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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Aug 12. 2020

효자의 아내로 산다는 것은

"아 글쎄, 지난 추석 때 차례 준비 다 해놓고 친척들 기다리고 있는데 이이가 갑자기 등산복 차림으로 집을 나가는 거예요. 어떡해요 애들과 함께 남편 바짓 자락 붙잡고 싹싹 빌었죠." 

사연인 즉, 연이은 제사와 추석 차례를 좀 간소화하면 어떻겠냐는 말을 꺼냈다가 효심이 가득한 장남이 한 행동이다.


세상은 정말로 급하게 변하고 있으나 어려서부터 부모님 공양과 조상님 제사에 대하여 철두철미하게 교육을 받아 온 이 시대의 아들 특히 장남들의 생각은 쉽게 변하질 않는다. 그러나 가사노동에 시달려야만 하는 아내들은 조금씩 신세대들의 주장에 젖어 불만을 표하고 꾀(?)를 부려보는 것이다. 


하긴 나는 일 년에 대여섯 번의 제사를 지낸 적도 없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보지도 않았기에 그저 힘들었겠지라는 생각뿐이다. 가난한 장남에게 시집와서 시동생 시누이들 다 여윈 이야기부터 시부모님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한 이야기까지... 한 번 시작된 그녀의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동안 그녀의 남편은 그저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만 수그리고 있다. 오죽 답답하면 남편 친구 부부동반 모임에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30 년 넘도록 시어머니 모시고 사느라 모임 때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여자는 얼마 전 시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렸다. 이제는 심신이 많이 편안해졌을까?


요즘 우리 세대들에게 가장 큰 고민이 되어버린 부모님. 생각지도 않다가 어느 날 치매에 걸려 자식들을 괴롭히고, 자식들 뒷바라지하느라 아픈 몸 덩이 밖에 남지 않은 부모님은 어느새 금쪽같은 자식에게 무거운 짐이 되어 버렸다. 나 몰라라 하고 방치하는 몰상식한 자식 때문에 사회문제가 되는 일도 있지만 부모에 대한 책임감으로  아내에게 그 부담을 지게 하는 남자들도 있다. 


한 지인은 고부간의 갈등이 깊어져 아내가 죽어도 시어머니를 못 모시겠다 하여 지방에 몸이 불편하신 어머님 을 사회 복지사에게 맡기고는 걱정이 되어 늘 CCTV를 보며 어머니의 동태를 살피다가 주말에는 혼자 내려가 부모님을 살피곤 한다.


나라도 시댁에 내려가 부모님 모시고 살라고 하면 솔직히 자신이 없다. 30 년 이상 내 일하며 자유롭게 살다가 외출 한 번 하려 해도 눈치 보며 산다는 게 쉽지는 않을게다. 어쩌다 시댁에 가보면 자기주장에 목소리만 커져버린 두 분의 모습과 온 집안에 늘어진 살림살이가 꽤나 낯설다. 하긴 90을 넘긴 두 분이 자식들 도움 안 받으며 살아가시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기는 하나 늘 마음 한편이 편하지만은 않다. 종일 같은 공간에서 산다는 건 자신이 없지만 같은 아파트 다른 집에 살며 먹거리라도 도와 드렸으면 좋겠는데 두 분은 고향 그 집을 떠날 생각이 전혀 없으시다.


어느 며느리나 부모님 모시기를 꺼려하는 요즘 세대에 부모님 모시고 제사상 열심히 차리는 아내라면 그저 항상 고마운 마음으로 토닥여주며 "울 마누라 최고! 고맙다. 수고했어"라는 일이라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작은 말 한마디에 그 아내는 조금이라도 덜 힘들 것이다. 표현도 못하는 우직하기만 한 낀세대의 남편들이란!


그녀들의 두 손 잡고  내가 위로할 수 있는 말이란,

 "두고 봐요. 분명 아이들이 복 받을 거예요!" 

그렇다. 그녀들의 아들 딸들은 이미 복이란 복은 죄다 받고 있어 그동안 나는 부럽고 질투 어린 눈길을 보내곤 했다. 그 옆에 그녀들의 남편이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죄인처럼 앉아 있다. 그들의 아내 사랑이 부족해서 고생하는 와이프를 몰라라 했을까? 그저 '장남'이라는 책임감 속에 묵묵히 살아왔으리라. 아내와 부모 사이에서 마음고생은 또 얼마나 했을까?  고개 숙인 낀세대들의 장남에게 비록 핀잔을 주었지만 그저 '힘내!' 하며 어깨 한 번 두드려 주고 싶었다. 


요즘 가끔 유튜브에서 황 신부님의 연설을 듣는데, 신부님을 찾는 사람이 주로 나이 든 여자들이기 때문이어서 인지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방법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있는 것 없는 것 다 자식에게 퍼주고 별다른 노후대책 없이 딸랑 집 한 채만 남아있는 베이비부머 세대들은 자식에게 얹혀산다는 건 생각도 못한다. 작으나마 연금 받고 주택 모기지론에 의지하며 살다가 몸 아프면 내 발로 요양원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60 세에 퇴직하여 100 세 넘게 산다는 게 축복만은 아닌 것 같다.


이 시대 효자 효부들이여! 그대들이 지은 복은 고스란히 그대들에게 돌아갈 겁니다.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고 지내보자고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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