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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03. 2019

1982년생 지영이를 보며

"동서는 조선시대를 살고 있는 거야?"

"조선시대??..."

그래 맞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은 딸뿐만 아니라 같은 세대를 살아온 동서와도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 때가 있다.


요즘 핫한 영화 '1982년생 김지영'을 보았다. 일을 하는 엄마로 또 며느리로 치열하게 살아왔던 나의 이야기겠거니 했으나  결혼으로 인하여 경력이 단절된 채 육아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지영이와 지영이 엄마의 이야기다. 나는 지영이 엄마처럼 오빠들을 위하여 공장까지 다니지도 않았고, 운 좋게 좋은 직장에 입사하여 아이를 낳고도 20년 이상 근무할 수 있었으며 주위 남자 직원들에게 성적 비하 발언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들 아들 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아들 아들 하는 집으로 시집가서 삼십 년 넘도록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불꽃처럼 살았다.



그래서인지 영화 초반까지는 그다지 공감이 가지 않았으나 어느 순간부터 나는 훌쩍이고 있었다. 순간순간의 영화 장면 속에 나의 지난날들이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열 달 내내 입덧을 하고  만삭에 야근까지 하는 며느리에게

"요즘 애들은 유난스러워. 나는 아이 낳고는 바로 밭일하러 나갔다" 라는 말을 들어야했고

불덩이인 아이를 보고도 무작정 회사로 출근하는 몰인정한 엄마였던 나는 그저 참고 이겨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명절날 시누이들이 올 때까지 2박 3일을 머물러야 했을 때 나도 말했다.

"저도 친정에..."

"맨날 친정 엄마랑 살면서 뭘 그렇게 빨리 가려하니"

그렇게 우리 아이들을 키우기 위하여 강제 소환된 친정엄마는 명절날에는 혼자 계셔야만 했다.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요즘 결혼한 큰딸 친구들은 명절날조차도 시댁에 가기 싫어 이런저런 핑계를 댄다고 한다.

"명절날 며느리가 시댁에도 안 간다고?"

시대가 변해도 정말 많이 변했다. 물론  요즘은 우리도 명절을 지내고는 부리나케 집으로 오기는 한다.

나에게 아들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시어머니를 원망하면서 나 또한 이상한 시어머니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정년까지 '무조건 go'를 외치던 나의 신념을 무너뜨린 것은  

"얼마 있으면 우리가 승진해서 그 위에 앉을 거예요"라는 말 한마디였다. 그는 내가 신입사원 교육을 시킨 남자 직원이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참아낼 수가 없었다. 기고만장한 남자들의 생각과 그에 맞장구 쳐주는 사회 현실에 나는 안락한 직장을 버리고 꿈에 그리던 빵가게를 시작하여 엄청나게 몸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또 다른 행복감과 성취감에 빠질 수 있었다.


그런데 영화 속의 지영이는 너무 유약했다. 좀 더 다부지게 마음먹고 살았어야지 산후우울증이라니. 아이를 들쳐 메고라도 밖으로 나가 아름다운 경치도 보고 음악도 들으며 몸과 마음이 다운되지 않게 조절했어야지...


요즘은 여자들의 세상이라고 한숨짓는 남자들을 본다. 여자인 내가 봐도 여자들의 세상인 듯하다. 대낮에 음식점에 가도 커피숍에 가도 여자들밖에 없다. 여자들이 그 옛날보다 살기 편해진 것은 사실이나 아직도 남자와 동등하게 일하기에는 많은 편견은 남아있고 여자이기에 육아와 살림과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모든 일에서 은퇴하고 그저 여행이나 다니며 사는 내가 가끔 깊은 수렁에 빠지려 한다. 사회적 지위가 박탈되고 누구누구의 아내로 또 아이들의 엄마로만 살아가는 것이 꽤나 힘이 들기 때문이다. 사진이나 찍으러 다니는 팔자 편한 여자라고 비웃는 사람도 있을게다. 그러나 평생 일만 하며 살아온 습성은 이 편안함이 익숙하지가 않다.

텅 빈 집안에서 무기력해 지려하면 나는 무조건 문을 박차고 나간다. 살아있음에 또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걸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외쳐본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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