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참 오랜만에 편지를 써.
옆에 있는데 쓰려니 좀 어색하네.
둘 뿐이던 그때는 자주 썼는데…
내가 좀 뜸했어. 반성할게.
오늘 말이지.
싱크대 아래에서 물건을 꺼내다가
주방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쳤어.
딱 생각이 나더라고.
여기서 저번에도 부딪쳤는데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었지.
그런데 오늘은
그때만큼 안 아픈 거야.
"머리 조심~"
봉팔이가 그랬잖아.
내가 싱크대 아래에서 나올 때마다 얘기해 줬어.
나중엔 좀 귀찮았는지 '머리~'라고 했지.
그래도 빼먹지 않고 얘기해 줬어.
오늘 부딪치고 보니까,
거기에 스펀지가 붙어있더라고.
매번 말하기 귀찮아서 붙여놓은 걸까?
봉팔이도 참 티 안 나게 일하는 것 같아.
부딪치기 전까진 알 수 없으니 말이야.
뭐 그 덕에,
가버린 뒤에도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네.
기억나?
아빠도 그랬잖아.
여기저기 날 위한 배려를 해놨는데
티가 하나도 안 났어.
그 상황이 되면
‘짠, 내가 그럴 줄 알고.’ 하면서 나타났어.
엄마도 그랬어.
직접 차려주던 아침밥이 메모지로 바뀐 후에도,
난 여기서 꽤 오래 엄마의 아침밥을 먹었어.
마치 떠날 걸 미리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랬어.
엄마가 커피 참 좋아했었는데…
내가 만든 커피 마셔보고 싶을까?
아니면 예전처럼 다방 싫다고 하려나.
뭐,
마로도 있고, 너도 있고, 정말 잘해줘서.
그래서 막 힘들진 않은데.
다방의 불을 끄고,
이렇게 방에 누워있다 보면
왜인지 결국 또 혼자라는 생각이 들어.
떠나려고들, 그렇게 잘해준 거였어?
보고 싶은데 오늘도 전화를 못할 거 같아.
나도 이런 내가 원망스러워.
너가 전화해서 물어볼래?
아니네. 넌 전화 못 걸지…
봉팔이나 너나 어찌 그래?
그리고
8년 만에 전화한 건 나잖아.
이번엔 좀 기다려봐도 되는 거 아냐?
몰라.
돌아와 봉팔.
그러면 이번엔 나도…
좀 더 용기 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