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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출근한다

by 왕고래


매일 출근한다.


이직을 하면서 많은 게 바뀌었는데 그중 하나를 꼽자면 출퇴근 풍경이다.


예전 회사는 재택이 주된 근무 형태였다. 출근길 풍경을 나열하자면 화장실, 주방, 식탁, 화장실, 책상 정도일 것이다. 하루를 기분 좋게 보내려면 아침부터 거울을 보지 않는 게 이득이기에 이따금 세수도 건너뛸 때가 있었다. 그러면 유일하게 반복되는 아침 행사는 양치질 정도다. 잠에서 깨어나 업무 공간에 앉는 순간까지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하물며 퇴근 시간은 더 짧았다. 노트북을 덮고 소파로 달려가면 끝난다. 퇴근길 풍경이라고 할만한 게 없었다.


새로운 회사는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한다. 그래서 풍경도 다르다. 나는 출근 준비를 할 때 예전보다 오래 화장실에 머문다. 노트북 카메라가 더 이상 얼굴에 묻어있는 긴 세월과 눈곱, 잡티들을 감춰줄 수 없기 때문이다. 생겨먹은 그대로 드러난다.


심지어 한번 집을 나선 뒤엔 용모를 챙기는 일이 드물다는 것을 알기에 애써 거울 속 그것과 눈을 마주친다. 그런다고 딱히 나아지는 건 아니다. 재택 때도 하던 양치질을 하고, 좀 더 꼼꼼히 세수와 면도를 할 뿐이다.


지하철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출근길에서 본 이들의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자는 이가 반쯤 되고, 그 외에는 뭔가를 보고 있다. 자는 이나 보는 이나 표정은 같다. 표정이라고 할만한 게 거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나 역시 그럴 것이다.


책을 챙기지 않았을 때는 여지없이 스마트폰을 꺼낸다. 자리에 앉지 못하면 할 수 있는 건 더 제한된다. 결국 엄지는 가장 익숙한 길을 흘러가 유튜브 앱을 켠다. 알고리즘은 내 관심사에 맞는 영상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이따금 그것들은 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분명히 개별 영상은 새롭고 흥미로운데, 그 연속적인 자극을 따라가는 경험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과히 익숙하다. 재택 시절부터 매일 반복했던 양치질보다 더 그렇다.


그럴 때면 알고리즘의 코드를 뽑고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본다.


우연히 한 남성에 시선을 두었다. 나는 그가 잠을 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잠시 후에 작은 동작으로 성호를 긋고는 뭔가 작게 내뱉었다. 예상 밖의 동작 때문인지 그 모습이 더 뚜렷해졌다.


남성은 흰색 티셔츠 위로 얇은 네이비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는데, 맨 위 단추만 채워져 있었다. 아침 기온이 애매한 탓에 입을지 벗을지 결정을 못 내린 것만 같다. 무릎 위에는 책이 한 권 놓여 있다. 두 손을 그 위에 모으고 있어서 제목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다르다는 걸 알아챘다. 미간의 주름 모양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어떤 기도를 한 것일까. 나는 그에 대한 생각을 이어가는 과정이 작지만 고유하게 느껴졌다.


한 시간 남짓 이동하면 회사에 도착한다. 이 과정은 비가 오는 날에도 예외 없다. 녹아내리게 더운 날도, 찢어지게 추운 날도, 아픈 날도, 슬픈 날도, 늦잠을 잔 날도, 잠을 안 잔 날도 마찬가지다. 나는 같은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 찬 열차를 타고 한 시간을 이동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은 사실 다르다. 그들의 표정이 미세하게 다르 듯.


그 차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알고리즘은 알 수 없다. 오랜 시간 이곳을 오간 어른들만이 알고 있었다.


좀 더 고개를 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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