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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달 Dec 25. 2020

84일 차

산타를 믿숩니까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친구의 집에 방문했다. 친구네 거실에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위해 아이들과 직접 꾸민 트리가 있었다. 그리고 트리 아래에는 아이들이 직접 산타에게 쓴 편지도 놓여 있었다.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구체적으로 쓴 언니와 귀엽게 쓴 동생의 편지였다. 그 편지를 발견한 우리 아이들이 꽤 관심을 보이자 친구의 큰 아이가 우리 아이들에게 대뜸 이렇게 물었다. “너는 선물 뭐 받고 싶다고 했어? 엄마 아빠가 주는 거랑 산타가 주는 거랑?”이라고 재차 물어보는 친구의 큰 아이 때문에 온 신경이 그쪽을 향하게 되었다. 아직 우리 아이들에겐 산타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비밀이 깨질까 봐 걱정이 되었다.


 내가 산타를 믿지 않게 된 건 아마 초등학교 1학년 때였던 것 같다. 당시 우리 가족은 이모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학교에 가지 않은 어느 날 점심때쯤 뜬금없이 이모께서 내게 말씀해주셨다. 산타는 없다고. 네가 받은 선물은 다 부모님이 주신 거라고. 어쩌다 그런 이야기가 나온 것인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 엄마는 이모에게 화를 내셨고 나 역시 상처 받았던 것은 떠오른다. 어쩐지 매년 내가 바라는 선물 대신 재미없는 책이나 엉뚱한 선물을 받더라니. 그렇게 강제 커밍 아웃을 당한 이후 매해 성탄절을 앞두고 부모님과 나의 미묘한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늘 비밀이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 출근하시고 나면 동생이랑 옷장이나 베란다 등등 집 이곳저곳을 뒤져서 숨겨진 선물을 찾아보고 미리 포장지 안을 슬쩍 보기도 했다. 그리고 미리 알아두면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한 바지 주머니에 쏙 들어갈 ‘휴대용 카세트’ 대신 콘센트에 코드를 꽂아 전원을 연결해야만 쓸 수 있는 라디오를 받았을 때 같은 당혹스러움을 예방했달까.


 그것도 중학교 가기 전까지만 했던 일이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원하는 선물을 받기 위해 했던 여러 가지 전략은 딱히 유용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원했던 것을 받았던 해는 정말 딱 한 번 정도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이왕이면 아이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엄마의 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한 달 전부터 크리스마스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고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해 물어보았다. 큰 아이는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것이 확고하고 변함이 없었는데 작은 아이는 물어볼 때마다 자꾸 원하는 것이 바뀌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전까지 선물을 무사히 배송받으려면 최소한 보름 정도는 여유를 두어야 함을 경험했기에 내 마음은 급해졌다. 결국 크리스마스가 일주일 정도 앞으로 다가왔을 때 더 이상 결정을 미룰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선물을 준비하고 아이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열심히 선물을 포장했다. 여러 가지 포장지로 각각의 상자를 싸고 금색, 빨강 녹색의 리본으로 포장을 마무리했다. 카드는 미처 쓰지 못해서 아이들이 잠든 크리스마스이브 밤에 후다닥 만들어서 봉투에 넣고, 봉투 위에 커다랗게 받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선물 상자에 붙여두었다. 구별해두지 않으면 서로 누구 선물인지 몰라서 다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들의 선물 위에 남편을 위한 선물도 올려두었다.


 우리나라의 명절처럼, 크리스마스의 의미도 비슷한 것 같다. 서로를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표현하고 나누고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주된 목적이지 않았을까. 비록 올해는 외식이나 여행 등 외출 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 아쉽지만 내가 어렸을 적 봤던 <나 홀로 집에> 시리즈를 나의 아이들과 함께 집에서 본다는 것이 특별하게 느껴진다. 동화 속에 나오는 진짜 산타는 아니겠지만 아이들에게 즐거움과 행복을 만들어 준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근데 왜 아무도 나한테는 선물은커녕 카드도 안주는 거지. 에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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