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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미 Sep 10. 2024

내 꿈을 왜 엄마가 꾸냐고

  33층 베란다에서는 동네는 물론 멀리 산까지 훤히 내려다보였다. 아파트 단지와 학교가 어우러진 풍경이 마치 레고블록을 조립해 놓은 것 같았다. 태극 마크를 단 비행기는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 날렵한 몸매를 뽐내며 베란다 한편에 놓여 있었다.

  “와, 이 아파트 처음 와 본다.”

  “부자 아파트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정말 좋네. 뷰 죽인다.”

  “하늘을 품었네. 환유는 좋겠다. 언제 이사 왔어?”

  “지난 3월에.”

  환유 엄마가 생일상을 차려주고 나가자 우린 베란다로 우르르 몰려가 거듭 탄성을 질렀다. 환유는 거실에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대박 멋지다. 금방이라도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아. 너희 아빠 저 항공사 파일럿이지?”

  “응.”

  우리는 케이크에 촛불을 켜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른 다음 선물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탕수육, 파스타, 포도 등을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풍성하던 상 위가 순식간에 빈 그릇만 남았다. 

  “넌 이렇게 좋은 집을 놔두고 왜 집에 가기 싫다고 해? 너 공원에서 고양이랑 노는 거 많이 봤어. 고양이가 그렇게 좋아?”

  “집이 무서워.”

  “무서워? 이렇게 멋지고 좋은데?”

  “너무 높아. 난 무서워서 베란다에 못 나가.”

  “고소공포증 있어? 이사 오기 전에는 몰랐어?”

  “엄마는 내가 아빠처럼 파일럿이 되길 원해.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무서운 내가 어떻게? 비행기가 이륙할 때면 심장이 밑으로 쑥 빠져나가는 것 같아. 귀가 윙윙거리며 아프고 메슥거려서 토할 것 같고. 아빠는 정신력이 약해서 그렇다며 적응해야 한다고 여기로 이사했어. 내방엔 베란다마저 없어서 절대로 커튼을 열 수가 없어.”

  갑자기 분위기가 착 가라앉았다.

  “부모들은 왜 항상 우릴 통하여 꿈을 이루려고 할까. 내 꿈을 왜 엄마가 꾸냐고! 우리 엄만 나 보고 경찰이 되래. 경찰이 그렇게 좋으면 엄마가 하면 되잖아. 아우, 정말 열받네. 환유야, 넌 뭐가 되고 싶어?”

  “수의사, 강아지나 고양이와 함께 있으면 행복해. 너무 행복해서 마음에 수많은 별이 막 반짝이며 불꽃놀이를 하는 것 같아.”

  “걱정하지 마, 억지로 파일럿을 시키지는 못할 거야. 더구나 넌 공부도 잘하니까 뭐든 네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잖아.”

  “나는 시들어 가는 식물 같아. 집에만 오면 머리가 아파.”

  “환유야, 상담 선생님 만나 볼래? 나 상담한 적 있는데 선생님 참 좋아. 고민 있으면 언제든지 환영한다고 했어.”

  “상담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아빠 아닌가? 왜 항상 우리에게만 상담받으라 하고, 내가 바뀌어야 한다는 거야?”

  환유 엄마가 들어오는 바람에 이야기는 거기서 끊겼다. 우리는 환유 방으로 몰려가서 게임을 했다. 환유는 커튼을 걷지 않고 대신 전등을 켰다. 아무도 멋진 전망을 보겠다며 커튼을 열지 않았다. 항상 제멋대로인 동준이마저 눈치를 챙겼다. 우린 게임을 하며 BTS 노래를 불렀다. 

  -지금 새우잠 자더라도 꿈은 고래답게, 고래답게, 고래답게…….

  우리는 고래답게,라며 거듭 추임새를 넣었다. 멜로디가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동준이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는 랩을 시작하자 우리는 책상을 두드리며 흥을 돋우었다.     

 

  술만마시면♬고래잡으러♬ 

  떠나자떠나자♬떠나자던아빠♬

  나는고래♬잡으러안갈래♬ 

  내가고래가♬되고말거야♬

  고래답게고래답게♬고래답게♬

  고래답게고래답게♬고래답게♬     


  “와! 나도 랩을 만들어볼까. 조금도 어려울 게 없겠어.”

  “랩이 뭐 별거야? 리듬을 타면서 내 마음을 전하면 되는 거지.”      


    

  빵 냄새가 솔솔 피어나는 길목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면서 유리는 중간고사를 망쳐서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걱정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면 쓸데없는 걱정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이야기했다. 위로한답시고 책에서 본 글을 유리에게 그대로 말해주었다.

  “야, 짱 좋아, 다시 한번 말해줘.”

  유리는 내 손가락에 깍지를 끼워 꼭 잡으며 좋아했다.

  “설주야, 난 공부만 빼면 완벽한데, 외모며 성격이며 뭐 하나 빠지는 게 있냐?”

  “당연히 완벽하지, 너희 엄마도 너에게 뭐 바라는 게 있어?”

  “너무 많지, 내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들을. 그렇게 간절하면 지금이라도 직접 하든지, 다혜 엄마처럼 말이야. 왜 나를 통하여 꿈을 이루려고 할까, 내 꿈을 왜 엄마가 꾸냐고!”

  “넌 꿈이 뭔데?”

  “모르겠어, 공부만 생각하면 그냥 막막하고 답답해.”

  “근데 요즘은 왜 배구남 얘기 안 해, 잘 돼가?”

  나는 대화의 방향을 다른 쪽으로 돌리려고 배구남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은 궁금하던 참이었다.

  “찼어.”

  “왜?”

  “정말 아닌 애와 다니더라. 나보다 괜찮은 애와 사귀면 싸워서라도 뺏어올 텐데, 난 그렇게 여자 보는 눈이 낮은 애는 싫거든.”

  “진짜 너보다 안 괜찮은 거 맞아? 그런 애가 정말 있기는 해?”

  유리는 내 등을 손바닥으로 때리고 키득키득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7층에서 내가 내리려고 하자 유리는 주먹을 내밀었다. 나도 주먹을 꼭 쥐어 세게 맞부딪혔다. 손가락뼈가 아플 정도로 세게, 주먹으로 악수했다. 닫히는 문틈으로 유리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일단 차긴 했는데 다시 주울지도 몰라.”

  유쾌하고 긍정적인 친구가 옆에 있다는 건 참 커다란 행복이다. 나는 친구를 참 잘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는 엄마의 잔소리가 이번만큼은 틀리지 않았다.   

    


        

       #10     

  피비야, 야옹, 소리가 들리고 환유가 보여. 불을 켠 듯 파랗게 반짝이는 큰 눈, 별이 환유의 품으로 쏙 들어와 안겨. 환유는 쪼그리고 앉아 별을 쓰담쓰담. 별의 눈에는 푸른 별이 박혀 있어. 

  별아, 오늘 뭐 했어?

  환유의 물음에 별은 조그만 몸을 더욱 조그맣게 말아. 그리고 아기가 옹알이하듯 온갖 아양을 떨어. 마치 넌 오늘 뭘 했냐고 묻는 것처럼 야옹야옹 야옹.

  나? 학교 갔다가 학원도 가고 축구도 했지.

  환유는 별을 안아 살며시 뺨에 대며 속삭여.

  별아, 내가 어제 독후감을 썼거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존내쉬의 이야긴데, 그의 아들이 아빠를 그리워하며 보육원 층계참에 앉아 창밖의 별을 바라보는 장면이 얼마나 아름답고 외로운지. 그런데 엄마가 그건 이 책의 포인트가 아니라고 했어. 그런 뻔한 싸구려 감성으론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다며, 내가 미처 말리기도 전에 del. 포인트는 누가 정하는 걸까? 학원 선생님도 엄마와 똑같이 말했어. 논술은 출제자의 의도에 공감해주는 거라고. 내 생각 따위는 중요하지 않고, 무조건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라고. 어쨌든 내 소중한 감상이 엄마의 손가락 하나로 순식간에 다 사라져 버렸는데, 지랄하고 싶었지만 귀찮아서 꾹 참았어. 그러나 난 여전히 그 계단 장면만 자꾸 생각나.

  별은 환유의 가슴으로 자꾸 파고들어. 야옹야옹 야옹야옹 야옹……. 별의 체온 때문인지 환유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위로받는 느낌이 들어. 그러나 곧 별을 내려놓고 걸음을 떼고 있어. 별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까지 졸래졸래.

  피비야, 꿈속이니까 이게 가능한 거지? 그래서 너도 내 마음을 다 아는 거야? 이런 게 바로 전지적 시점인 거야? 환유는 별을 안아준 게 아니라 별이 자신을 안아줬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 별은 앞발을 세우고 환유의 다리에 올라타려 해. 순간 환유는 별을 집으로 데려가고 싶어. 그러나 바로 엄마에게 쫓겨나 상처받을 별을 생각하여 꾹 참기로 해. 

  나도 환유를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려 해. 그러나 환유는 내가 보이지 않아서 문이 바로 눈앞에서 닫혀 버려.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33층까지 올라가야 하는 환유가 안쓰러워서 같이 가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별이 문을 마구 긁어대. 피비야, 지금 나는 별을 안고 집으로 가고 있어. 별을 침대 밑에 숨겨두고 돌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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