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끝을 잡고 놓지 않는 마음에 채찍질이라도 하듯 아침부터 내리는 비가 야속하기만 하다. 일단 차에 올라타고 고민하다 가까운 양평 용문산으로 정했다. 천 년이 넘었다는 은행나무의 은행잎이 벌써 다 떨어져 버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조바심까지 난다.
용문산 은행나무는 신라 경순왕의 세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꽂아둔 것이 나무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 나무가 신령스러운 나무로 숭배되고 있는 이유는 나라의 큰일이 있을 때마다 신비로운 소리를 내어 그 변고를 알리기 때문이다. 수많은 전쟁과 화마를 거쳐왔을 텐데 위풍당당한 모습에 노랗게 단풍이 든 모습은 장관을 이룬다.
비가 내리고 있어 더욱 운치가 있는 계곡길을 한 발 한 발 천천히 걸어간다. 이미 나무에서 떨어졌건만 빗물에 의지한 채 나뭇가지에 매달린 이파리들이 아름답다. 생채기 난 모습 그대로 힘껏 팔 벌린 채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애처롭기 그지없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올라간 은행나무 앞에서 아름답다는 말보다는 그 웅장함에 할 말을 잃는다. 카메라 앵글에 들어오지 않아 뒷걸음을 얼마나 쳤는지.
막걸리 한 잔에 취한 것인지 용문산의 가을 모습에 취한 것인지 가슴이 따뜻하고 마음이 노골노골 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