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교육을 해나가야 하는가?
어린 시절부터 나는 교육에 불만이 매우 많았다. 뭐 물론 나만 그랬던 것일 수 있지만 내겐 여러 문제가 보였다. 딱히 학생의 학업적 성취에 도움도 안 되는 수행평가, 변별만을 위한 문제들과 변별만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 말하는 선생님들의 그런 말들 말이다. 그러는 한편 안타까웠던 것도 있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공부 때문에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다. 그리고 그냥 뭣도 없이 그냥 공부만 시키고 학원을 보내는 모습과 장래에 대한 어떤 고민도 일단은 대학진학 후로 밀려진 것이 내겐 집단광기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런 교육에 관해 평소에 내가 품었던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이번에 풀어보려고 한다.
첫 번째이자 사실상 모든 문제의 근원인 바로 대입만을 위한 교육과정이다. 학생들은 그냥 뭣도 모른 채로 어릴 때부터 당연한 코스인 것 마냥 당연히 대입을 목표로 경쟁하게 된다. 그래서 그저 변별만을 위해 쓸데없는 문제들과 전혀 학업적 성취와는 관련 없는 수행평가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서로 배운 것을 공유하지 않고 서로 경쟁하게 된다. 애초 교육이 어째서 대입의 노예가 되었는가? 교육은 교육 그 자체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니고 그것이 제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주객이 전도된 것 만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도대체 대입 이외의 길을 열어주지 조차 않는다. 당연하게 무언가를 해보지 않았다면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 아닌지 잘하는지 아닌지 어떻게 안다는 것인가? 그런데 그냥 시간만 지난다고 갑자기 좋아하는 것이 생겨서 대학을 가야 한다는 말인가? 그게 말이 되는가? 대부분은 여전히 좋아하는 것도 없을 거다. 학교라는 기관이 대입이라는 비전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대한민국이 대입에 미쳐있다고 생각한다. 왜 가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그냥 남들 가니깐 안 가면 이상하니깐 가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자존심 때문에 대학을 안나오면 안되니깐 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냥 좋은 대학을 가려고만 하고 자기에 맞는 학과가 아니라 그리고 대학을 간다는 선택지밖에 없고 그 외에 다른 선택지는 존재하지가 않는다. 이런 문화를 바꾸지 않고 또 대입 외의 선택지를 주지 않는 한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상 알지도 못하고 잘 보이지도 않는 길이 지만 그저 다른 길이 없다는 이유로 그 길을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다른 길을 찾아보고 안 보이는 길을 밝히면서 더 나은 선택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굳이 대입을 할 필요가 없음에도 가게 된다면 노동력 낭비이자 대학생에게도 학자금 대출로 인한 지출이 생기고 이러한 것들로 인해 사회생활자체가 몇 년 늦춰지게 되고 그로 인해서 결혼 또한 느려지고 연쇄적으로 출산율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학생들은 대학에 투자한 대비 효율이 안나오면 당연히 절망하고 분노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는 대학을 무조건 가야 되는 것 마냥 부채질 하고 학생들 희망하지만 그 희망에는 사회가 보답해주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대입만을 위한 교육과 연관되는데 사회생활에 도움 되는 것을 하나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학창 시절을 다니며 느낀 것은 그저 학교라는 온실 속에서 자라다가 적응기간도 없이 그냥 뻥 차서 사회에 떨어진다고 느꼈다. 학교라는 공간은 향후 사회라는 공간에서 쓸 만한 어떠한 지식도 남겨주지를 못한다. 어째서 금융에 대한 기초적인 상식을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어떻게 돈을 관리해야 하는 것인지 가르치지를 않는 것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품지 않게 하는 것인가?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지에 대한 철학이라든가 그런 자세라든가 태도를 어째서 가르치지 않는 것인가? 학교라는 기관은 사회로 나간 청년들을 말려 죽이고 싶다는 것인가? 어찌 아무런 것도 제공해 주지도 않는 것인가? 고등학교를 하나의 장으로 만들어서 취업시장과 직접적으로 연결해서 고등학교졸업하면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도록 해서 대입 또는 취직의 장으로써 활용한다면 좋을 것이다. 솔직히 나는 우리의 교육이 정말 사회에 대한 것 하나도 안 가르쳐준다 생각하기에 일을 조금이라도 미리 해보고 학생들이 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제안을 하게 되었다
세 번째로는 학교 내에 시설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모든 학교에는 도서관이 있다. 그러나 그 도서관은 쓰는 사람만 쓴다. 이왕이면 그것을 지어놨으면 적극적으로 교육과정에 도입을 해서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게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어찌 그리 하지 않는 것인가? 그런가 하면 적극적으로 방과 후활동을 지원해서 교실을 방과 후 동아리 활동을 쓰는 데 도움을 주지 않는가? 국가가 학생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없다면 학생들끼리라도 자체적으로 그룹을 결성하고 방과 후 빈교실을 쓰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네 번째로는 위에서도 잠깐 얘기했듯이 전혀 내가 뭘 좋아하는지 싫아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체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육과정에서 최대한 많이 해봐야 아이들이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고 싫어하는지 알지 맨날 영상으로 본다고 퍽이나 알겠는가? 현장에 가서 일하든지 체험을 하든지 해야 뭐가 느끼는 게 있지 않겠나?
다섯 번째로는 교육의 효율이 낮다는 것이다.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공교육의 문제이다. 사실상 한 반에서 선생님말에 집중하는 아이들은 소수다. 그렇지 않은 아이들 중에서 특히 더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한번 뒤쳐지고 나서 그걸 메꾸지 못해서 계속 격차가 벌어지다가 포기하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보충수업을 철저하게 진행을 하든가. 또는 잘 배운 아이들이 이해 못 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때그때 뒤처지지 않게 한다면 그렇게 밀릴 일이 있겠는가? 또 그렇게 아이들끼리 서로 가르치고 배운다면 사이도 좋아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뒤처지는 아이는 절대로 한 번에 그렇게 된 게 아니다. 점점 쌓이고 쌓여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문화도 성립되어야 할 것이고 질문이 수업의 방해가 아니라는 인식이 성립되어야 제대로 될 것이다. 솔직히 실제로 수업시간 내내 공부를 하지 않는 게 아니지 않은가? 이해력이 좋은 아이는 금방 이해를 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아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자투리 시간을 아이들이 책을 읽도록 하거나 자기 진로관련된 활동을 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선생님이 다 하라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이 그런 활동을 관리하고 조절하라는 것이다. 한 명의 천재보다는 각개계층의 보통사람 백명의 협업이 더 높은 결과를 내는 법이다.
여섯 번째로는 초등교사의 경력이 오래되고 심리 관련 자격증도 있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얘기해서 제일 선생님이 힘써야 될 시기는 바로 초등학교시기이다. 이 시기에서 아이들이 공부에 흥미를 못 느끼거나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그것이 평생토록 갈 것이다. 그렇기에 조금 더 경험 많고 아이들을 잘 통솔할 수 있는 그런 경력 많은 선생님이 되어야 할 텐데 사회초년생인 젊은 선생님들이 맡으며 학생과 선생 모두 힘들어하는 경우를 봤다. 그렇기에 오히려 초등학교일수록 경력이 많고 반대로 고등학교일수록 상대적으로 조금 더 경력이 적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에 초등교사는 사실상 또 한 명의 부모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더 신중하고 더 많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직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일곱 번째로는 민주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학교를 구성하는 대다수는 학생이거늘 항상 어떠한 선택에서 학생은 배제되어 왔다. 학생회가 있지 않냐고 할지 모르겠다. 글쎄다 나는 학생회가 피자랑 치킨 같은 것을 먹는 것 말고 딱히 무언가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사실상의 들러리이지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의사결정권이 주어진적이 있던가? 어리다고 이성적이지 못하다고? 딱히 난 어른들과 아이들 사이에 그리 큰 차이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차이가 있다 치더라도 나는 아이들은 그저 그 어떤 아무것도 못하는 주체적이지 못한 대상으로 보는 것이 좋게 보이지 않는다. 어른들을 봐도 성숙하지 않은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나는 정말로 의문이다. 단순히 아이들이라고 그 생각과 판단능력을 무시해 버리고 한 명의 의견으로도 쳐주지 않는 것이 말이다. 정 그렇다면 비례적으로 해서 위원회를 구성한다든가 했으면 좋겠다. 어리다고 무작정 무시하지 않고 얘기를 들어보고 결정했으면 좋겠다. 애초 이런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커서 어른이 되었을 때 퍽이나 정치 참여나 의사소통이나 협력을 잘하겠다 싶다. 이런 환경이라면 민주적 의사결정에 익숙해지지 못한 민주적으로 성숙지 못한 사람을 길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나는 정말로 이런 식으로 해놓고 말만 민주공화국 해대는 꼴이 좋게 보이진 않는다.
여덟 번째로 실제로 제시한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만큼의 수준을 갖추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험을 볼 때 단순 성적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교육과정에서 지시한 그 수준까지 도달했느냐를 따지는 지표로서 활용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그에 미달했다면 응당 통과할 때까지 재시험을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나는 그리 생각한다.
아홉 번째로 교육과정에서 교과서만 활용한다는 것이다. 내 개인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나는 교과서 그 자체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선생님의 해설이 있어야만 그나마 해석이 되었다. 물론 교과서를 없애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교육과정에서 그 과정을 더 잘 이해시킬 수 있다면 교과서 말고도 다른 책을 통해서도 잘 교육할 수 있지 않냐는 얘기이다.
열 번째로 학교가 가진 반복적 학습효과를 좋게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를 잘 활용하면 좋은 건강과 생활습관을 형성케 할 수 있고 좋은 태도를 형성할 수가 있다. 학교라는 기관은 가정 이외에 유일하게 생활습관과 건강을 책임져줄 수 있는 곳이다. 그러니 활용해야 하지 않겠는가? 학생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운동을 시키고 또 자율학습하는 습관을 들이게 하고 본인의 행동의 파급을 가르치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도덕교육이 부족하다. 맹목적으로 따르게만 할 뿐 그 의미와 의도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지속적이고 보람찬 도덕적 행위는 응당 불가할 것이고 성교육도 많이 부족한 점이 많다. 실제로 어떻게 하고 그로 인해 어떤 파급이 생기는 지를 알려주어야 조심스레 하지 않겠는가? 모든 교육이 그렇다. 안전교육이나 각종 교육들도 어째서 그런 규칙이 생겼고 안 지켜서 어떤 일이 발생했는지를 말해서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반복해서 교육하지 않는 한 가볍게 여기어서 잘 어기게 될 것이다. 지금처럼 그냥 피상적이고 맹목적인 교육은 그저 일시적인 흉내에만 불과한 결과를 내지 결코 진심으로 우러나와 지속적으로 행동하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열한번째로 대학이 그 본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대학은 그냥 취업하려고 가는 데가 아니다. 대학을 놀러가는곳도 아니고 공부를 하러 가는 곳이다. 그런데 배우고 싶어도 본인이 그런 배우고 싶은 과목과 전혀 상관없는 과목이 성적이 좋지 않아 못가는 방식이 정녕 맞는지 묻고 싶다. 대학은 말 그대로 그 본의에 맞게 오로지 공부만을 위해서만 운영되어야만 할것이다. 입학은 쉽게 졸업은 어렵게 하여서 배우고 싶은 이들이 들어와서 맘껏 공부할 수 있도로 해야하는것이 맞지 않나 싶다. 지금의 대입방식으로는 그것이 불가능한것 같아 차라리 각 학과별로 시험을 보는 게 더 낫지 않나 생각한다. 이것에 분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대학을 원하는 것을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그저 취직을 위해서 쓰기 때문에 그리 분노한 것일 것이다. 그러니 분명하게 대학을 공부만을 위해야 하고 취업은 대학이 맡으면 안되는 것이다. 고등학교나 다른 기관이 맡아야 하는 것이지. 그러나 그렇게 되기 힘들다. 왜냐면 우리는 모른다. 우리는 초중고를 다니며 대학 외에 선택지 자체를 들어본적이 없다. 설령 들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이 두렵다. 남들 다 가는데 나는 안간다? 우리는 정해진 길을 안믿는 만큼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안주했다. 우리는 그럴 자신이 없어서 이다. 대학이라는 정해진 길 외엔 생각해본적조차 없고 두렵고 보이지도 않는 길인데 생각을 하고 열심히 하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믿을 수도 없다. 그것을 뒤엎을 만큼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대학을 가기로 했다. 그런 막연한 두려움을 마음 속에 품으며 말이다. 옛날과는 다르다. 이제 온라인으로도 배울려면 지식을 충분히 배울수있고 자격증을 딴다면 딸 수 도 있다. 그런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를 믿지 못했다. 보상이 필요했다. 지난 보낸 시간들에 대한, 그리고 불안하고 두렵고 게을렀다. 찾아보지 않고 실행하지 못했다. 학창시절에 보상이 필요했고 대학이라는 꼬리표가 필요했고 생각하지 않고 몸을 의탁할 안식처가 필요했다. 그 연약하고 나약한 몸을 사회로 내던질 용기 따윈 없었다.
교육을 거의 유일하게 무언가를 강제할 수 있는 기관이다. 어른이 되어서 하라고 한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욱더 그 이점을 활용해서 도덕과 윤리를 가르치고 바른 마음가짐과 태도를 가르치고 어릴 때부터 교육을 통해서 사회에 엄청난 이점을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범죄도 이미 어릴 때부터 그 전조가 보인다. 여러 가지 가정상황이라든가. 그런 문제들로 삐뚤어지고 그들의 길이 좁아지고 범죄로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니던가? 어릴 때부터 그러한 길을 차단하고 올바른 길을 제시해 준다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에도 이득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글을 읽고 그리 말하는 자가 있을 수도 있겠다. 국가가 왜 그리 해줘야 하는 것이냐고 그냥 이정도로도 충분한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나는 그러한 자들에게 이리 말하고 싶다. 국가는 개인이 아니다. 국가는 주체가 아니다. 국가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기부를 하건 말건은 우리의 선택이다. 그러나 자선단체가 기부를 할수도있고 안할수도 잇는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국가는 국민의 도구이다. 국민을 위해서만 작동하는 것이란 말이다. 예를 하나 들겠다. 내가 망치로 못을 박으려는데 갑자기 망치가 나 오늘 일하기 싫다고 일을 안하려 한다고 해보자. 뭐 그런 경우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만약 망치가 그런다면 그것은 고장난 망치이고 수리되어야만 할 망치다. 그런 과정이 안된다면 아예 새로 만들어야만 하는 것이고 말이다. 내가 묻겠다. 국가는 왜 존재하는 것인가? 무엇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냐고 말이다. 국가는 국민의 개가 되어야만 한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고는 절대로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국가는 언제나 최선으로써 국민을 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 할수있다면 반드시 그리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국가의 존재의의니깐 말이다. 그리고 만약 말을 듣지 않는 그런 국가는 당장 수리받아야 할 것이다. 국가는 언제나 국민의 종으로써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위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참으로 안타까운 것이 있다. 이러한 교육과정들을 통해서 학생들이 점점 주체성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스스로 무언가를 해보고 무언갈 찾아보고 하는 것이 줄고 있다. 교육과정에서 그러한 주체성과 창의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공부를 잘 못하였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 맨날 남거나 선생님께 꾸중을 듣곤 하였다. 그리고 그런 공부를 못하는 내가 싫었고 공부를 못한다는 것이 수치스럽기도 하였다. 그런데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그 내용을 보니 이해가 잘 되는 것이 아니던가 나는 그때 엄청난 허탈감을 느꼈다. 진즉에 잘했다면 그런 시간들을 안 보낼 수 있었는데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난 더더욱 그런 교육과정에서 뒤처지는 아이들을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시절에 공부를 못한다는 것은 단순 공부를 못하는 것 그 이상의 영향을 학생에게 주니 말이다. 교육은 언제나 모두를 위한 것이어야 만 한다. 여하튼 앞으로 한국교육이 더 나아지기를, 그를 통해서 더욱 나은 대한민국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