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 차

채워지지 않는 결핍

by 글쓰는 달

한 때는 먹는 것에 대해 미련이 없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돌아봐도 그런 시기는 딱 그때뿐이라 개인적으로 굉장히 신기하고 자꾸 연구하게 된다.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오로지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내 발전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찰하고 단련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때는 밥도 굉장히 적게 먹었고 또 느리게 먹었다. 지금은 전혀 생각도 안나는 빼빼 마른 내 모습. 그때뿐이었다.

그 시기 이후로 적당히 식욕도 생기고 살도 점점 붙여가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 해보는 엄마 역할에 어려움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꽉 짜인 신생아의 리듬에 맞추어 내가 움직여야 하는데 나도 어딘가 정신적으로 쉬거나 스트레스를 해소할 시간이 분명히 필요했다. 그래서 잠자는 시간을 줄여보았는데 오히려 체력이 부족해지고 자꾸 아이에게 화를 내게 되는 등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그다음으로 내가 줄일 수 있는 시간을 떠올려보니 그것은 밥 먹는 시간이었다.


임신 및 출산 이후 불어난 살도 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끼니를 규칙적으로 챙기지 못했고 더불어 밥다운 밥을 포기하고 빵이나 과일 등 대충 허기를 때울 수 있는 정도의 것들을 먹고 지냈다. 그러다 첫 애가 돌도 되기 전에 일이 터졌다. 위염이 다시 심하게 도진 것이다. 원래도 창백한 피부를 가진 내가 돌쟁이를 안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횡단보도를 건널 때 맞은편에서 길을 건너오던 사람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 진료 후 약을 지으러 간 약국에서도 약사님이 나를 위로할 정도였다.


그 이후로 나는 먹을 것에 대한 좀 집착이 생겼다. 혹시나 음식을 먹을 기회가 생기면 ‘지금을 놓치면 나는 또 언제 먹을 수 있을지 몰라. 지금 잔뜩 먹어두자’라는 생각에 폭식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유 수유 등의 이유로 원래 양보다 더 많이 먹게 된 일도 있었다. 첫 아이가 돌이 될 무렵 출산 전과 비슷한 몸무게까지 내려가긴 했지만 작은 아이를 낳고 나서는 아직까지도 예전의 몸무게로는 전혀 돌아가고 있지 않다.

첫 번째 출산 후 모유수유를 실패한 편이라 이번에는 기필코 멋지게 수행하리라 마음도 먹고 밥도 엄청 먹었다. 하지만 모유수유는 여전히 실패 수준이었고 내 살만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리고 두 아이를 돌보면서 편식이 좀 더 생겼는데 그건 과일을 잘 먹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뱃속에 있었을 때부터 지금도 과일을 굉장히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딸기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늘 준비한 양보다 아이들은 더 먹고 싶어 하고 잘 먹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먹으려고 남겨둔 것까지 아이들에게 주기 일쑤였다. 우리 엄마께서는 이 이야기를 들으시고 늘 안타까워하시며 내게 딸기를 더 사다 주셨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내게 ‘아이들 주기 전에 미리 네 것을 남겨놔’라고 조언을 주셨지만 간식을 준비하는 과정이 꽤 여러 단계를 거치게 되는 과일을 먹는 것이 내게 부담으로 다가왔다. 나라도 안 먹어야 그 과정이 좀 줄어들고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이 찔수록 참 서러운 것이, 날씬할 때는 손에 주전부리를 들고 다녀도 사람들이 걱정은커녕 더 경외 로운 칭찬의 눈길을 건네지만 뚱뚱한 사람은 끼니만 챙겨 먹어도 비난을 온몸에 받고 그로 인해 눈치를 보게 된다. 그리고 나보다 어린 내 아이들이 나를 챙겨줄 리는 당연히 없고 같이 사는 분도 내 건강이나 끼니에 딱히 관심이 없기 때문에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는 강한 신념이 내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하여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되면 반드시 먹었다. 꽤 많은 양을 꽤 빠른 속도로.


둘째를 낳고 나서는 좀 무기력하게 지냈던 것 같다. 그림 그리는 것 외에는 의욕도 거의 없었고 그 마저도 내 마음껏 할 수 없어서 그릴 수록 갈증이 많이 났다. 사치하지 않는 의미도 있지만 더 이상 백화점에 가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내 몸에 맞는 옷을 살 수 없어서였다. 돈을 아끼겠다고, 나의 모습에 자신감이 없어서 집에만 쭉 지냈던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올해 <말 그릇>이라는 책을 만나면서 나는 조금씩 나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무시하고 꾹 눌러왔던 현실 자각을 과감하게 하고 내게 부족한 것들이 무엇인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좋은 글과 영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고 나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부단히 주먹을 꽉 쥐고 똑똑해지고 싶어 노력 중이다. 그리고 아이패드를 갖게 되면서 디지털 세상에 대한 내 시각이 바뀌고 세계가 넓어졌다. 생각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많고 그 진입장벽이 그렇게 높지 않음을 깨닫고 나니 자신감도 생기고 이것저것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나 방이 지저분하고 정리가 안될 정도로 물건을 사모으고 식욕을 억제하지 못하고 폭식을 하는 일 등등 나는 근본적으로 무언가에 결핍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짐작되는 바가 있지만 아직도 두려워서 제대로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조금씩 노력하는 모습이 습관이 되고 내 마음에도 근육이 생기면 언젠가는 그 상자도 열어보고 싶다. 그래서 지금 내일 인증할 글을 미리 쓰고 있는 내 자신이 너무나도 기특하다. 하하하.


내게 습관 근육을 만들게 동기를 준 컨셉진에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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