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하원길 마중을 위해 집을 나섰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이미 타고 있던 모두의 손에 우산이 들려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밖에 비가 오나요?”라고 내가 묻자 초등학교 3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친절하게 대답해주었다.
“네, 비 와요.”
대답을 듣자마자 우리 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기 전에 후다닥 내려서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길고 검은 우산 하나와 분홍색 장식이 달려있는 작은 우산을 꺼내서 다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생각보다 엘리베이터가 우리 층에 오기까지 시간이 길어질 것 같아서 다시 계단으로 가서 바쁘게 발을 움직였다. 원래 하교 후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비를 피할 수 없는 공간이라 비를 맞지 않게 하려면 큰 아이가 실내화를 갈아신으러 나오자마자 내가 우산을 건네주어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학교로 서둘러 뛰어가며 어릴 적 내 모습을 생각해보았다.
우리 부모님께서는 맞벌이 부부셨다(지금도 일하고 계신다). 지금도 생각보다 전업주부의 비율이 높은 편이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더 많은 어머니들께서 일을 그만두시고 가정에 계셨던 것 같다. 그리고 그때는 일기예보 어플도 없었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면 대처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하원 시간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다른 친구들은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오신 어머니 손을 잡고 집으로 갔지만 내겐 마중 와 줄 사람이 없었다. 저학년 일 때는 가방으로 머리를 가리고 집에 갔고 고학년이 되니 3단 우산이 나오기 시작해서 언제나 가방에 우산을 넣고 다니는 방법을 선택했다.
어떤 친구는 소나기를 맞고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지만 나는 그런 적은 거의 없었고 오히려 부모님 덕분에 훈련된 몸이라며 허세를 부리고 다녔다. 지금 생각하니 나름의 방어기제였나 보다. 그런 상황에 내게도 딱 한 번, 우리 어머니가 나를 데리러 학교에 오신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마침 오전 근무만 하는 날이셨고 나는 방과 후 수업으로 바이올린을 배우는 날이었다. 연습용 바이올린이라 아주 비싼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집 형편에는 싼 가격이 아니었던 것 같다. 비가 오는데 악기를 어떻게 보호해야 하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운동장과 교실 사이에 있는 스탠드 천막 아래로 우리 어머니의 모습이 빼꼼 보였다. 너무 반가워서 강아지처럼 깡총거리며 뛰어갔는데 시크한 우리 엄마의 한마디 “바이올린 젖을까 봐 왔어.”
그 시절과 바뀌지 않은 것은 갑자기 비가 올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내가 뛰어가면서 감사했던 건 우리 아이가 나와 같은 기억 대신 ‘비가 오면 우리 엄마가 데리러 와줄 거야’라고 기대하고 걱정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
방과 후 수업 후에는 아이가 어떤 입구로 나와서 신발을 갈아 신는지 모르기 때문에 길이 엇갈릴까 봐 더 서둘러서 움직였다. 하지만 수업시간이 20분이 지나도록 아이가 나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선생님께 문자를 남겨보았지만 바쁘신지 아무 답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같은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고 한참 후에야 우리 아이와 나는 만날 수 있었다. 비록 아이와 만났을 때는 비가 이미 그쳐서 우산을 펴지 않고 집에 갔지만 그래도 뿌듯하다. 너에게 내가 우산을 들고 갈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