콥트교, 칸 엔 칼릴리 시장, 올드 카이로, 이슬람 카이로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가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장시간 비행기를 타는 것이다. 그래도 오늘이 살아있는 날 중 가장 젊은 날이기에 택한 여행지는 이집트. 아프리카의 동북쪽에 있어 홍해와 지중해 그리고 모래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이집트는 대부분이 사막이라 여행하기 좋은 때가 바로 요즘과 같은 겨울이다.
그동안 이집트 하면 떠올랐던 것은 피라미드와 스핑크스 또는 티그리스 유프라테스강이나 인도 인더스 강, 중국 황하강과 함께 떠오르는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라는 것이다. 이스탄불까지의 기나긴 비행을 마치고 카이로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면서부터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북부 나일강 근처에 있는 카이로(아랍어로 승리자의 도시)는 아랍연맹을 포함한 여러 국제기구의 본부가 있는 대도시다. 그러나 공항을 나와 이집트 박물관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보는 시내 풍경은 과연 이곳이 '아프리카 최대의 도시'일까 싶을 정도로 참담했다.
마치 재개발을 앞둔 아파트처럼 곧 무너져 내릴 것만 같은 데다 뽀얀 먼지를 흠뻑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은 마치 괴기 영화의 촬영장과 같았다. 건물 위로 쇠파이프가 하늘 높이 뻗어 있는데 각층의 베란다에는 총천연색의 빨래들이 널려있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건물을 완성하면 세금을 왕창 내야 해서 건물 외부는 미완성으로 놔두고 집 내부만 화려하게 꾸미고 산단다.
계속해서 울려대는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에 때때로 들려오는 이슬람교도들의 기도송까지 통 정신이 없다. 뿌연 매연 속에 보이는 도로에는 신호등도 차선도 없다. 꾸역꾸역 다니는 차들 사이에는 마구잡이로 횡단하는 사람들과 오토바이 마차까지 완전히 혼돈 그 자체다.
반갑게도 현대차 기아차가 자주 눈에 띄었지만 도대체 언제 출고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차들은 범퍼 등 성한 곳이 한 곳도 없어 보인다. 대중교통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봉고차만 한 차에는 행선지도 보이지 않고 딱히 정류장도 없어 승객들이 원하는 곳이면 내려주고 있는 것 같다.
콥트교도들이 거주하는 올드 카이로
카이로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올드 카이로에는 콥트 박물관을 비롯하여 세인트조지 수도원 메리콥트 정교회 아기예수피난 교회 등 그리스도 교회들이 남아 있다.
이제까지 이집트를 이슬람 국가로 알고 있었는데 국민의 10% 정도가 콥트교를 믿고 있다고 한다. 콥트교는 5세기경 로마의 비잔틴과 마찰을 빚다가 이단으로 내몰린 후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이집트가 이슬람화 되어가는 과정에서도 수천 개의 교회에서 예배가 열리며 콥트 정교회 신도 수는 20세기 후반기부터 증가하고 있다. 아프리카 각국에 기독교를 전파하는 근거지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으나 이슬람 정부의 차별을 피해 미국이나 호주 등으로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동굴교회라고도 하는 아기예수피난 교회는 성 헤롯왕의 박해를 피해 아기 예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교회 지하 동굴에 피신했던 곳이다. 교회 안에는 12 사도를 표현하는 12개의 기둥이 있는데 붉은색으로 세공되지 않은 기둥은 가롯 유다의 성화라고 한다.
이슬람 카이로
뉴카이로의 동부에는 중세 이슬람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역사적 건축물이 많아 이슬람 분위기가 물씬 풍겨 나는 곳이다. 카타이 성벽을 중심으로 한 시타델 지역과 아즈하르 모스크를 중심으로 칸 엔 칼릴리 시장이 있는 아즈하르 지역으로 나뉜다.
이집트의 만물상이라 불리는 칸 엔 칼릴리 시장
알 아즈하르 모스크 맞은편에는 1382년에 개설된 재래시장이 있다. 좁은 골목길에는 향신료와 옷 보석 골동품 등을 파는 작은 상점과 노점들이 가득하다. 마치 우리의 남대문 시장과 같은 분위기인데 원달러를 외치며 달려드는 상인들의 호객 행위가 대단하다.
한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 곳으로 '조르디'라는 상점과 엘 피샤위라는 카페도 시장 안에 있다. 도대체 정가가 얼마인지 모르는 상품은 부르는 게 값이다. 그중 정찰제를 시행하고 있는 곳이 '조르디'다. 엘 피샤위라는 카페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는데 아랍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은 아랍 문학계의 큰 별 '나집 마흐푸즈'를 탄생시킨 카페로 노벨상을 받은 작품의 대부분을 이 카페에서 썼다고 한다.
아기 모세의 이야기 있는 성서의 땅은 이슬람화가 되었지만 아직도 콥트교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는 다음을 기약하고 이집트의 신화가 녹아있는 신전들을 보기 위하여 아스완행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집트 여행에서 만나는 유적이나 유물은 최소 몇 천 년이 넘는 오래된 것들이니 100 년 밖에 안 된 열차는 최신의 운송 수단이라고 할 수 있으나 여행 중 가장 최악이었다. 생각나는 것이라고는 하룻밤 내내 콧가를 맴도는 화장실 냄새와 큰 캐리어를 제대로 펼 수조차 없었던 좁은 객실과 열악한 식사다.
그저 지난밤 기내에서 앉아서 자야 했던 것에 비해 몸을 누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정도다. 창가를 스쳐가는 허름한 도시는 어둠이 내려앉자 더욱 음산해졌다. 갑자기 아가사 크리스티의 '오리엔탈 특급살인'이라는 미스터리 소설이 떠올랐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멋진 열차보다는 잔잔한 평화가 깃든 허름한 기차가 낫지 않을까 하며 잠을 청했다.
룩소르쯤일까? 야자수의 푸르름과 나일강이 어우러지며 노새가 끄는 마차를 타고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