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하지 않아도 괜찮아

by 왕고래


부장급 관리자가 새로 입사했다.


그녀는 꽤나 규모 있는 보수적 조직에서 관리직을 맡다가 이곳으로 영입되었다. 풍성한 표정, 당찬 걸음걸이, 단단한 목소리, 빠른 융화, 격식 없는 말투.


마치 자신이 대범인이라는 것을 알리기라도 하듯 굉장히 눈에 띄는 캐릭터였는데, 대범함이 가진 좋은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을 더 많이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소심인의 회사에서 ‘막 나가는(적어도 소심인들에겐 그렇게 보이는)’ 그녀를 ‘막부장’으로 조용히 칭했다.


막부장은 회의 파괴자였다.


누군가 의견을 내면 “결코, 절대, 그건 안 됩니다. 알겠어요?”라든가, “프로젝트가 망해가는 꼬락서니는 볼 수가 없네”, “그 제안은 고민이 전혀 느껴지지가 않는데?” 등과 같은 말을 손쉽게 뱉었다. 이해한다. 그 분야에 전문가이니까 어떤 식의 뾰족한 사고를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사적인 표현에도 딱히 정제 장치를 두질 않았다.


“김하나 씨, 남친이랑 헤어졌다며? 얼굴이 영 아니네~”

“두 사람 같이 가는 모습을 보니까 마리오와 루이지 같네. 한 명은 짧고 나머진 너무 길고. 요즘 세대라 잘 모르지?”

“말하자면 이런 거야. 소희 씨가 솔직히 외모는 좀 별로잖아. 근데 예쁜 여자만을 위한 서비스에 관심이 가겠냐는 거지.”


막부장은 심지어 상급자들에게도 ‘이 조직을 구성하고 있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소심하고 유약하며 답답하다’는 충언을 서슴지 않았다. 다들 눈치만 살피다가 한 세월이 가는데, 이래서 살아남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사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걸음은 느리지만 바닥 파이도록 발끝까지 힘을 주는 것이 이 회사의 성장 동력임을. 그럼에도 자신이 온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단다. 그녀가 습관적으로 뱉는 말이 있다.


“뒷말하는 사람들 너무 싫더라.”


나는 위아래 구분 없이 할 말은 한다, 솔직한 사람이니까, 앞에서 할 수 없는 말은 뒤에서도 안 한다, 라며 턱을 치켜들었다. 뒤끝 따위 없으니 할 말 있으면 언제든 편하게 뱉으란다. 이따금 흥을 놓지 못하고 몇 마디 더했다. “뒤에서 속닥거리는 인간들, 극혐!”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왕고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그렇게 돌아간 바다에서, 고래는 다시 바다가 된다.

1.7만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25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19화몸속에만 서식하는 오지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