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회화는 왜 첫 달만 재미있을까
새해가 밝았다. 인류 역사상 빠질 수 없는 격동의 2020년도 결국 흘러가버렸다. 한 해가 끝나고 시작할 때쯤 우리는 여러 가지 다짐을 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내 목표에 다이어트와 공부가 상위 목록에 들어있다. 작년 말에 급히 신청한 온라인 강의들도 이어서 완전학습을 해야 한다. 그런데 분명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재미있고 꿀 떨어지던 이 온라인 강의(캘리그래피)가 점점 버겁고 듣기 싫어져서 고민이다. 이유가 뭘까.
꿈이 많던 새내기 시절. 대학생이라면 한 번쯤은 어학연수나 해외에 나갈 일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고 어학 쪽으로 관심이 많았기에 입학하자마자 대학 내에 있던 어학연구소에 등록을 했다. 나는 한국인 선생님보다 원어민 선생님 수업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그 이유는 원어민 선생님들이 더 쉽고 재미있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서이다(어디까지나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결과이다. 우리나라 선생님들도 좋은 분들이 많지만 우리말이 가능하시기 때문에 회화보다는 문법을 가르치는 수업에 투입되는 경우가 많아 이런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게임이나 노래 등 공부보다는 즐겁게 놀다 오는 기분으로 수업을 들었다는 만족감까지 얻을 수 있었다. 한 달마다 다음 레벨로 넘어가기 위한 테스트를 했고 다음 달에도 수강을 지속할 것인지 여부를 정해야 했다. 그런데 처음에는 즐거웠던 영어회화 수업도 4개월 이상 지속하면 흥미가 떨어졌다. 그것은 일본어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원어로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신나게 시작했지만 자격증 공부를 앞두고 매번 좌절하고 포기하게 되었다. 이 쯤되니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 공부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신감과 적극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처음 언어를 배울 때, 특히 회화 수업의 경우 자신감과 뻔뻔함을 갖추고 있다면 다른 학생들에 비해서 우수하다는 느낌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수업의 내용이 점점 깊어지고 복잡해지면 자신감 하나만으로는 진도를 따라가기가 어렵다. 결국 그때부터는 수업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복습에 투자해야 하는데 이때부터 수업이 재미없어지는 것 같다. 아 게으른 자여! 내가 더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나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데 결정적으로 이것이 귀찮아서 여러 분야를 얕게만 탐색하다 끝난 것이다.
캘리그래피 수업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내가 이미 알고 있던 방법 혹은 연습했던 글자들이 나오니까 반갑고 즐거웠다. 선생님이 내준 숙제도 별다른 연습 없이도 슥슥 써서 낼 수 있었고 피드백도 바로 받으니 의욕이 넘쳐났다. 그런데 슬슬 내가 모르는 부분과 연습에 소홀했던 분야가 나오기 시작하니 버퍼링이 걸린 것처럼 진도가 영 나가지 않았다. 수업을 듣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연습을 해야 하니 수업 초반보다 성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 의욕이 사그라들며 점점 게으름이 생기게 되었다. 오늘도 10분짜리 수업을 들어야 하는데 선생님이 보여준 것과 동일하게 한 번 연습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여러 번 복습해야 내 것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수업마저 듣기 싫어져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다이어트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현실도피 겸 멈춰왔던 체중 측정을 했다. 역시나 내 생각보다 불어있는 숫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운동을 멈추고 음식양으로만 승부를 보려고 했다가 폭식했던 지난날의 내 행동들이 잽싸게 머릿속을 흘러갔다. 하하하. 역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인 것인가!! 오늘부터 운동 하자. 제발.
점점 현재의 내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이 필요함을 느낀다. 노력의 기댓값이 성장이 아니라 현실 유지라는 것도 살짝 슬프지만 가만히 있어서는 바로 뒤로 밀리고 도태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그런 나이가 되었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러니까 올해도 더 움직이자. 멈춰있지 말자, 게으름쟁이니까 전보다 조금만 멈춰보자. 그리고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처럼 중간에 내 성과가 미진했다 해도 큰 그림을 생각하며 다시 도전해보자. 의욕을 만들어보자. 다짐하며 2021년 첫 토요일을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