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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an 21. 2019

우리가 캐나다로 간 것은?

"엄마 나 수석 졸업이야!"

키 큰 둘째 딸이 머리가  아파트 천장에  부딪칠 듯 뛰어오며 외친다. 얼마나 대견하고 예쁜지...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 삼매경에 빠져 있던 10여 년 전 어느 날,

"엄마 나 수학 28점 맞았어!" 하며 천진난만하게 달려오던 초등학교 2학년 딸은 그 당시 영어 알파벳도 몰랐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갑자기 아이의 교육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였다. 수학은 개인 지도로 어떻게 해결이 되었으나 영어 학원은 유치원생들과 같이 수업을 해야 했다.


과외와 학원으로 열심히 돌려보았으나 좀처럼 따라잡기 어려워 답답해하던 어느 날 내가 내린 결론은 캐나다행이었다. 마침 같이 퇴직한 은행 동료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서 영어 연수 간 아이들을 캐어해 준다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어린 딸을 에미도 없이 캐나다 가정으로 보내기로 했다. 같은 반 친구들도 여러 명이 어학연수를 준비하고 있었기에 딸은 흔쾌히 동의를 하였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떠나기로 한 날 공항에 도착한 딸은 갑자기 거대한 공항 분위기에 짓눌려

"엄마 나 안 갈래!"

우리 부부는 다급한 마음에 슈퍼와 햄버거 가게를 돌며 아이의 혼을 홀딱 빼앗은 후 공항 입구로 밀어 넣었다. 처음 두 달은 전화를 해서 무엇을 물어도 아이가 대답도 하지  않아 나를 애타게 했다. 아마도 엄마 목소리를 듣고는 서러워 울었던 것 같다.  생면부지의 땅에서 말도 못 알아 들었을 터이니...


그렇게 1년을 지내고 그곳 생활에 익숙해져 오지 않겠다고 하는 딸을 중학교에 들어가면 또 학과를 따라잡기가 어렵기에 억지로 귀국을 시다.  그러나 딸이 돌아왔을 때 그 누구도 무서워하지 않는 6학년 친구들 덕분에  또다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캐나다에 다녀와서 영어 성적이 1등급으로 향상되지도, 원하던 대학에 도 못했다.  아빠가 정년퇴직을 앞두었기에 재수를 못하게 하자 딸은  다시 학교 이름을 바꾸기 위하여 방과 후에 영어 학원을 다니며 힘들게 편입 준비를 해야 했다. 힘들었을 터인데 대학 1, 2학년 때 과수석을 놓치지 않더니 편입한 대학에서도 수석으로 졸하게 된 것이다. 수석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목표를 세우고 자신 있게 돌진하는 모습으로 커준 딸이 정말로 대견하다.


소심하고 신경질적이고 왜소했던 딸이  1년 만에 개방적이고 진취적이고 자립심이 강한 아이로 변했다. 그 무엇으로도 얻을 수 없는 귀한 것을 얻어와 딸은 인생에 있어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그 딸이 귀국할 때쯤 우리 가족은 모두 캐나다로 갔다. 한 시간도 빵가게를 떠나지 못했던 내가 모든 것을 내팽개치 비행기를 탔다. 한시라도 빨리 딸이 보고 싶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눈을 부릅뜨고 열심찾았으나 딸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새까만 인디언 소녀가 '엄마~'하며 달려오는 것이 아닌가! 1년 동안 손질하지 않은 머리는 기를 대로 길었고 아주 촌스런 옷을 입고 있었다. 옷을 갈아 입히는 내내

"이거 칠리왁에서 유행해서 내가 산 옷인데 왜?"


그렇게 우리 네 가족의 첫 해외여행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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