 여쭙는 톤으로 말씀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팀원분도 '혼난다.'고 느끼기보다는 함께 상의하며 수정해나간다고 생각했는지, 지나가던 저를 불러 세우고 작업을 어떻게 수정할 지 상의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다음 팀원에게 불을 옮겨주세요

 

새로운 팀원은 저보다 기존 팀원에게 가까운, 기존 팀원의 바로 옆자리로 배치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마다 원래 팀원분을 찾아가 원래 떨던 주접을 떨고 작업에 대해 의논을 마친 뒤, 첫 팀원분과 함께 기존 팀원분의 작업물을 보곤 했습니다.


"ㅇㅇ님, 세상에 우리 ㅁㅁ님 작업 좀 봐요. 이게 첫 작업이라니 말이 돼요?"


그러면 기존 팀원분이 마치 제가 했던 것처럼 새로 온 팀원 분의 작업물을 칭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 이걸 대체 어떻게 하셨어요? 기본 설정으로 이렇게 하셨다고요? 너무 대단하다. 저도 알려주세요!"


"진짜 이 기능을 이렇게 잘 쓰는 사람 저는 처음 봤어요."


함께 새 팀원만을 위한 칭찬 감옥을 만들며 원래 그랬던 것처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이어갔고, 동시에 새로운 팀원을 향한 인정과 애정도 쏟아주게 되었습니다.


기존 팀원에게 주던 관심을 빼앗아 새 팀원에게 주기보다는, 원래 지펴두었던 불을 그대로 함께 옮겨주는 느낌이었습니다.


이후 팀원들이 더더욱 늘어날 때마다 같은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여러분 △△님 작업 좀 보세요!"라고 외치면 기존 팀원들 10명이 신나게 달려와서 함께 감탄하고 칭찬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부담스러우면 어쩌나 걱정이 많았지만,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을 안고 들어온 신규입사자 분들은 주로 부끄러워하시면서도 크게 안도한 웃음을 보이시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 팀 분위기가 원래 이렇구나.'라고 적응하고는 금새 일상적으로 서로의 작업을 보고 칭찬을 주고 받는 문화 속으로 녹아들곤 했습니다.


저는 팀원이 10명을 훌쩍 넘었을 때도, 출근을 하면 모든 팀원들 자리에 한번씩 가서 잘 지내는지, 문제는 없는지, 오늘도 작업은 왜 이렇게 멋진지에 대해 한명한명에게 묻는 시간을 최대한 매일 가지려고 노력했습니다.


이후에는 오히려 고칠점에 대한 피드백이 듣고 싶다는 요청들이 많아서, 팀원들끼리 서로의 작업의 고칠 점을 이야기해주는 시간을 따로 만들었는데, 평소에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있다는 신뢰가 단단히 쌓인 채로 편하게 서로의 개선할 점을 주고 받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저도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첫 불을 최선을 다해 밝히고, 그 불을 옆으로 옮기는 방법만 한번 전해주니 어느새 팀은 화롯불을 밝힌 듯이 밝아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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