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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Nov 03. 2020

오대산 선재길에서 만난 가을

강원도 산간지역부터 시작된 단풍은 이제는 서울 도심과 저 아래 남쪽 지방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다.  많이 늦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조바심으로 찾은 오대산 월정사는 아직도 화려한 단풍 쇼가 끝나지 않았다.  오대산 자락에 자리 잡은 월정사와 그의 말사인 상원사는 늘 자동차로 이동하며 찾았지만 오늘은 그 유명한 선재길을 조금이나마 걸어보련다.



푸르고 장엄하던 전나무 숲은 나무 사이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내민 알록달록한 단풍들 덕분에 축제라도 열린 듯 화려하게 변신했다.  흙 위에서 바스락거리며 부서지는 소리가 좋아 일부러 낙엽을 따라 걸으며 잠시 생각을 멈춰본다.

"걷기 명상은 지금 내가 걷고 있음을 알아차리면 된다"라는 팻말이 스치고 갔기 때문이다.



고려말 무학 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가 부처에게 공양을 올릴 때 소나무에 쌓였던 눈이 그릇으로 떨어져 화가 난  산신령이 공양을 망친 소나무를 꾸짖고는 전나무 9 그루에게 절을 지키게 했고 그 후로도 천년이 넘게 월정사를 지키고 있어 천년의 숲이라 부르는 전나무 숲길. 평균 수령이 80년이 넘는 전나무가 천칠백여 그루나 모여 있는 월정사의 전나무 숲길은 부안 내소사와 남양주 광릉 수목원과 함께 3대 전나무 숲길로 뽑히고 있다.



절정을 맞이하여 화려하게 변한 단풍에 둘러싸인 절 밖의 풍경과 달리 월정사 내부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엄숙하다. 오대산 주변 봉우리가 연꽃무늬를 이루며 병풍처럼 둘러싸인 월정사의 한가운데에는 대웅전과 고려시대의 석탑 팔각 구층 석탑이 있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은 한적한 분위기에 풍겨오는 은은한 향과 청아한 독경 소리 때문이었을까?





문수보살의 뜻과 선지식을 찾아다니던 선재동자의 이름을 딴 선재길은 지금의 임도가 놓이기 전까지 스님과 불교 신자들이 다니던 길이다. 그다지 높낮이가 없는 완만한 숲길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계절 아름다운 오대산의 풍광을 보며 걸을 수 있다. 단 상원사까지 9 킬로미터나 되는 긴 여정이 부담이 되는 사람은 어디서든 바로 건너편에 있는 자동차 길로 건너가 트레킹을 멈추고 차로도 이동이 가능하다.



부드러운 아침 빛에 반짝이는 나뭇잎, 유난히 하얗고 넓은 너럭바위들 그리고 그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가 더없이 상쾌하다. 거추장스러운 마스크 안에는 어느새 물기가 가득하다. 냅다 던져버리고 맑은 공기 가슴 가득 들이마시고 싶었지만 주변 사람들을 위하여 앞으로 잔뜩 잡아당겨 바람만 들여보낼 뿐이다. 언제나 이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으려나...




선재길은 마치 계곡 트레킹이 목적인 것처럼  유난히 다리가 많다. 평범한 나무데크 다리부터 강원도 전통의 섶다리 그리고 출렁다리까지 만나게 된다.  다리를 건너가고 오는 동안  절대로 놓칠 수 없는 것이 수려한 오대천 계곡이다. 넙데데한 하얀 바위들, 흐름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고요한 계곡에는 오대산의 아름다움이 비치고 있다.



백담사 계곡에서 보았던 돌탑도 있다.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이곳에 한 땀 한 땀 돌을 쌓으며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었겠지? 신께 올리는 기도만 효험이 있으랴!  새벽에 목욕재계하고 뒷칸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가족의 평안을 빌었던 우리네 어머님의 정성 또한 하늘에 닿았을 게다.



모양도 다양한 다리가 종종 나타난다.


제주의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조릿대가 어느새 이 강원도까지 점령했다. 해설사의 말을 들은 뒤로는 마주할 때마다 심기가 몹시 불편했으나 오늘은 아침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하다. 길을 걷다가 힘들면 애써 마련해준 쉼터에서 계곡 물소리 들으며 잠시 쉬어가자. 뭐 그리 급할 게 있을까? 아름다운 풍경 눈에 담고 상쾌한 공기 듬뿍 들이키며 지인과 함께 담소를 나누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




어디쯤까지 갔을까? 그 후로는 쉽게 자동차에 몸을 싫고 상원사로 향했다.




오대산 자락을 넘나드는 흰구름에 쌓인 상원사에 오르는 가파른 계단을 끝으로 선재길 트레킹은 마무리된다. 적멸보궁인 상원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상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조금만 더 늦게 갔더라면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지 못했을게다. 언제 봐도 또 아무리 많이 보아도 질리지 않는 자연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사부작사부작 걸어 본 선재길을 다음에는 꼭 완주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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