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미의 세상 Jun 11. 2020

섬티아고라 불리는 12 사도 순례길

언제부터인가 불기 시작한 걷기 열풍은 나 같은 보행약자마저 움직이게 한다. 그동안 무심코 스쳐 지나던 길가의 풀 한 포기 바람 소리조차  요즘 내가 걷고 싶은 이유가 되고 있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거나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그저 무작정 걷다 보면 해맑게 울어재끼는 새소리에도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만으로도 힐링이 되곤 한다.


몇 년 전 TV 프로그램에서 12 사도 순례길을 걸으며 예배당을 짓고 있는 작가들을 취재하는 방송을 보았다. 소박한 섬 풍경과 함께 다양한 예배당이 나오는 것을 보고는 교인도 아닌 나는 순례자의 섬을 나의 버킷리스트로 올려놓았었으나 이제야 방문하게 되었다.

 

순례길 지도


만조 때는 4개의 섬이었다가 물이 빠지면 노둣길로 하나가 되는 진섬 소악도 소기점도 대기점도. 한국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순교자였던 문준경 전도사의 발자취를 따라 12 킬로미터의 탐방로에 12 사도의 이름을 딴 예배당을 만들고 순례자의 섬이라 했다. 문 전도사의 열정 때문 인지 섬주민들의 80 퍼센트가 개신교 신자라 한다. 한적한 순례길을 걸으며 기도하고 생각에 빠져보다가 독특한 예배당을 만나면 건축 미술도 음미해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생각하며 이곳을 섬티아고라고도 한다.


숙소 가까이 있는 베드로의 집은 멋진 일출이 기대되는 곳이다. 전날  요즘 기온이 갑자기 올라 새벽에는 해무가 많이 낄 것이라는 말도 무시한 채 무작장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안개 낀 섬의 모습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성급한 우리는 대기점도 선착장에 거의 다 가도록 오로지 가까운 갯벌만 볼 수 있었다.


베드로의 집 가는 길


물 빠진 갯벌은 칠게 농게 짱뚱어들의 세상



하얀 벽과 둥글고 푸른 지붕을 한 베드로의 집은 그리스 산토리니의 집들을 연상시켰다. 순례길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종 옆의 멋진 건물은 의외로 화장실이다.


건강의 집 베드로


내부와 천장


대기점도 선착장과 소악도 선착장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있으므로 자전거 하이킹도 가능하다. 순례길의 시점과 종점에서는 종을 한 번 쳐주는 센스!


병풍도와 대기점도를 이어주는 노두길이 내려다 보이는 마을 입구에 두 개의 높고 둥근 지붕을 한 예배당이 생각하는 안드레아의 집이다. 지붕 위의 두 마리의 고양이와 집 앞에 도도하게 앉아 있는 고양이는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 집 안드레아


내부와 천정



대기점도에 있는 또 하나의 예배당은 농로를 따라 잠시 오른 후 언덕배기에서 만난다. 숲 속에 있는 작은 예배당은 심플하고 소박하다.


그리움의 집 야고보


천장이 붉게 비치는 것은 예배당 건물 뒷쪽이 붉은 색이기 때문


야교보의 집 앞 전경


무심한 듯 평범하게 밭 옆에 하얀 등대처럼 서있는 요한의 집은 예배당 앞쪽으로 펼쳐진 화려한 계단과 염소 조각이 있어 눈길을 끈다. 기도대 옆 길게 만들어진 창 밖의 풍경과 대조를 이루는 화려한 타일이 잘 어우러진다.


생명평화의 집 요한


내부와 천장


모두가 잠들어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양식장에도 밭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손들이 있었다. 왠지 미안한 생각에 얼른 카메라를 감춰버린다. 그들은 이 섬을 찾아온 우리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는 듯하다.


새우 양식장에서 사료를 주는 모습


농부는 이른 아침부터 바쁘다.


아침 이슬은 꽃뿐만 아니라 거미줄조차 아름답게 한다.

인동초와 거미줄


파 밭 위로 보이는 실제의 교회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로 가는 노둣길 입구에 있는 행복의 필립의 집은 프랑스 남부의 전형적인 건축형태를 띠고 있는 데다 빨간 나무를 덧댄 지붕의 모습은 마치 물고기를 형상화한 듯하다. 빨간 벽돌 속 아취 문을 열면 만화 속 주인공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지만 작은 예배당 내부의 투명 유리로 된 강렬한 십자가에 압도당하고 만다.


행복의 집 필립


필립의 집 내부


호수 위의 조형물로 알고 지나쳤던 감사의 바르톨 로메오의 집이다. 호수 위에 덩그러니 떠있는 모습이 호루라기 같기도 하고...


감사의 집 바르톨 로메오


각자 정해진 위치에 예배당을 설계하며 쉬었던 작가들의 작업실


전혀 예배당 같지 않은 순백의 건물에 파란 대문 집은 인연의 토마스 집이다. 밭두렁을 배경으로 눈에 띄는 토마스 집은 밭으로 내려간 뒤에야 보이는 십자가에 예배당이었음을 상기한다.


인연의 집 토마스


토마스집의 후면에 있는 십자가로 예배당임을 알 수 있다.


가끔은 바다를 바라보며 명상을 시간을 가져본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연결하는 노두길 중간에 있는 기쁨의 마테오 집 지붕은 신안의 유명한 산물인 양파를 상징했다는데 마치 이슬람 궁전 같다. 계단과 지붕의 황금빛은 백색 건물로 인해  눈에 띄고 그 하얀 예배당은 칠흑 같은 갯벌 위에 있어 더욱 위엄이 있어 보인다.


기쁨의 집 마테오


내부와 천장


섬과 섬 사이를 오고 가기 위하여 갯벌에 돌을 던져 만든 노둣길은 현재 도로포장까지 하였으나 물이 들어오면 어쩔 수 없이 길이 사라지게 된다.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는 뱃시간과 물때를 잘 맞추지 않으면 만조 전후 두 시간 정도 섬에 갇힐 수도 있다.  그리고 아직은 식당이나 슈퍼 등의 편의 시설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물이나 간식을 꼭 챙겨가야 한다.


넓고 청정한 갯벌을 유네스코 자연유산에 등재하기 위하여  준비중이라 한다.


농게의 집게다리가 유난히 커 보인다.


예배당 정면 위에도 문짝에도 물고기가 헤엄쳐 다니는 듯한 소원의 작은 야고보 집이다. 스탠드 글라스를 통해 내려오는 빛으로 예배당 내부는 신성해 보인다.


소원의 집 작은 야고보


내부와 천장


뾰족 지붕 아래 작고 파란 창문들이 있어 마치 여러 채의 집이 붙어 있는 듯한 집이 칭찬의 유다 다대오의 집이다. 내부와 문 앞의 화분들로 정감이 가는 이웃집 같다.


유다 다대오의 집


푸른 창과 대비 대는 문


민가가 그다지 눈에 많이 띄지도 않았지만 폐가가 유난히 많다.


소나무 너머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빨간 창을 포인트로 지어진 백색 건물이 사랑의 시몬의 집이다. 건물 위쪽의 웃고 있는 하트와 아취형 문이 잘 어울린다. 뻥 뚫어진 문 사이에 서서 인증 숏을 찍어보면 작품이 될 듯하다.


사랑의 집 시몬


예배당마다 있는 작은 창을 통해 섬을 바라보는 재미도 있다.


소악도에서 산길과 바닷길을 잠시 걷다 보면 붉은 벽돌에 뾰족한 첨탑이 있는 지혜의 가롯 유다의 집이 있다. 예수님을 팔았던 제자이기에 홀로 이 섬에 있는 걸까?


가롯 유다의 집 가는 길


가롯 유다의 집과 순례길의 시작과 종점에 있는 종


아취형의 문을 통해 바라보는 바다 풍경 또한 일품이다.


물이 들면  딴섬이 되어 버리는 가롯 유다의 집


노둣길로 연결된 네 개의 섬에서 진득한 갯벌 사이로 보이는 소박한 어촌마을의 풍경은 열두 개의 예배당이 있는 순례길이 없었다면 일부러 찾아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12 사도 순례길이라는 콘셉트와 함께 걸었던 12 킬로미터의 여정이 쉽지는 않았다.  순례길을 걷는 도중 쉬어갈 수 있는 찻집이나 맛집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지만 완주했다는 뿌듯함과 독특한 기억을 가지고 돌아간다.

 

소악도 선착장


매거진의 이전글 천사 대교 너머에는 어떤 섬들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