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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고래 Apr 22. 2024

본방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수 필수!

'지금'이 아니면 겪을 수 없었던 것들


'백재희'는 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주인공인 윤혜린의 보디가드다. 그녀를 몰래 흠모하는 남성이기도.

성이 '백'이라는 걸 오늘 알았을 정도로 드라마에서는 '재희'로만 불리는데, 그 소리가 마치 알파뱃 J와 비슷해서 철수와 영희가 교과서를 주름잡던 당대에 상당히 글로벌하고 멋스러운 이름의 인물이었다. 재희 역을 맡았던 배우는 (지금의 세대에게) "내가 왕이 될 상인가", "구멍이 두 개지요오오"로 알려진 이정재다. 그는 보디가드로써 묵묵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동시에 그 대상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마음으로만 바라보는 재희 캐릭터와 딱 맞았다.

재희는 드라마 후반부 윤혜린을 지키기 위해 대신 몽둥이를 머리에 맞고 사망한다. 그의 의식은 슬퍼하는 그녀를 조용히 눈에 담으며 멀어지는데, 당시 나에게 그 장면은 가히 충격적인 슬픔으로 다가왔다. 나는 안구를 뚫고 뿜어져 나오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같이 보고 있던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천장으로 고개를 수차례 들며 애를 써야 했다.


당시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는 채널은 총 다섯 개였다. 11번(MBC), 9번(KBS1), 7번( KBS2), 13번(EBS), 2번(AFKN). 내가 살았던 지역 기준으론 그랬다. 그리고 U모양의 채널이 하나 더 있었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그 채널을 틀어두면 선택받은 자에 한하여 다른 차원으로 간다는 설이 있었다.


* TMI: 훗날 알고 보니, 사실 U채널은 UHF(Ultra High Frequency) 주파수의 채널로 더 많은 채널을 보기 위한 용도였다. 옛날 텔레비전은 채널 변경을 위한 스위치가 두 개였는데, 위의 메인 스위치 채널을 U에 맞춰두면 아래의 스위치로 더 많은 채널을 시청할 수 있었다. 다만, 별도의 안테나를 설치해야 했기에 그것을 알거나 사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나 역시 이 글을 쓰면서 알았다. 그래서 다른 차원의 통로가 열리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선택받지 못해서 안 열린 게 아니라!)


1991년의 어느 날, 새로운 채널이 등장했다. 6번(SBS)이었다. 사실상 기존에도 두 개 채널 외에는 즐기지 않았기에 하나의 채널이 더 생긴 건 볼 수 있는 콘텐츠가 50%나 늘어난, 굉장히 기쁜 일이었다. 더군다나 SBS는 민영 방송사의 것이라서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신선한 방송들이 가득했다.


새로운 채널의 등장,
가장 좋았던 건 <영화특급>이었다.


나는 가족과 모여서 영화 보는 시간을 매우 좋아했는데, SBS의 등장 전까지는 KBS2의 <토요명화>와 KBS1의 <주말의 명화>가 토요일의 양대산맥으로 그 밤을 책임지곤 했다. 주말의 명화는 대체로 역사가 긴 명작 계열의 영화를 반영했고, 토요명화는 상대적으로 대중적이고 최신의 영화를 다루곤 했다.


영화 프로가 하나였다면 영화의 재미에 따라 토요일 밤이 싱겁게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두 개의 채널에서 거의 동시에 두 개의 영화를 방영했기에 좀 더 취향에 맞는 것을 골라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떤 영화가 할지 일주일 동안 중간중간 광고를 통해 알려주는데, 보고 싶었던 영화 광고를 보게 되면 그것이 방영되는 토요일을 애타게 기다리기도 했다.


이토록 소중했던 토요일 밤의 기쁨은, SBS가 생기면서 이틀로 늘었다. SBS에서 선보인 <영화특급>이 금요일에 방영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화특급>에서는 기존의 영화 방송에 비해 좀 더 최신의,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었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놀다가 문득 오늘이 금요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재밌게 놀고 있는데, 심지어 다 놀고 집에 가도 영화시청이 기다리고 있다니. 그 순간 감당하기 힘들 만큼의 벅찬 행복감이 덮쳐왔다.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그 충만함이 기억난다는 건, 나에게 당시의 금요일과 토요일이 다른 의미의 '불금'이자 '토토즐'이었다는 의미다. 생각해 보면 그 시간들 때문에 지금까지도 영화를 좋아하는 것 같다.




본방은 돌아오지 않는다.
사수 필수!


만약 지금의 20대가 위의 사례를 읽는다면 '음? 왜 토요일만 영화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정해진 날에만 영화를 볼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그날만 텔레비전에서 영화를 틀어줬기 때문이라고. 채널 확장과 방송시간 연장으로 재방송이 많아진 후에야 '본방송'으로 구분되던 그것은 당시 단 하나로 존재했으며, 그 시간을 지나간 후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말이다.


* TMI: 일부 인기 프로는 재방송을 해주었다. 하지만 그 기회마저도 한 번뿐이다. 그 시간에 다른 일이 있으면 영원히 볼 수 없다. 더군다나 영화는 재방송을 해주는 일이 거의 없었다. 놓쳐버리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그 순간을, 금요일과 토요일 밤을, 본방을, 사수해야 했던 이유다. (물론 누군가 비디오로 녹화를 해두는 방법도 있다)


본방 사수가 중요해지는 상황은 올림픽이나 대형 뉴스와 같이 범국가적인 주제가 보통이지만, 드라마처럼 연속적인 이야기를 따라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따라가지 않으면 다음 주에도 멍을 때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기 있는 드라마가 할 때는 집집마다 온 가족이 텔레비전 앞으로 모여 앉았다. 테마 음악과 타이틀이 나온 후 광고가 시작되고, 집 안에는 묘한 긴장감이 맴돈다. 엄마는 다리미를 꺼내고, 아빠는 머리를 말린다. 나도 어딘가에서 촉각을 곤두세운다. 텔레비전에 가까운 누군가 "시작한다!"라고 외치면 빠르게 모인다. 방금 시작한 것 같은데 10분이나 지나있다. 저 작은 상자에서 나오는 이야기가 왜 이렇게 재밌는 걸까. 귤과 같은 과일이 함께일 땐 그 행복이 최고조에 달한다.



그래서 당시 드라마의 파워는 정말이지 막강함 그 자체였다. 역대 드라마 시청률 순위 20개 중에 15개(75%)가 90년대 드라마라는 점에서 그 영향력을 알 수 있다. 나의 경우 글 서두에 언급했던 <모래시계(64.5%)>와 더불어, <여명의 눈동자(58.4%)>, <마지막 승부(48.6%)>, <사랑이 뭐길래(64.9%)>, <M(52.2%)> 등이 인상 깊었다. 모두 엄청난 시청률을 기록했다.



자정이 지나도 꺼지지 않는 텔레비전


1990년대부터 '케이블 TV'가 대중화되었다. 무선으로 다가오는 전파를 안테나로 수신했던 지상파 방식과 달리 유선으로 방송 신호를 전달하는 방식이며, 그래서 '유선방송'이라고도 불렸다. ―무선에서 유선으로 변화했다고 생각하니 뭔가 반대로 진행된 것만 같다...― 케이블 TV에서는 대폭 확대된, 다양한 장르의 전문 채널을 볼 수 있었다. 시청자들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의 선택지를 갖게 된 것이다.


나에게 다양한 채널보다 좋았던 점은 텔레비전이 더 이상 신데렐라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상파의 그것은 밤 열두 시면 되면 세상 재미없는 것들만 툭툭 뱉어대다가는 애국가를 부르곤 했는데, 케이블 TV에서는 밤늦게까지 재밌는 방송들을 틀어주었다. 자정이 지나도 텔레비전이 꺼지지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콘텐츠 빅뱅의 시대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IPTV(인터넷 프로토콜 TV) 서비스가 등장했다. 지금 거실이나 티브이 아래에 있는 B tv, 올레 tv, U+ tv 등이다. 그뿐인가. 불과 몇 년 지나지 않아 두 공룡이 등장했다. 앞선 이는 영상 콘텐츠 플랫폼의 시대를 연 '유튜브'였고, 뒤선 이는 콘텐츠 소비 방식을 완전히 바꿔버린 '넷플릭스'다. 이런 여러 채널들 덕에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본방 사수는 필수가 아닌 선택


SBS, KBS, MBC를 현재는 지상파 방송이라고 부른다. 그렇게 부르는 이유는 1980년대 당시의 아날로그 통신 방식 때문이다. 지상에 설치된 송신 타워를 통해 방송 신호가 전파되었고, 그것을 각 가정의 TV안테나를 통해 수신하였다.


지금은 이 채널들을 모두 디지털 방송으로 시청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지상파(또는 공중파) 방송이라고 칭하는 이유다. 물론 이 방송들은 여전히 지상파로 신호를 전송하기도 하며, (벽에 있는 안테나 선을 티브이에 연결하여) 지상파 방식으로 방송을 시청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은 다가오는 세대의 콘텐츠 소비 패턴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 더 취향에 차는 방송들이 넘치고, 그것들을 모두 원하는 시점에 선택하여 볼 수 있다. 굳이 모든 연령대와 대중성과 심의규정과 전통, 심지어 광고주들까지 고려하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콘텐츠를 흘려보내는 기성 방송을, 또 심지어 기다리면서까지 볼 이유는 없다. 사실 그런 방송이 재생되는 텔레비전 앞까지도 갈 유인 자체가 줄었다. 디바이스가 개인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상파 방송은 사라졌고 본방 사수는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었다. 그것이 필수이던 시절을 포장하자면 본방송을 보기 위해 가족이 한 자리로 모이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일반화하긴 어렵다. 예나 지금이나 각 가정의 모습은 저마다의 고유성이 있을 것이다. 텔레비전을 자주 같이 보지 않는다고 해서 화목하지 않다고 단정 지을 수 없고, 설령 화목하지 않다고 하여 문제가 있는 가정으로도 볼 수도 없다. 오히려 각자의 시간을 존중하는 건강한 가족의 예일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이 글을 쓰면서 문득 깨달은 것은 ‘지금’의 중요성이다. 모든 것들에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시대에서는 “지금이 아니어도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일상 대부분의 순간들을 미래로 보낸다. 보고 싶은 영화도, 해야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그렇다. 가까운 곳에 더 매력적이고 빠른 선택들이 있어서다. 심지어 행복한 순간들도 수십 장의 사진에 담아 미래로 보낸다. 사실, 그 모든 순간의 '본방'은 지나가고 있다.


지나가 버리면 돌아오지 않던 것들이 많았던, 그래서 내 일상도 본방으로 대하던 시절의 감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미뤄뒀던 영화를 한편 시청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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