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강선 타고 여주로 가볼까요?

세종대왕릉 역, 세종대왕릉, 신륵사, 명성왕후 생가, 황학산 수목원

by 마미의 세상

쌀과 도자기의 고장 여주는 차가 막히지 않으면 서울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반이면 갈 수 있지만 주말이면 늘 교통체증으로 짜증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 전철만으로 여주에 갈 수 있다. 신분당선 판교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세종대왕릉역에 내리면 된다.


여주가 한적하고 청정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세종대왕의 릉이 있어서일까? 조선시대 스물일곱 임금님 중 대왕이라 칭하며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세종대왕께서 영면하신 곳이다. 세종대왕은 누구보다 백성을 사랑하셨다. 그분의 치적 중 으뜸은 백성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우리의 '한글'을 만들어 주신 것이다. 그 외에도 대마도를 정벌하는가 하면 천문과 과학 정치 등 여러 분야에 수많은 업적을 남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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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효종대왕의 영릉(寧陵)

세종대왕은 처음에는 아버지인 태종의 헌릉 근처에 소헌왕후와 함께 합장되었으나 풍수가 최양선이 "그 자리는 후손이 끊어지고 장남을 잃는 무서운 자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문종과 단종 그리고 의경세자와 인성대군까지 요절하게 되자 예종은 결단을 내려 여주의 현 위치로 세종과 소헌왕후의 능을 이장하였다. 영릉은 대표적인 조선 전기의 합장릉으로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두르고 능 앞에는 혼이 노닐 수 있는 혼유석 2좌를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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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1019454.JPG 외부인이 궁에 들어갈 때 경건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라는 금천교와 홍살문을 지나면 혼의 길인 향로와 임금의 길인 어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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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英陵)에서 약 700 미터 떨어진 곳에 17대 임금인 효종과 인선왕후의 능이 있다. 게다가 효종대왕의 릉인 영릉(寧陵)으로 가는 왕의 숲길에는 야트막한 언덕길에 멋들어진 소나무가 가득해 산책길로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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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의 영릉 또한 동구릉에 안장했다가 병풍석과 난간석 등이 계속 문제를 일으켜 1673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그 이듬해 인선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효종릉 바로 아래 능을 하나 더하니 동원상하릉(두 개의 봉분이 하나의 언덕에 배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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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한 언덕에 왕과 왕비의 능을 위아래로 위치한 동원 상하릉이다.


영릉의 재실은 현존하는 조선왕릉의 재실 중 안향청 제기고 행랑 등 재실의 기본 형태가 가장 잘 남아 있고 공간 구성과 배치가 잘 되어 있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수령 500년이 넘는 느티나무와 300년이 넘은 회양목과 향나무를 그대로 살려지은 재실은 고고한 우리의 멋을 듬뿍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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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의 5일장이 열리는 전통시장은 '한글시장'

바쁘게 도시 생활을 하다 보면 전통시장보다는 간편한 마트를 이용하게 된다. 여행 중 만나는 전통시장은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다.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진 농수산물과 물건을 팔고 사느라 시끌벅적한 모습에 흘러나오는 유행가까지 더해지면 어릴 적 엄마 손잡고 시장에 가던 추억이 되살아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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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을 연상하게 하는 조형물과 조명이 즐비한 한글시장


남한강가의 멋진 사찰 신륵사

봉미산, 봉황의 꼬리자락에 있는 절 신륵사는 어찌나 아름다운지 예부터 시인 묵객이 즐겨 찾던 곳이다. 어느 날 원효대사가 "봉미산 자락에 연못을 메우고 절을 지으면 큰 가람이 될 것이다"라는 꿈을 꾸고 지었다는 신륵사는 세종대왕의 명복을 빌어주던 원찰로 극락보전이 있다.


법당에는 보물인 아미타부처님과 대세지보살 그리고 관음보살을 모셨다. 희미해진 단청은 절의 오랜 역사를 말해주는데 1800년 정조가 중수한 후로 작은 개보수가 진행되어 현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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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의 말사인 신륵사는 규모가 그다지 크지는 않으나 보물이 여덟 점에 문화재가 일곱 점이나 있다. CNN에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하는 사찰로 뽑은 데다, 나옹선사가 입적한 절이며 세종대왕의 원찰이기에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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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은 절에서 덕이 높은 승려의 초상화를 모시는 건물로 지공화상 무학대사 나옹화상의 영정을 모셨다. 조사당 앞에는 나옹화상에게 살아있는 향을 올리기 위해 심은 향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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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화상이 돌아가시고 세운 부도비는 종모양인 석종부도로 '보제존자 석종'이라 하고 그 곁에는 석종비와 석등이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었다.
L1019586.JPG 대장각비는 신륵사에 대장각을 만든 후 그 내력을 새겨놓은 것이다.


남한강의 물줄기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는 바위 위에 세워진 전탑은 흙으로 구운 벽돌로 쌓은 것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려시대의 전탑이다. 그 당시의 주요한 교통수단이던 배가 남한강을 오갈 때 전탑은 등대의 역할도 했다고 한다. 법당 앞에 있는 석탑에는 용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세종대왕의 원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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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못에 있는 많은 물을 아홉 마리의 용이 머금고 승천했다는 자리에는 구룡루가 있다. 구룡루에 올라 남한강을 바라보면 절로 시 한 수가 떠오른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때면 더 장관인 구룡루 앞 은행나무의 중앙을 잘 살펴보면 나뭇가지가 희한하게 관세음보살 상처럼 보인다. 어느 날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치고 난 후 가지가 부러지면서 이런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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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음 보살상이 있는 은행나무와 구룡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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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스님이 입적한 후 다비를 기념하여 세운 석탑과 멋진 육각형의 정자는 강월헌으로 남한강가에 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명성황후의 생가

여흥 민 씨 가문에서 배출한 세 번째 조선 왕비인 명성황후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서울에 있는 감고당에서 살다가 왕비로 간택되었다. 문정왕후 못지않게 여걸이었던 명성황후는 조선의 문호 개방에 있어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대립하기도 했으나 고종과 함께 뛰어난 외교력으로 개혁을 추진했다. 그러다 극악무도한 일본인들에게 시해를 당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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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은 영조가 효성이 지극했던 인현왕후를 기려 '감고당'이란 편액을 하사한 집이다. 원래 안국동에 있다가 쌍문동으로 옮겨진 후 다시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감고당은 조선 왕조의 두 왕비가 살았던 집이다. 인현왕후가 장희빈과의 갈등으로 복위될 때까지 5년 동안 살았고 명성황후가 여주에서 한양으로 올라간 후 왕비로 책봉되기 전까지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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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고당과 민가

황학산 수목원

다양한 산림자원이 전시되고 있는 수목원은 습지원 등 15개 테마 정원으로 나뉘어 있다. 아직은 이른 봄이라 꽃이나 나무가 푸르지는 않지만 산책로도 잘 되어 있어 종일 이곳만 돌아다녀도 다 못 볼 만큼 많은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좀 더 봄이 무르익을 때쯤 친구들과 도시락 싸들고 피크닉 오고 싶다. 무료이므로 전철만 타고 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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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정도시 여주를 하루에 다 보기는 어렵다. 남한강에서 황포돛배도 타야 하고 목아박물관, 금은모래강변 공원, 여주보, 강천보 등 볼거리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봄기운이 완연해지면 아이들과 함께 강변에서 캠핑을 하며 이곳저곳 둘러보고 세종대왕에서 명성황후까지의 역사 이야기까지 나누다 보면 뜻깊은 여행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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