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색
추운 공기를 가르며 작은 아이와 집으로 뛰어오는 중이었다. 대뜸 아이가 내게 묻는다.
아이 : 엄마, 엄마는 지금 나이를 먹고 있어요?
엄마 : 그럼. 너도 먹고 있어.
아이 : 엄마, 그럼 나이는 무슨 색일까요?
엄마 : 글쎄... 너는 어떤 색으로 하고 싶니?
아이 : 투명색? 우리 색깔 도감을 보면서 찾아봐요.
아이가 내게 질문했을 때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말하는 색명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뭔가 깊어진다는 의미를 설명해주고 싶었는데 쉽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나이 먹는다는 것에 대해 궁금해했다. 아마도 나이가 들면 엄마도 할머니가 되고, 더 나이가 들면 자신들의 곁에 있을 수 없는 시간이 온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부터 더 자주 이러한 대화를 나누는 것 같다.
어렸을 때 본 점술이나 손금의 형태 등등에서 늘 나오는 말 때문에 나는 불과 20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 이 나이까지 살아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않았다. 하지만 통계에 기반했다고 하는 점술도 오차값은 있었던 것 같고 나 스스로의 기대수명도 조금씩 길어지는 것 같다. 세상이 변하면서 여성에게 나이가 주는 제약이나 굴레도 많이 약해져가고 있고 이러한 의식이 내게도 긍정적인 생각을 많이 준다.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여자들의 나이를 조롱하던 시대를 지났지만 연애를 할 수 있었고, 흔히 말하는 ‘여자 나이 30살’이 지났어도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20대 때 중년 남자 연예인들에게서 느낀 원숙미를 이제는 여자 연예인들에게서도 발견하고 있다. 젊은 날에만 뿜어져 나오는 그 특유의 매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시간의 매력도 굉장히 멋지게 느껴진다. 전자는 더 이상 내가 가질 수 없지만 후자는 노력하면 근처라도 갈 수 있지 않을까?
나중에 아이와 또 이런 이야기를 할 날이 온다면 나이의 색을 무엇이라고 말하면 좋을까? 지금으로는 맑고 연한 갈색빛이 떠오른다. 한 모금 정도만 보면 그저 투명한 색이겠지만 그 색이 모이고 겹쳐지고 쌓일수록 더 진한 갈색으로 보이는 깊은 물 같은 그런 갈색. 더 풍부하고 부드러운 향을 지닌 그런 색. 하지만 탁해지지는 않고 싶은 그런 색.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 주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빛은 지니고 있을 것 같은 그런 이미지들. 나이 먹는다는 것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나이 든다는 것에 거부감 대신 기대감을 갖게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