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꽃밭을 밟지 마
중학생 때부터 나는 나름대로 예술가의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능력이 뛰어났다는 건 아니다).
어느 날 새벽, 감성에 넘치는 마음에 연습장에 그림과 함께 사랑에 관한 시를 적었다. 우연히 그것을 알게 된 짓궂은 친구들이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연습장을 빼앗아 화장실에 가지고 들어가 문을 잠그고 낄낄 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내 시를 비웃고 자기들끼리 큰 소리로 낭송하다 못해 웃음을 참지 못하며 연습장을 내게 다시 던져주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흔한 말로 새벽에 삘 받아 쓰거나 그린 내 작품들을 아침에 일어나 다시 보면 유치하고 창피한 감정을 느끼고는 하는데(개중 괜찮은 것도 종종 있다!) 사춘기 시절의 갬성 글은 오죽했겠는가. 여하튼 그 이후로 나는 시를 쓰지 않았고 당연히 친구들에게 보여주는 일도 없었다.
친구들의 장난을 잘 받아주지 못하는 경직된 인간이라 내가 큰 상처를 받았을 수도 있지만, 이런 일 이후로 나의 취미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일은 좀 조심스러워졌다. 잘난 척을 워낙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내 작품으로 인해 비웃음을 사는 일은 절대 원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엔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지만 최소한 나의 작은 마음을 우습게 여기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겐 작고 남들이 보기엔 아주 초라한 꽃밭이 하나 있다. 별 볼 일 없지만 나는 그곳에 피어있는 꽃들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지금은 소규모이지만 조금씩 가꾸고 풀도 매주다 보면 언젠가는 꽤 근사한 정원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직 수수하고 서툰 솜씨로 가꾸었지만 나는 그 꽃밭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런데 어느 날, 옆집에 사는 사람이 지나가다 나의 꽃밭을 보곤 깔깔깔 웃는다. “어머, 자기야~ 꽃은 이렇게 심는 거 아니야. 어머, 이거랑 이건 같이 심으면 안 되는데? 어머머, 여기 잡초가 왜 이리 많아? 내가 좀 도와줄까? 아휴 맨날 혼자 어디 가나 했더니 뭐 이딴 거에 시간을 보냈어?” 등등. 그 사람은 내 꽃밭을 아무렇게나 평가하고 짓밟고 뭉개버리고는 “풉, 뭐 별 거 없네? 나 이만 간다”하고 자리를 떠버린다. 나는 아직 손에 모종삽과 씨앗주머니를 들고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위의 이유로 나는 나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게 나의 작품이나 취미에 대해 알려주고 싶지 않다. 어떤 이는 내 sns를 보고 싶다며 내 계정으로 로그인 한 채로 스크롤을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내 작품엔 전혀 관심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내게 달아준 댓글이나 좋아요 숫자 등 반응만 궁금해했다. 그리고 이제 겨우 시작해보려는 내 의지를 우습게 생각하며 짓뭉개고 싶어 하는 것도 보았다. 근데 그 사람들은 끈기 있게 하는 것이 딱히 없었다. 그나마 유흥이나 다른 사람들 트집 잡는 일, 의미 없이 tv 채널을 돌리며 볼만한 것이 있나 기다리는 데에나 꾸준함을 보이는 정도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내 꾸준한 취미생활과 영역을 침범당하고 주눅 드는 일에 이젠 인내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나 역시 남들이 뭐라고 하던 내 길을 가겠다는 뚜렷한 소신이 있어야 했다. 겨우 그런 말들로 나의 의지가 꺾인다는 것은 지금 돌아보니 참으로 나약한 것이었다.
최근 나는 자존감과 가스 라이팅, 나르시시즘에 대한 영상을 많이 보았다. 보면 볼수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내가 그토록 마음을 얻고 싶어 한 그 사람은 나를 존중하지 않았다. 말도 안 되는 무논리로 나를 누르고 조이는데도 나는 자꾸 그의 앞에서 나 자신을 잃어갔고 나 스스로를 버리기도 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굳이 그 사람에게 내 인생을 휘둘리도록 둘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는 몇몇 영역에 내가 그렇게 뒤처지지도 않는 것 같고 너무 눈치만 보고 한 수 접고 들어가는 내 모습이 딱히 매력적이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 당장 일어나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앞으로도 넌 그렇게 될 리 없다’고 호언장담하고 저주하는 사람의 말에 내가 지레 겁먹고 숨을 필요는 없다. 별 것 아닌 작은 일부터 하나하나 해보려고 한다. 더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어야 나 자신을 사랑하는 당당한 인격체가 될 수 있으니까.
이런 생각으로 오늘은 아침부터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정말 쉼 없이 바쁘게 움직였다. 싫다고 생각했던 일, 그동안 미뤄뒀던 일 등을 해치우고 나니 내 마음이 다 시원하고 후련했다. 모든 열쇠는 내 안에 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남들도 대가 없이 날 위해 해 줄 리 없다. 받은 만큼 돌려주자. 하지만 비겁하지는 않게. 난 고매하고 우아한 인품으로 자라날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