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900 미터도 되지 않는 순천 조계산에는 승보사찰로 손꼽히는 송광사와 선암사가 있다. 선암사는 올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천년 고찰로 결혼한 승려들인 대처승들의 태고종 본산이다. 선암사는 매화를 시작으로 목련 벚꽃 작약 등으로 꽃동산이 되는 봄이 가장 아름답다. 화려했던 꽃도 오색찬란한 단풍잎도 다 떨어져 버린 산사의 분위기는 날씨 때문인지 을씨년스럽다.
순천시에서는 선암사에서 송광사까지 이어진 조계산 숲길을 '천년불심 길'이라 한다. 예전에는 울창한 숲이 기나긴 굴을 이룬다 하여 '굴목재길'이라 했던 곳으로 완만하고 걷기 좋은 숲길은 본인의 체력에 맞게 코스를 정해서 걷는 것이 좋다. 특히 중간에 있는 보리밥집에서 한 끼를 해결하고 가면 좋다 한다. 산행 중에 먹는 음식이 무엇인들 맛이 없을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내가 선암사를 찾은 가장 주된 이유는 바로 승선교 때문이다. 선암천 계곡 위에 들어선 아름다운 아치형 돌다리 너머 보이는 2층 누각 강선루의 모습은 숨을 멎게 할 정도다. 돌다리를 맞물려 쌓기도 어려웠을 텐데 딱 중앙에 1층도 아닌 2층 누각이 멋지게 서있는 모습이라니!
긴 알 모양의 연못 안에 섬이 있는 독특한 삼인당은 불교에서의 삼법인(제행무상 제법무아 열반적정)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것은 변하여 머무르는 것이 없고 나라고 할 만한 것도 없으므로 이를 알면 열반에 들어간다'라는 불교사상을 나타낸 것이다.
흰색 붉은색으로 치장했던 매화는 내년 봄 꽃을 피우기 위해 긴 동면에 들어갔나 보다. 잠시 눈을 감고 지난봄 화려하게 만발했던 꽃을 상상해본다.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 없는가 보다. 승선교를 담을 때의 환희감은 어느새 사라지고 어서 봄이 와서 꽃이 만발한 선암사의 모습이 보고 싶고, 가을 단풍으로 더욱 화려해질 승선교도 다시 담아보고 싶다. 아니 천년불심 길도 걸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