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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an 12. 2020

동백꽃 즈려밟고 걷는 금오도 비렁길

 '나는 당신만을 사랑합니다'는 동백꽃의 꽃말이다. 동백꽃의 새빨간 꽃잎 안으로 노란 암술과 수술이 수줍게 서있는 모습을 보면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촌므파탈의 순경 용식이의 환한 얼굴이 떠오른다. 봄도 아니고 가을도 아닌 한겨울에 피어나는 동백꽃이 보고 싶어 찾은 곳은 여수 돌산항에서 배를 타고 30분 정도 가야 하는 금오도다.


지형이 금자라를 닮아 금오도라 불리는 섬 서쪽 해안을 따라 18.5 킬로미터(8시간 30분 소요)나 조성된 길은 바다 쪽이 가파른 낭떠러지로 되어있어 비렁길(비렁은 벼랑의 사투리)이라 한다.  섬주민들이 땔감을 구하고 낚시를 하러 다니던 길의 아름다운 풍광이 입소문이 나며 걷기 열풍과 함께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비렁길은 미역널방 등의 비경이 있는 1코스부터 안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5코스까지 다섯 개로 나뉘어 있다. 



일정상 모든 코스를 걷는 것은 무리라 동백꽃 터널과 함께 굽이굽이 멋진 벼랑과 비렁다리까지 볼 수 있는 비렁길 3코스를 걷기로 했다. 아침부터 오락가락하던 빗줄기가 좀처럼 그치지 않아 비가 멎기를 기다리며 먼저 찾아간 곳은 안도 대교 넘어 기러기를 닮은 섬 안도다. 



동쪽의 곶이라는 동고지 마을은 야트막한 산 아래 둥글게 형성된 자연호(두멍 안)가 있어 더욱 아늑하고 아기자기하다. 마치 엄마품에 안겨 잠이 든 아가처럼 여러 척의 작은 배들이 정착해 있다. 십여 가구나 될까 싶은 동고지 마을의 집 앞에는  '착한 아저씨 돌담집' '배를 닮은 큰 집'과 같은 흥미로운 문패들이 붙어있다. 한적한 아침 시간이라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왠지 마음이 따뜻해진다.


동고지 마을의 두멍 안은 태풍이 올 때는 인근 섬에서도 이곳으로 피항을 한다 한다



천혜의 낚시터로 알려져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서고지 마을은 동고지 마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건너편 대부도와 연결하는 다리를 공사 중이어서인지 항구의 분위기가 약간은 어수선하다. 2,3 년 정도 후에는 대부도까지 걸어서 갈 수 있겠다.




직포에서 시작된 3코스는 시작부터 만만치가 않다. 숨이 가빠질 무렵부터 보이기 시작한 동백나무 숲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는 내내 계속 이어진다. 동백꽃이 아직 많이 피지는 않았지만 어느새 길가에는 떨어져 버린 꽃봉오리가 자주 발에 밟힌다.  그중 싱싱한 꽃을 살며시 길 옆으로 밀어주다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에서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라는 시구가 떠오르자 떨어진 꽃들이 더욱 애잔해 보인다.




날씨가 흐려서인지 빽빽하게 심어진 동백나무 때문인지 대낮에도 동백나무숲은 어두컴컴하다.  얼마나 갔을까?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후련해지며 눈이 즐겁다. 바다와 맞닿은 섬 대부분이 가파른 언덕으로 되어 있어 어떤 곳을 지날 때는 현기증까지 나지만 해안단구의 색다른 절경을 맛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토종 고래 상괭이를 볼 수 있다는 갈바람 통 전망대에서 잠시 숨을 돌린다.  90 미터밖에 안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깊은 두 절벽 사이를 내려다보면 아찔하다. 열심히 걸어오느라 파도소리 한 번 못 들었는데 암벽에 부딪치며 나는 물소리와 함께 회오리쳐 올라오는 바람이 강하다. 이 바람이 갈바람인가?





처음 비렁길이란 이름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맴돌던 '빌어먹을' 이란 말은 비렁이 벼랑이라고 설명을 들었건만 매봉 전망대까지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하며 다시금 떠오른다. 3코스는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낙낙하게 걷는 오솔길은 아니다.



드디어 매봉 전망대에 도착.  옹기종기 붙어있는 작은 섬들이 금오열도다. 금오열도 중 가장 큰 섬인 금오도는 고종 21년까지 왕실의 궁궐을 짓거나 보수할 때 쓰일 소나무를 기르느라 민간인의 입주를 금지하였던 봉산이었으나 태풍으로 소나무들이 쓰러져 그 기능을 잃고 난 후부터 민간인이 살기 시작했다 한다.




비렁길 3코스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출렁다리는 협곡에 걸쳐놓은 다리로 길이 42.6 미터나 된다. 또 한 번 아찔한 벼랑을 다리 위 그것도 투명 유리 위에서 즐길 수 있다.



비렁다리를 넘어서 학동으로 내려오는 길은 내리막길이어서인지 한참을 올랐던 기억과 달리 금세 마을로 내려오게 된다. 겨울임에도 밭에 푸르게 자라고 있는 것이 방풍나물이다. 해변 모래밭에 자생한다는 방풍나물은 이곳 사람들의 생업이 되어 전국 생산량의 80%나 차지한다고 한다.  푸른 그물로 덮어 놓은 것이 의심쩍어 물어보았더니 우리가 걸어온 그 산에 노루와 멧돼지가 많이 살고 있어 보호하기 위해서란다. 이곳에도 멧돼지가!



산에는 동백꽃이 덜 피었으나  길가에는 만개했다.

동백꽃이 겨울부터 피기 시작하기는 하나 아직은 좀 이른 듯하다. 다음 달쯤이면 좀 더 화사한 꽃길을 걸을 수 있겠다. 화사한 봄날 여유 있게 일정을 잡아 미역널방 앞 비경이 일품이라는 1코스부터 5코스까지 천천히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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