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빵미 Sep 03. 2024

밝은 달 옆 작은 별

  밤사이에 발 없는 소문이 학교에 쫙 퍼져 있었다. 블랙의 금테 안경에 도청 장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머리에 돋은 도깨비 뿔을 감추려고 모자를 썼을 거다, 마스크를 했다는 걸 보면 코로나19보다 더 강력한 감염병 환자이다, 하모니카 연주를 듣고 블랙과 맞닥뜨리기까지 한 한설주는 이미 영혼을 탈탈 털렸을 테니 어쩌면 좋으냐……, 등등. 

  교실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내 머릿속은 더 뒤죽박죽 되었다. 아이들은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확인하려 사물함 안에 있는 물건들을 전부 밖으로 끌어냈다. 좁은 사물함에 다 들어있었다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쓰레기가 쏟아져 나왔다. 먹다 남긴 빵과 사과 심지어 유효기간이 한참 지난 우유까지, 그것들을 보니 도둑이 침입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덕분에 쓰레기통만 가득 채워졌다. 당번이 세 번째로 쓰레기통을 비우러 나가며 투덜거리는데 꼭 내 탓인 것만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점심시간에 상담 선생님이 만나자는 문자를 보내왔다. 나는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깨작이다가 상담실로 갔다. 상담실에서는 좋은 향기가 났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향을 깊이 들이마셨다.

  “향이 좋지? 뇌를 진정시켜 안정감을 주고, 수학적 능력을 높여준다는 라벤더야.”

  마치 꽃밭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은 유리잔에 연한 노란색의 차를 따라주었다. 유리잔 안에서 꽃이 꿈틀꿈틀 피어나기 시작했다. 조금씩 벌어지던 꽃잎이 어느 순간 마술처럼 사르륵 열렸다.

  “매화차야. 매화를 여러 번 찌고 말려서 만든 건데, 신경이 예민할 때 그리고 소화불량에 효능이 있대.”

  한쪽 벽면에는 빨간 꽃들이 가득 피어있는 들판에서 양산을 쓴 여자가 아이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미술 교과서에서 본 적이 있는 풍경화였다. 바라보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무서웠지?” 

  “…….”

  “하고 싶은 말 없어?”

  “별로…….”

  “하고 싶은 말 있음 다 해봐. 괜찮아, 다른 일은 없었어?”

  “그냥 살짝 스치고 간 게 다예요.”

  블랙이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가 다다다다다닥……, 들리는 것 같았다. 하모니카 소리와 달콤하고 쌉싸름한 민트향과 함께 금테 안경의 예리한 각이 다시 반짝였다.

  “그 남자가 어디를 밀쳤어? 배, 가슴, 얼굴?”

  선생님은 내 배와 가슴과 얼굴을 차례대로 가리키며 물었다. 손가락이 내 몸에 닿지도 않았는데 배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얼굴까지, 베일 듯한 섬뜩함이 서늘하게 전달되었다. 그제야 선생님이 뭘 걱정하는지 깨달았다. 그 염려를 알고 나니 다시 온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아났다.

  “그 사람 팔이 어깨를 살짝 스쳤을 뿐이에요. 아니, 실제론 접촉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그냥 바람처럼 빠르게 지나갔어요.”

  “그럼 이 일은……, 그냥 덮기로 할까? 설주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담임 선생님도 걱정 많이 하셨어. 괜찮지?”

  나로 인하여 담임 선생님은 물론 학교까지 시끄러워지는 건 더욱 싫었다. 왜인지는 딱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찬찬히 돌이켜보면 블랙은 나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으니까, 공연히 소란을 피우고 싶지 않았다.

  “네, 많이 놀랐을 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사람이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온통 다 블랙이고 너무 빨리 사라져서…….”

  선생님은 내 몸에서 티끌 하나라도 찾아낼 듯이 꼼꼼하게 훑어보았다. 날카로운 눈초리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블랙이 내 영혼을 빼앗아 갔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꺼낼 수도 없었다. 오히려 선생님이 블랙을 너무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 것 같아 감싸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와. 상담실 문은 항상 열려 있으니까.” 

  상담실을 나오며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떠오르면서도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지나친 배려에서 오는 불편한 친절, 뭘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이 사건이 확대되길 원하지 않는 사람은 담임 선생님보다는 상담 선생님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묘하게 설득당한 느낌이었다. 어쨌든 선생님이 걱정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어떤 특별한 사람에게만 발생하는 사건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에 발가락도 놀란 듯 꼼지락거렸다. 역시 나의 식스센스는 왼쪽 새끼발가락인 것이 확실하다.    


      

  어수선한 분위기 탓에 다혜가 결석한 것을 나는 종례 시간이 되어서야 알았다. 우리는 서로 눈치를 살피며 아무도 그날의 사건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천일홍 화분이 바뀐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화분을 누가 새로 가져다 놓았을까, 궁금했지만 그 사건은 입에 올리기도 싫었다.

  선생님은 환유와 동준, 그리고 나를 불렀다. 

  “병문안을 갔으면 하는데, 설주가 가볼래?”

  우린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고 서로 눈치만 살폈다.

  “다혜가……, 어디 아파요?”

  “너희 몰랐어? 토요일에 동아리 활동 끝나고 집에 가다가, 학교 앞에서 넘어져 깁스했대.”

  “혹시, 다혜가 정7각형의 은색 선을 밟았대요?”

  세 사람이 동시에 나를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이런 엉뚱하고 황당한 질문을 던지다니, 나는 악마에게 영혼을 털린 게 틀림없었다.

  “제가 가도 될까요?”

  동준이 뻘쭘한 분위기를 깨고 물었다. 나는 늘 오지랖을 떠는 동준을 쏘아보며 생각했다. 

  ‘네가 집에 가다 확 꼬꾸라지라고 했잖아. 좋냐, 소원대로 돼서 좋아?’

  동준이 나의 날카로운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다혜가 불편할 수도 있으니까 설주가 가는 게 좋겠어. 내가 롤케이크 사놓았으니 가져가.”

  선생님이 건네준 케이크를 들고 교무실에서 나오며 나는 앞서가는 동준을 일부러 세게 밀쳤다. 평소 같았으면 가만있을 양동준이 아니었으나, 찔리는 게 있으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늘 이성적이고 차분하기만 한 환유도 얄미웠다. 결국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튀었다. 나는 환유에게 먼저 쏘아붙였다.

  “넌 공부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지? 1등만 하면 오케이?”

  이어서 동준에게도 마음에 담아두었던 폭탄을 던졌다.

  “네가 집에 가다 확 꼬꾸라지라고 했잖아. 좋냐, 소원대로 돼서 좋아? 정말 좋겠다, 축하해.”

  두 사람은 어이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폭탄을 던졌다고 해서 내 마음이 풀린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마음속에 자욱하게 연기가 번져 눈이 맵싸하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교문을 나서며 선생님이 알려준 주소를 보니 산 쪽으로 20분 남짓 걸어 올라가야 했다. 종종 산 밑의 공원으로 산책하러 갈 때 본 적이 있는 임대아파트였다. 걷다 보니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누군가 따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훤한 대낮이고, 간간이 사람들이 오가기는 했으나 블랙의 충격 때문인지 예민해졌다. 건너편에서 남자 두 명이 내려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도와주겠지, 설마 모른 척하진 않겠지, 생각하며 뒤를 확 돌아보았다. 환유와 동준이 따라오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휴, 쉬어졌으나 퉁명스럽게 몰아붙였다.

  “왜 따라오냐? 학원이나 가지.”

  “따라가는 거 아니거든. 우리도 다혜한테 가는 거거든.”

  “다혜가 싫어할 수도 있잖아!”

  “집까지는 안 갈게, 네가 들어가 보고 상황을 얘기해 줘.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나는 잔뜩 심통이 난 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아파트 단지가 엄청 넓어서 425동을 찾느라 잠시 헤맸다. 단지의 맨 끝, 산자락 바로 아래 동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길게 복도가 이어졌다. 913호, 집 앞에는 분리수거 상자와 쓰레기봉투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한 다혜의 흰 셔츠 깃이 떠올랐다. 

  초인종을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다시 두 번을 더 눌렀으나 인기척도 없었다. 나는 톡을 보냈다.

  -너희 집 앞인데, 집에 없어?

  -왜 왔어. ㅠㅠ

  -다친 건 어떤가 궁금하고, 선생님이 케이크도 갖다주라고 해서.

  -그냥 가. ㅡㅡ

  어떡해야 하나, 뻘쭘하게 서 있는데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가 빼꼼하게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다혜의 앙칼진 고함이 들려왔다.

  “열지 말라고 했지, 왜 말을 안 듣니?”

  살짝 열린 문 사이로 주방이 보였다. 아이는 오히려 문을 더 활짝 열어젖혔다. 얼핏 들여다본 집안은 현관 앞이 바로 주방이었고, 입구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목둘레가 축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다혜는 설거지하고 있었는지, 싱크대 앞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깁스한 다리가 굵은 나무토막 같았다. 

  아이에게 케이크를 건네주고 돌아서기도 전에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다. 민망하여 잠시 머뭇거리다가 돌아서려는데 다시 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금 누그러지긴 했으나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아래 벤치에서 기다려. 금방 내려갈게.”

  나는 다혜의 시선을 피하며 자리를 떴다. 다혜도 나와 눈길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왜 그냥 나와?”

  “여기서 기다리래.”

  “들어오란 말도 안 해?”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벤치에 털썩 주저앉았다. 

  “언제 학교에 올 수 있대?”

  “몰라.”

  “목발 짚고 천천히 걸을 수 있지 않을까?”

  “넌 럭비공 차듯, 뭐든 그렇게 만만하냐?”

  “너도 중2병이냐? 중2병 바이러스가 무섭게 번지나 보네. 널 보면 온 세상이 바이러스로 뒤덮일 기세야.”

  “우릴 중2병이란 틀 안에 가두지 말라며? 그런 말 한 사람이, 너 맞아?”

  “너야말로 내가 그렇게 만만하냐?”

  “아주 입만 동동 떠다니는구나.” 

  “아니, 심장도 팔딱팔딱 살아 있다.”

  동준은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서너 번 퍽퍽 쳤다. 중간에 환유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우리의 유치한 말싸움은 끝없이 이어졌을 것이다. 

  잠시 후 교복으로 싹 갈아입은 다혜가 목발을 짚고 나왔다. 셔츠 깃은 여전히 빳빳하고 눈부시게 희었다. 

  “많이 아파?”

  다혜는 내 옆에 앉아 땅바닥만 내려다보다가 환유의 질문에 힘없이 대답했다. 

  “정강이에 살짝 실금이 생긴 정도라 힘만 안 주면 괜찮아. 아픈 것 따위는…….”

  “학교는 언제 올 수 있어?” 

  “당분간 못 가.” 

  더 낮아질 수 없을 만큼, 동굴로 기어들어 갈 듯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다혜의 말투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높아졌다.

  “아니, 아니, 문제는 그게 아니야. 다훈이 어린이집에서 데려와야 하는데, 내가 매일 학교 끝나면 데리고 오거든. 얘가 이리저리 뛰어다녀서 손을 꼭 잡고 다녀야……, 그래서 오늘은 어린이집에 못 보냈어.”

  다혜는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얼굴로 깁스한 다리를 바라보았다. 모두 말없이 땅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다혜가 목발로 벤치 아래 잔디를 마구 두드렸다. 이어서 구덩이라도 팔 듯 흙을 파헤치더니 목발을 던지듯 내려놓았다. 

  “늦게 데리러 가면 어린이집 샘이 은근히 눈치 줘.”

  매일 수업만 끝나면 바람처럼 사라지던 이유가……. 다혜는 화를 억지로 참으려는데 감정조절이 안 되는지 뺨과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양손으로 앞머리를 마구 헝클이기도 했다. 늘 새초롬하고 단정하던 다혜에게 이런 감정이 숨겨져 있다니, 우린 아무런 말도 건넬 수가 없었다.

  ‘이다혜, 넌 항상 무슨 일이 그렇게 많으냐? 나도 엄청 바쁜 사람이거든!’

  양동준이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다. 사실 그 말은 내가 다혜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동준이 대신해 줬을 뿐이다. 사건은 무심코 내뱉은 그 한마디가 발단이었다. 사소한 말 한마디가 쓰나미가 되어 몰아닥치고 있었다. 나를 문설주라고 놀릴 때보다 수억만 배 더 양동이가 미웠다. 한바탕 지랄이라도 해야 마음속 응어리가 풀릴 것만 같았다. 나는 아빠와 엄마는?이라고 묻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동준마저도 아무런 말이 없었다.

  야옹야옹, 길고양이가 지나가다가 벤치 아래에 웅크리고 앉았다. 우릴 보고 도망도 안 가는 겁 없는 고양이였다. 환유가 가방을 뒤적이더니 과자를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고양이가 달려들어 허겁지겁 핥아먹었다. 봉지를 보니 고양이 사료였다. 

  “사료를 가지고 다녀?”

  “응, 항상, 길고양이 만나면 주려고.”

  오래전, 공원에 주저앉아 고양이와 놀던 환유가 떠올랐다. 환유는 아예 고양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사료를 먹여주었다.

  “별아, 잘 지냈어?”

  고양이는 환유의 가슴을 파고들며 야옹야옹,이라고 대답했다.

  “별? 아는 고양이야?”

  “아니, 내겐 모든 고양이가 다 별이야. 하늘에 별이 많은데 우리가 그 별 이름을 다 알지 못하니까, 그냥 전부 별이라고 부르잖아. 난 모든 고양이를 다 별이라고 불러. 하늘이 아니라 땅 위에서 반짝이는 별…….” 

  “나도 달보다는 별이 좋더라. 그냥 마음이 따뜻해져.”

  “나도, 밝은 달 옆에 존재감 없이 희미한 작은 별이, 꼭 나를 닮았어.”

  갑자기 다혜가 나지막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동준이, 환유, 그리고 나까지도 천천히 따라 불렀다. 기괴하기도 하면서 뭔가 위로받는 느낌도 드는 악마의 속삭임…….  

    

  나는아직도중2♬태어날때부터사춘기♬ 

  정7각형선을밟고♬영원히성장이멈췄지♬   

  

  길고양이 덕분에 다혜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지고 우리는 평소에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다혜는 사료를 한 움큼 집어 별에게 먹여주며 목덜미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어떻게 알았는지, 작은 별 셋이 더 다가와 옹기종기 모여 앉아 사료를 나누어 먹었다. 우리는 한참을 별들과 함께 앉아서 오가는 별마다 사료를 먹여주었다. 사료가 다 떨어지자 우린 어색하게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집으로 걸어오면서 나의 별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공원 산책로엔 흰 쌀알 같은 꽃잎이 눈처럼 펄펄 흩날리고 있었다. 아카시아 꽃잎처럼 손바닥으로 받아보려 했지만 역시 쉽지 않았다. 겨우 한 잎을 받아서 날아갈까 봐 손에 꼭 쥐고 걸었다. 이 꽃잎 한 장이 나에게 별이 돼줬으면…….   

        



       #5     

  이건 또 뭔 시추에이션? 피비야, 계주, 이어달리기처럼 꿈도 이어 꾸기가 가능해? 너도 그런 경험이 있는 거야? 뭔가 열심히 검색하던 양동이가 폰을 내밀어.

  야, 이것 봐. 여기 뉴스에 나왔잖아.    

 

    -친구들과 7만 원 내기했어요- 

  하남에서 에버랜드까지 44km를 11시간 동안 걸어간 중학생들의 사연이 전해졌다. 단체로 체험학습을 가기로 한 전날 밤, 몇몇 학생들은 하남을 출발하여 밤새 고속도로를 걸어 용인에 도착한 후 길을 잃었다. 우연히 학생들을 발견한 A씨는 자동차를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학생들은 친구들과 내기했기 때문에 꼭 걸어가야 한다며 거절했다. A씨는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함께 에버랜드까지 걸어가면서 부모님과 선생님께 전화하도록 했다. 그 와중에도 학생들은 학교 괴담을 이야기하며 이 동네에는 괴담이 없냐고 묻는데, 귀여우면서도 걱정이 되었다고 A씨는 전했다.                                                 <2023. 5. 15. 연합뉴스>


  얘들은 걸어서도 갔는데, 우리도 블랙을 잡으러 가야지.

  이게 실화라고?

  그래, 여기 봐. 5월 15일 뉴스라고 적혀있잖아.

  그래서 양동이, 어떻게 갈 건데?

  잘!                           

  피비야, 잘!이라는 말 한마디에 우린 작은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아 있어. 양동이는 지도 앱을 켜서 손가락으로 나곡동을 가리켜. 모두 들떠서 재잘재잘. 그러나 나는 때늦은 불안과 후회를 다독이며 KTX 유리창에 이마를 대고 밖을 내다봐. 기차는 초록빛 풍경을 가르며 뒷걸음질 치고 있어. 

  와, 묘하다. 내가 뒤로 가고 있어. 약간 메슥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역방향이라 그럴 거야. 설주야, 바꿔 앉을까?

  아니, 괜찮아,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느낌이야. 우리 정말 잘 다녀올 수 있겠지…….

  피비야, 도대체 이 역방향은 누가, 왜 만든 거야? 속이 울렁울렁, 메슥메슥. 이 와중에도 나는 펭귄을 껴안고 쿨쿨 쿨쿨쿨.

이전 04화 지랄 총량의 법칙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