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도 춥지도 않은 요즘, 산책하기 딱 좋다. 거창에는 황강을 위하여 농경지의 오염원을 정화시키느라 창포와 다양한 식물을 가꿔 놓은 창포원이 있다. 마침 월요일이라 내부 시설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거대한 식물원이었다.
축구장 66개( 424,823㎡ )나 합쳐 놓은 크기라더니 정말 무지 넓다. 걸어서 돌아보기에는 무리라 자전거를 빌렸으나 연휴라 딱 한 시간밖에 안 되는 데다 간발의 차이로 2인승이 아닌 4인승을 빌리는 바람에 정말 제대로 다리 운동을 했다.
가을 아침, 정원이 쾌적해서인지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에 절로 힘이 주어졌다. 휘영청 늘어진 버드나무로 둘러싸인 꽃창포 습지 한가운데에는 분수대가 있다. 누렇고 까맣게 변해가는 연잎과 연밥은 물벼락을 흠뻑 맞은 채 빛났고, 높이 올려진 물이 반짝이며 쏟아지는 모습이 시원했다.
수련원과 연꽃원에는 백련, 홍련, 가시연 또 밤에만 피는 빅토리아 연까지 형형색색의 연이 있다. 징검다리까지 있어 가까이까지 다가가 살펴보았다. 구정물에서도 아름답게 꽃을 피워내는 연, 그 열정과 순수함이 우리에게도 있으면 좋으련만.....
황하 코스모스도 댑싸리도 완연한 가을 색으로 변했고 메타세쿼이어 길의 코스모스도 싱싱했다. 수변 생태공원을 따라 수크령까지! 도대체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이 순간이 길게 이어져 애써 가꾼 아름다운 정원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가면 얼마나 좋을까?
황강을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면 유유히 흐르는 황강과 주변의 완만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테마 정원마다 아주 잠깐씩 눈팅을 했을 뿐인데 벌써 약속한 시간이 다 되었다. 정말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출발지로 돌아왔다.
"에고 다리야"
걸었으면 더 힘이 들었겠지만 자전거로 도는 것도 쉽지 않다. 정말로 넓다. 막 시작되는 가을의 향연에 초대된 힐링의 시간. 이곳에 단풍이 들면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다음으로 찾은 곳은 수승대다. 거창군 위천면에 있는데 과거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란다. 신라로 가는 백제 사신들이 수심에 차서 송별하는 곳이라 하여 수송대라 하다가 퇴계 이황선생이 풍경을 예찬하는 시를 읊자 임훈이 화답 시를 지은 후부터 수승대라 부르고 있다. 조선시대의 산수유람 문화를 엿볼 수 있다.
구연서원은 지방유림인 신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서원을 창건한 곳으로 수승대를 조망할 수 있는 관수루가 있다.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90년 재건되어 현재 거창신 씨 요수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계곡 양 옆으로 길이 있는데 오른쪽 돌담길에는 이곳의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관수루가, 건너편에는 요수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요수정이 있다. 하천의 희디흰 모래펄에서는 아이들이 즐겁게 물놀이를 하는 웃음소리와 물소리가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중간쯤 소란한 소리에 계곡을 바라보니 큼지막한 바위가 시선을 끈다. 바로 거북바위다. 돌담길에서 보면 거북 바위라는 이름에 갸우뚱할 수 있으나 요수정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고개를 빼꼼하게 내밀고 있는 것이 영락없이 거북이다.
Y자형 출렁다리에 이어 거창의 두 번째 출렁다리가 수승대에 있다. 다리 위에서 시원하게 내려다보는 월성계곡의 풍경 또한 놓칠 수 없다.
인공적인 창포원과 달리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선사하는 수승대도 가봐야 한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가을,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진 아름다움 속에 파묻혀보는 것은 어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