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의 나들이
오늘 오전부터 우리 동네에 멧돼지 경보가 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에 멧돼지 3마리가 내려와서 아파트촌을 활보하고 있고, 그것들을 포획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외출 주의를 당부하는 재난문자였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한 마리는 사살되었고 나머지 두 마리가 다시 옆 동네로 이동해서 산으로 올라갔다는 문자가 왔다. 마침 그쪽이 아이들과 함께 가야 하는 곳이었기에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길을 나섰다. 여름에는 꽃사슴이 동네에 출몰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는데 이번에는 멧돼지라니. 아이들은 자기들도 자기 앞에 나타난 멧돼지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만만해하다가 또다시 무섭다고도 하고 꽤 놀란 눈치였다. 그리고는 외출하는 내내 “멧돼지는 안 나왔나 봐?”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사실 이런 소식을 들을 때면 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서로 해치는 것이 목적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일단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 공격밖에 없다는 상황이 말이다. 과연 멧돼지가 원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하게 먹이를 구하기 위함이었을까? 아니면 우리는 모르는 멧돼지의 마음이 있었을까?
길고양이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일단 녀석의 긴장을 풀고 서로 조금씩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들은 것 같다. 하물며 사람 사이에도 그런 법칙은 존재한다. 상담에서는 ‘라포(rapport)’라는 말로 표현하는 ‘(친밀한) 관계’. 근데 오히려 처음 만나는 사람과는 그런 단계를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하는데 가까운 사람끼리는 서로 선을 넘고 더 쉽게 발끈 화가 나고 내는 것일까.
지인이 내게 뜸 들이다가 내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서운한 점을 고백했다. 그런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서운한 지점에 대해 경계를 지어 설명했지만 지인은 ‘너는 말은 그렇게 해도 결국은 그렇게 구분하지 않았어’라며 나의 부연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말도 틀리지 않았겠지만 나도 이런 상황이 답답하다. 내로남불이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닐까 싶고, 우리는 결국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고 방어하기 위해 서로를 공격하는 일을 선택한 것 같다. 이렇게 대화가 오간다면 결국 악순환만 계속될 뿐임을 서로 모르지 않기에 지인도 대화를 중단하자고 했을 것이고 나 역시 더 설명하고 싶은 마음을 꽉 붙잡고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이렇게 참기만 한다고 일이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 걸까. 나와 그는 멧돼지와 사람 같은 관계인 걸까? 왜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우리는 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