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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Feb 19. 2024

이젠 저 없어도 진짜 괜찮을 것 같아요

오프보딩하겠습니다.

팀을 운영하면서 가장 뿌듯한 때가 언제인지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다들 제가 무언가를 달성한 순간, 누군가를 영입한 순간과 같이 특정한 이벤트가 있는 순간을 유독 크게 기억하리라고 예상하시는 듯한데 저의 답변은 늘 동일했습니다.


그냥 팀이 일상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볼 때요.




아무것도 없는 팀에 덩그러니 떨어져 정말 뭘해야 할 지 감도 잡히지 않던 것이 불과 1년 반 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팀원들만이 있는 팀실이 생겼고, 출근해서 팀 공간에 들어가면 제가 세팅한 2개의 팀과 그에 소속된 4개의 파트 구성원분들이 밝은 목소리로 맞아주셨습니다.


자리에 앉으면 주변에서는 동료들끼리 서로의 작업물을 두고 이야기하는 소리, 주니어 팀원이 담당 사수에게 도움을 청하고 시니어 팀원이 주니어 팀원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벌써부터 점심메뉴 이야기를 꺼내며 메뉴에 따라 식사조를 짜는 소리도 들려옵니다.


아침에 팀원들을 불러 한명씩 오늘의 컨디션이나 근황, 작업 현황 등을 물으면 팀원들은 자신들이 하는 가벼운 생각부터 그 사이에 생긴 재밌는 일들을 나누어주고, 일정 조율 등에 문제가 필요하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문제를 푼 뒤 자리로 돌아갑니다.


3D팀 때문에 일이 너무 많아져서 다른 업무를 못할 지경이라고 말하는 다른 팀도 이제는 없고, 3D팀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그것이 놀림거리가 될 요소라고 생각하는 구성원들도 이제는 없습니다.


이러한 일상을 이루는 한부분 한부분을 이루기 위해 혼자 머리를 싸매고 엉엉 울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제게는 이렇게 큰 문제없이 팀이 돌아가고 있는 하루하루의 모습 자체가 기적같았습니다.


기업은 앞으로 쭉 같은 종류의 콘텐츠를 만들어나갈 것이고, 그 안에서 3D팀과 3D이미지를 배치하고 보정하는 팀원들은 자기 분야에서 높은 역량을 가진, 그리고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가진 S급 인재들로서 꾸준히 활약해나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17주의 리더십 스터디를 마친 시니어들은 이제 저의 매니징 역할을 거의 전부 분담하여 나누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전사적 흐름에 따라 시스템이 바뀌어야 할 것 같을 때는 주니어 시니어 할 것 없이 시스템 개편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고 회의에서 논의된 내용을 거쳐 기획안을 써내곤 했습니다.


안정적인 시스템과 훌륭한 팀원들이 있는 팀과 함께 평화로운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니


정말 하루하루가 새롭고 감격스러우면서 동시에 이러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나 없어도 우리 팀 진짜 괜찮을 것 같아



팀 세팅 극초기에 제가 팀에 필요했던 것은, 이 리스크 많고 고생길이 훤한 일을 할 사람이 달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팀원이 없는 팀장은 그 자체로 직책을 뽐낼 수 있는 위치도 아니고, 어느 정도 자리잡기 전까지는 보상도 크게 기대하기는 어려운 자리입니다. 


그에 비해 수많은 수고들을 감당해야 하기에, 이미 훌륭한 역량을 가지고 계신 분들께 객관적으로 메리트가 큰 자리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말로 일을 벌려놓은 저만이, 그 말을 책임져야한다는 이유로 조직관리와는 전혀 상관없었던 본래의 커리어를 완전히 접어버리고 맨바닥에서 그라인딩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훌륭한 팀원들과 제법 효율적인 시스템을 갖춘, 20명 규모의 안정적인 팀이라면 저보다 훌륭한 팀원들에게 맡기는 것이 크게 미안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분들이 저를 믿고 따라와주신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으로서 생각될 수도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2개 팀의 팀장을 겸임하고 있었기에 2명의 훌륭한 팀원들에게 팀장직을 넘겨줄 수 있었고, 그 아래로 파트장, 리드 모델러, 시니어 모델러, 주니어 모델러 순으로 한계단씩 레벨업이 되면서 안정된 팀에 한차례 환기가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반면 맨땅에 헤딩해서 성과를 몇차례 낸 것으로 과대평가된 3D모델러는, 진짜 매니저가 되기 위한 재정비와 공부, 준비가 필요해보였습니다.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지금이 언제 끝날까 싶던 이 여정을 정리할 때라고 판단하고, 


제가 처음으로 그룹장님을 붙잡고 돌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했던 그 카페에서 그룹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저, 이제 오프보딩을 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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