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MZ세대라고…?"
"놀랍지만 사실이야."
"그… MZ는 요즘 젊은 사람들 아니야?"
"맞아, 그래서 우리는 MZ지만 MZ가 될 순 없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하는 거야?"
“그게 MZ스타일이야. 이 할.아.버.지.야!”
“나, 나도 MZ거든...?"
“MZ 같은 소리 하네 ㅋ"
이것은 각기 다른 두 사람과의 대화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하루에 겪은 일이기도 하다. MZ. 제트가 아닌 '지'로 끝내야 하는 그것이 도대체 뭐길래 내가 포함된 것일까. 또한 포함되지 못하는 것일까.
MZ세대라는 용어가 미디어를 범람하던 시기, 나는 그것이 쓰이던 맥락에서의 의미를 대략 '요즘 젊은 세대'로 이해했다. 내가 X세대였으니 그보다 몇 세대 뒤인 Z세대, 그중에서도 M이라는 수식이 더해진 세대로 예상한 것이다. (이를테면 Mega Z 세대)
그런데 이후에 알고 보니 M은 밀레니얼(Millennials) 세대를 의미했으며, MZ는 이 두 세대를 통칭하는 용어다.
밀레니얼 세대:
Y세대 또는 에코붐 세대로써, X세대와 Z세대 사이의 세대
즉,
- M세대: 1980-1994년 생
- Z세대: 1995-2010년 생
자그마치 30년이라는 기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한 단위로 묶어서 특징을 찾아내는 게 의아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그에 속해있다는 게 더 놀라웠다. 인구통계학적 분류에서는 속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 MZ가 되긴 어렵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주변인들, 그러니까 MZ의 M에, 거기서도 가장 끝에 아슬아슬 서있는 이들에게는 MZ라 할만한 소양이 많지 않아서다.
MZ는 어떤 세대
MZ라는 용어는 다양한 콘텐츠에서 소비되지만 정작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너도 나도 아는 듯 대화를 나누지만 실은 아무도 몰라서 그 끝에는 ‘그래서 그게 뭔데?’라는 말을 뱉게 되는 소재처럼 말이다. 이 은근 신기루 같은 MZ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그들에 대한 여러 설명들을 모아봤다.
먼저, MZ세대는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을 경험한, 밥을 먹고 한국어를 사용하고 숨을 쉬는 것처럼 그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텔레비전이나 PC 등 다른 전자기기보다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그것을 통한 최신 트렌드 파악 등 정보 접근에 뛰어나다. 또한 SNS, 쇼핑, 렌털 등 일상 근접도가 높은 일들을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보다 디지털에서 더 자연스럽게 활용한다.
MZ세대는 개인의 만족에 집중한다. 경제적 안정보다는 자기 계발과 만족을, 집단보다는 개인을 우선시한다. 그래서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 앞선 세대와 달리, 더 이상 직장 생활에만 매진하지 않고 자신만의 일상을 반드시 반드시 가꾼다. 예컨대 이로 인해 승진이나 소득에 영향이 있더라도 말이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이라는 개념은 이를 좀 더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로부터 생겨나지 않았을까 싶다.
MZ세대는 일종의 소셜미디어 세대이기도 하단다. 자신의 일상을 SNS를 통해 손쉽게 공유하고, 이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며, 나아가 커리어나 관심사를 발전시키는 발판으로도 활용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명함이나 전화번호 대신) 인스타그램 주소를 주고받는 첫 세대이기도 하다. 따라서 MZ세대를 겨냥한 마케팅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MZ세대는 합리적인 선택을 중시한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관에 맞지 않거나 최소한의 이득 기준을 침범하는 상황을 굳이 선택하고 감내하지 않는다. 나에게 이롭고 의미 있는 다른 선택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는 쉬워 보이지만 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예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사고방식 덕에, 특히 회사생활에 있어 MZ세대는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캐릭터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새로운 근무 형태나 복지 제도를 도입할 때 MZ세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사례도 많다고 한다.
MZ세대의 합리적 행태는 소비 패턴에서도 나타난다. 소유보다는 공유(렌털이나 중고시장 이용)를, 상품보다는 경험을 중시하는 특징을 보인다.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적 가치나 특별한 메시지를 담은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자신의 신념을 표출하는 '미닝아웃' 소비를 하기도 한다.
이처럼 MZ세대에 대한 많은 정의와 설명들이 있지만, 그 타이틀만 다시 축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1.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다
2. 소셜미디어를 한다
3. 개인의 만족에 집중한다
4.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자, 그렇다면 이러한 특징들이 MZ세대의 M을 맡고 있는 나에게도 해당될까. 누군가 '이것들이 당신을 설명합니까'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대체로 공감은 되지만, 조금만 구체적으로 따져봐도 미묘한 차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 차이를 극복하고 MZ세대에 맞게 행동하는 것도 어렵다. 말 그대로, 그렇게 되고 싶어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80년생이 MZ가 될 수 없는 이유
그래서 위의 네 가지 특징을 기반으로 그 이유를 따져봤다. 참고로 아래 내용에서의 MZ세대는 그에 속하는 실제 사람들이 아닌, 사회적으로 정의된 캐릭터를 의미한다. (MZ세대들 화내지 않기...!)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다?
나 역시 디지털 환경에 친숙하고, 심지어 능숙하다.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일상에서의 수많은 일들을 디지털 서비스로 해결한다. 또한 그 안에서의 정보 공유 및 소통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는 점에서 MZ세대와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디지털이 내 일상의 근원이라고 할 만큼 손에 착 붙냐고 한다면 그렇지 않다. 나를 포함한 80년생들은 아날로그 시대로부터 존재했다. 어린 시절을 그 환경에서 보냈고, 청소년기와 성인 초기에 디지털 시대의 혁명을 경험을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더 편한 디지털보다 더 익숙한 아날로그를 선호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를테면 전자책으로도 글을 읽을 수 있지만 종이책을 더 선호하고, 카톡보다는 직접 만나서 대화할 때 진짜가 오간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성향으로 인한 MZ세대와의 가장 큰 차이는 '새로운 서비스를 받아들이는 속도'다. 80년생에게 디지털 환경은 '적응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긍정적이고 혁신적인 면들을 차치하고 볼 때)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서비스를 마주쳤을 때 여전히 그렇게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학습과 적응이 필요한 또 하나의 대상, 나아가 '왠지 이것을 못하면 도태될 것 같은' 불편한 감정을 남기기도 한다.
반면에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MZ에게 있어 빠른 속도감과 변화는 그 세계에서 늘 존재해 왔던 것이다. 적응보다는 선택의 대상에 가깝고, 어렵게 느낄 필요 없이 그저 해보면 되는 것이다. 해봐서 편하면 선택하고 그렇지 않으면 누가 뭐라고 해도 선택하지 않는다. 선택하지 않음으로 인한 불안이 없다.
소셜미디어를 한다?
여기서의 '한다'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일상을 공유하고 정보를 얻으며 팔로워들과 소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을 위한 툴은 사실상 인스타그램으로 일축할 수 있는데, 80년생의 경우도 인스타그램을 사용하는 이들이 꽤 있다. 하지만 위에서 정의한 '한다'에 기준을 두면 그에 부합하는 수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다. 80년생 대부분은 그저 주변 일상을 구경하거나 릴스를 보기 위해 접속하는 경우가 많아서다. (이는 이미 이전 글에서 다루었다). 심지어 내 일상 등 콘텐츠를 올리는 이들조차 공유나 소통 목적보다는 기억의 저장소 용도가 더 많을 것, 이라고 고집을 부려본다.
개인의 만족에 집중한다?
만족스러운 삶, 중요하다. 80년생도 카르페디엠, 욜로 등의 의미들을 접하며 바로 지금의 삶에, 그 안에 머물고 있는 만족의 양에 고심하게 되었다. 퇴근 후의 취미 활동, 가족과의 시간 등 많은 것들을 이전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다.
하지만 현재의 만족을 위해 미래의 안정을 외면할 수 있는가에 있어서는 MZ의 그것에 비해 다소 차이가 있다. 나는 그런 선택을 할 수 없다. 이 세대에게는 묘한 죄의식의 뿌리가 있는데, 그것은 미래를 따지지 않고 현재의 만족만 좇을 때 발동된다. 다른 이들은 더 나은 삶을 향해 달리고 있을 텐데, 혹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오늘도 노력을 아끼지 않을 텐데 나 홀로 천하태평하게 있는 듯한 모습에 대한 죄의식이다. 그래서 심히 편안하거나 행복한 일상이 지속되면 '뭐야, 이대로 괜찮은 건가'라고 생각하며 불안에 떨기도 한다.
이처럼 80년생이 경제적 안정과 성공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성장기의 경제적 불확실성을 사례로 들 수 있다. 1997년의 IMF 외환 위기를 직접 경험하며 돈이 없을 때 겪을 수 있는 엄혹한 현실들을 목격했다. 당연했던 것들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장면은 경제적 안정의 중요성을 마음속 깊이 새기게 했다.
더불어 80년생은 주입식 교육의 첫 번째 결과물이다. 불안정한 경제 상황 속에서 그것을 견디며 가파르게 성장했던 부모 세대의 긴장감이 교육 과정에 고스란히 담긴 탓이다. 사회의 구성원이 되기 위해 교육을 잘 받는 것은 반드시 중요했고, 그 성과는 대학교로만 증명할 수 있었다. 동기와 이유보다는 결과만을 향해 맹목적으로 달렸던 시간. 이것은 유전자기호처럼 버릴 수 없는 사고의 패턴으로 남아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
M과 Z 모두 합리적인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을 대할 때 이것은 다르게 나타난다. 합리적이지 않은 상황은 보통 사회적인 맥락, 주로 회사와 같은 단체 생활에서 자주 일어나는데, 이때 (위에서 정의한) MZ세대는 불편한 상황을 대체로 넘어가지 않는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과 납득이 필요하다. 그래서 만약 대충 '까라면 까' 식으로 뭉개는 상사가 있다면 그 이유를 묻는다. 이것은 자신의 의견을 어디서든 굽히지 않겠다는 당돌함이 아니다. 그저 질문하거나 얘기하는 것이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스스로 다른 선택으로의 결론을 내린다.
누군가 나에게 합리적이냐고 묻는다면 그에 가깝고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매우 노력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조직생활에서 그렇지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따져 묻거나 노력하기보다 오히려 받아들이고 견뎌왔다. 앞으로도 어쩌면 그런 선택의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내 얘기만이 아니다. 80년대생들은 '견디는' 것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바와 같이, 나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온 세대로, 그 과정에서의 급변하는 소용돌이를 '견뎌'왔다. 변화에 대해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버티고 적응하는 게 더 쉽고 익숙하다.
M세대의 재정의
'정의'라는 말이 사무치게 부담스럽지만, 만약 누군가 나에게 M세대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먼저 숨을 고른 후 영화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처럼 깊고 가늘게 눈을 뜰 것이다. 이빨에 걸려 있던 시가를 검지로 말아쥔 후 입에서 떼어낸다. 그리고 시가가 들려 있는 손으로 허공에 점을 찍듯 터치한 후 담배 연기와 함께 이 단어를 뱉을 것이다.
"균형."
균형. 이 세대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 싶다. 아날로그의 연속성과 디지털의 극명함 사이에서,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 시하는 윗세대와 철저하게 그 반대의 만족과 실리를 추구하는 아랫세대 사이에서, 티브이와 쇼츠 사이에서, 대면과 비대면 사이에서, 전화통화와 카톡 사이에서, 새우등은 아니지만 나름의 코어 신경들을 터뜨리며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M세대가 대단한 목적의식을 갖고 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살아온 환경으로 인해 자동으로 작동하고 무의식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예컨대 직장 내의 논쟁이 지나치게 메신저로만 이뤄질 때 '이렇게 계속해도 되는 건가'라는 생각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그래서 티타임 등을 통한 대화를 진행하거나 대면 기반의 논의 상황을 만든다. 이는 디지털 기반의 효율성에는 반하는 상황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물리적인 에너지가 쓰이므로 번거로운 선택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때때로 디지털 환경에서는 불가능한 밀도의 소통으로 더 빠르고 의미 있는 결과를 이끌기도 한다.
직장 내 세대 간 갈등에 있어서도 그렇다. M세대는 마치 보수적인 아버지와 개성 강한 자식들이 있는 집의 엄마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상사는 조직의 목표를 기반으로 소위 좀 더 성과를 '뽑아내길' 바란다. 그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각 개인이 겪게 되는 심리적인 불편감이나 개인 사정 같은 것들은 딱히 고려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걸 팀 내에서 헤아리고 배려하는 것 자체를 바이러스처럼 여기는 리더도 있다.
반면에 실무자들은 앞서 말한 MZ세대의 특징들을 더러 갖고 있다. 이들은 조직을 위해 영혼을 구정물에 담글 생각이 없다. 부당한 요구를 '성숙으로 향하는 아픔'으로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상식과 합리의 선에서, 그리고 자신의 임금 수준을 크게 넘지 않는 수준에서 업무를 한다. 불합리가 지속되면 이직을 용의선상에 둔다. (실제로 이런 직원이 많다기보다는 그런 환경을 지향하는 분위기라고 보는 게 맞겠다.)
그렇기에 대체로 그들을 관리하는 위치의 M세대는 영혼을 갈아 넣으며 완결에 도달하기 바라는 상사의 요구사항을 염두에 두고, 아랫세대들의 합리에 맞춘 정책과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M세대가 가진 성향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현재 이 연령대가 대한민국 경제활동 인구의 허리 역할을 하는 탓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직장을 벗어나 사회 전반으로 확장을 해도 유사한 패턴을 가질 것이다. 좋게 말해 균형이지. 캐릭터 분명한 이들 사이에 끼어서 아등바등하는 꼴인 듯도 싶다.
나는 M세대에 대해 설명한 후 다시 시가를 입에 물 것이다. 이빨 사이로 연기와 함께 나오는 다소 부정확한 발음으로 이런 말을 더할 것이다.
"그런데 MZ라는 자유분방한 이름에 묶여 있는 꼴이라니. 뭐랄까..."
다시 시가를 집어 들고는 먼산을 향해 남은 연기를 밀어낸다. 아련한 눈빛으로 그곳을 응시하며 마지막 대사를 뱉는다. 미간이 슬쩍 올라가고 어깨를 미세하게 으쓱인다.
"좀 당혹스럽다는 거지."
누군가는 그것을 슬픈 표정이라고 할 것이다. 더러는 뿌듯해 보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