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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an 12. 2019

터키 여행을 마치며

짧은 기간 큰 나라를 비행기로 버스로 달리며 유적지 만을 돌아본 아쉬운 터키 여행에서 기나긴 인류와 유럽의 역사 속으로 빠져 들었다. 둥근 돔 형태의 모스크와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인들과 유럽이라기보다는 동양 분위기가 느껴지는 남자들에게 도리어  친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같은 아시아 사람이라는 동질감이 들었을까?


터키는 본인들의 조상을 튀르크 유목민이라 생각하여 튀르크 족이 처음 국가를 세운 522년을 터키 건국의 해로 삼고, 유목민의 기상을 상징하기 위하여 톱카프 궁전, 그랜드 바자르, 모스크 같은 주요 건물의 지붕을 이동식 천막인 '게르'의 돔 형태로  만들었다 한다.



튀르크족이 중앙아시아에서 살 때 중국은 튀르크족을  '흉노'와 '돌궐'이라 부르며 무자비하게 공격을 가하였다.  탱그리로 불리던 하늘 신을 믿고 있던 튀르크족에게 압바스 왕국은 관용정책을 펼치며 이슬람교로 개종을 하면 면세 혜택도 주고 관리로까지 기용도 해주었다. 이때 중국이 포용정책을 폈더라면 터키는 불교나 도교의 나라가 되지는 않았을까?


이스탄불이 귀에 익숙하여 터키의 수도인 줄 알았으나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다. 아타튀르크는 인구 3만 명의 먼지만 날리는 고원지대의 조그만 촌락에 수도를 정했다. 무능한 술탄 정부에 대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아타튀르크는 오스만 제국의 잔상이 남아 있는 이스탄불은 여전히 위험한 지역으로 여겼고, 해발 고도 848미터 고원 지역의 앙카라는 외부 공격 방어하기 좋은 곳으로 생각했다 한다.



앙카라는 역사적 유적이 없기 때문에 외국 여행자들이 거의 들르지 않는 도시다. 생각보다 작은 도시는 조금만 나가도 외곽인 데다 산을 빼곡히 채운 달동네 판자촌이 눈에 띄는데 '게제톤두(밤에 지은 집)'라 한다. 게제톤두는 시골 출신들이 꿈을 찾아 무작정 상경하여 산등성이 빈 공간에 집을 짓고 사는 곳이다. 구휼과 선행을 중시하는 이슬람의 정서에 따라 사람의 잠자리를 파괴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라 하여 묵인되고 있다 한다.


이슬람은 여러 가지 금기 사항이 있다. 여성의 속옷을 쇼윈도에 진열한다거나, 여성이 물담배를 피우거나, 여성은 남성이 운전하는 오토바이를 타서는 절대로 안 된다. 거리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히잡은 다양했다. 눈만 내놓은 사람, 얼굴을 내놓은 사람, 히잡을 쓰지 않은 사람...  혼잡한 길거리에서 남자와 부딪치기라도 하면 이내 번쩍 두 손을 든다 하니 종교적으로 여성에게 금기시하는 것이 많은가 보다.


먹거리에서도  돼지고기를 피하고 이슬람 율법에 따라 도축한 닭고기와 소고기를 가공한 제품 즉 할랄 제품만을 고집한다. 비상식량으로 가져 간 컵라면은 식당에서 먹을 수가 없어 도둑고양이처럼 객실 안에서 몰래 먹고 환기해야만 했다. 


터키인들은 잿더미에서 이룩한 우리 경제의 기적을 부러워하며  '칸 카르데쉬(피로 맺어진 형제)'란 말을 한국 사람들에게만 한다고 한다. 실크로드의 동쪽과 서쪽 끝에 있는 두 나라의 조상들을 찾아가다 보면 정말 피가 섞인 것은 아닐는지.

독특한 자연환경과 방치(?)된 고대 유적지 만으로도 관광 수입을 올리고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동서양 문화가 혼합된 희한한 거리 풍경과 멋진 풍광은 한동안 나의 기억 속을 맴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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