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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Oct 19. 2018

우리 동네에는 노랑머리 앤이!

요사이는 유심히 보지 않아 아직도 그녀가 우리 동네에 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너무 놀라서 가던 길을 멈추었다. 남들과 많이 다른 그녀의 용모 때문이다. 숱도 많은 그녀의 머리카락은 노란색으로 물들어 있었고 미용실에서 일한다는 그녀는 항상 앞치마를 입었는데 하얀 레이스가 주렁주렁 달린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복장이었다. 짙은 화장으로  떡칠을 한 그녀는  아무리 적게 보아도 40은 넘은 듯했다.


그녀가 이상해 보인다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용기가 부러웠다. 사진 출사 시 튀는 모자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하는 나와는 너무 대조적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때 기율 부였기에 교문 앞에서 가위를 들고 머리 긴 학생들의 머리를 댕강댕강 잘랐고, 첫 직장이 은행이었기에 대부분의 옷은 정장이다. 그때 만들어진 나의 이미지는 수십 년째 이어지고 있다.

 

빵집을 할 때쯤 나도 치렁치렁한 옷이 입고 싶었다. 그러나 작업복을 입어야 했고 거의 24시간 빵집에서 있어야 했기에 옷을 입고 나갈 곳도 없었다. 쇼윈도 밖의 예쁜 아줌마들을 보면 '내가 왜 빵집을 시작했지?' 하며 나 자신을 탓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멋진 칵테일 바였다. 야사시한 옷을 입고 획기적인 헤어스타일을 한 멋진 사장님. 그러나 칵테일바는 엎어뜨리고 메쳐도 술집이었기에 딸 둘을 가진 나는 얌전히 빵집 아줌마를 선택했다.


그렇게 굳어진 나의 스타일을 이제는 바꿀 수가 없다. 백화점 사진강좌를 들을 때 어떤 사진 강사는 우리를 보며  "도대체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아웃도어를 즐기는 거예요?"

물론 그는 외국에서 사진 공부를 하고 온 사람이다.

"멋지게 차려입고 다녀요. 사진작가처럼 보여야지요. 동네 아줌마가 자기들 찍으면 기분이 좋겠어요? "

그리고 거울을 보니 영락없이 바람 쏘이러 나온 아줌마다.


며칠 전 하늘공원에 사진 찍으러 갔던 날, 동호회 친구가 멋진 중절모를 쓰고 왔다. 모자 하나만으로도 느낌이 확 다르다. 부러운 마음에 보고 또 보고. 그래도 용기가 나지 않는다.


갑자기 노랑머리 소녀가 보고 싶다. 아직도 그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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