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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미의 세상 Jun 01. 2024

사량도에서의 아찔하고 짜릿했던 순간  

몇 년 전, TV에서 사량도 출렁다리에 대한 홍보 영상을 보았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를 잇는 두 개의 출렁다리와 푸른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잔잔한 바다 그리고 마주한 두 섬이 사량대교로 연결되는 멋진 장면을 보고는 꼭 한 번 다녀오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통영까지는 멀기도 한 데다 산 높이가 400 미터나 되고 돌도 많아 악산이라고 한다. 과연 성하지 않은 내 몸으로 다녀올 수 있을까?  그렇게 망설이다 여행하기 좋은 5월, 드디어 마음을 먹었다. 내 생애 가장 젊은 지금 다녀오지 않으면 영영 못 볼 것 아닌가. '그래,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라는 마음이었다


돌아오는 배표도 느긋하게 오후 4시로 예매하고 물과 과일, 떡까지 넉넉하게 챙기고는 그저 날이 좋기만을 바랐다. 그런데 갑자기 전국 날씨가 심상치 않더니 서울을 비롯해 강원지역까지 비바람이 몰아쳤다. 불안해하며 내려간 통영 쪽에는 다행히 큰 비는 내리지 않고 날씨만 흐리고 바람만 좀 세게 불고 있어 가오치항에서 배가 출항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산행은 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수우도 전망대까지 갔다가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총 6.5 킬로미터의 코스다. 맑은 날이면 지리산 천왕봉이 보여 지리망산으로 부른다는 지리산(398 미터)부터 불모산(400 미터)과 가마봉을 거쳐 출렁다리까지 와서는 옥녀봉(303 미터)을 거쳐 사량면사무소로 내려오면 바로 선착장이다.


'수우도전망대 정류장'에서 버스에서 내리면 건너편에 수우도 전망대가 있다. 지도를 보니 앞에 있는 작은 섬은 농가도요, 뒤에 마치 소가 옆으로 누은 듯한 모습을 한 섬이 수우도다. 남해 바다는 동해와 달리 파도가 밀려오는 모습을 볼 수가 없으나  다도해라는 말이 어울리게 많은 섬들이 서로 어깨동무를 한 듯 넓은 바다를 빙 둘러싸고 있어 바다는 마치 큰 호수 같다.


수우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마음이 흡족했던 것은 바로 다음날 저 섬에 있는 해골바위까지 다녀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눈앞에 있는 섬은 직접 갈 수가 없고 가오치 항이 아닌 삼천포 수협활어회센터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만 한다. 이미 가까운 남해에 숙소도 예약을 했다.


등산로 입구를 지나 얼마 동안은 아주 기분 좋은 오솔길이 이어졌다. 약간 경사가 있기는 해도 우거진 나무 사이를 삐집고 들어오는 아침 햇살과 5월의 나무들이 뿜어대는 향이 상큼했다. 지척이 바다인데도 파도 소리는 들리지 않고 조잘대는 새소리만 들렸다.

이곳이 바로 등산로 입구


잠시 후 사진에서 많이 보았던 첫 번 째 암벽이 나타났다. 한숨이 나오며 가슴이 콩닥였으나 남편은 다행히 샛길을 발견했다.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그러나 그날 이처럼 몇 번이나 머리를 써서 평탄한 길을 찾아내도 얼마가지 않으면 또다시 커다란 암벽이 가로막아 기어코 또 다른 암벽을 올라가야 했다.  


솔직히 내가 이 섬까지 온 것은 산행이 목적이 아니라 멋진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데 이 험한 암릉 앞에 나는 일찌감치 두 손을 들고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목에 카메라를 매달고 가다가는 인도에서처럼 카메라를 또 보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악산인 사량도를 오르려면 사족보행은 필수다.  나 같이 겁 많은 사람은 주위의 풍광을 제대로 느낄 겨를도 없다. 혹시라도 발을 헛디딜까 신경을 곤두세우고 두 손과 발이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산 중턱에 올라 바라보는 수우도의 모습은 조금 전 전망대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멋졌다.  확 트인 전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가슴속까지 스며드는 상쾌한 바람이 더해져서?  그도 아니면 스릴 넘치는 암릉 하나를 올랐다는 성취감 때문에? 그러나 이 오름은 아주 작고 시작에 불과했다.


지리산에는 꽤 많은 사람이 다녀간 것 같은데 도대체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가  없다. 길을 가다가 갑자기 암벽에 부딪쳤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모른다. 생김새도 희한하기 짝이 없는 돌은 또 왜 그렇게도 많은 것인지. 파이처럼 생긴 바위들은 비바람에 깎여 조금씩 떨어져 나와 어떤 곳은 바닥이 온통 뾰족뾰족한 투성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울퉁불퉁하고 가파른 바위가 미끄럽지 않다는 것이다. 마치 나는 유격훈련을 받는 기분까지 들었다. 





얼마쯤 오르고부터는 능선이 이어졌다. 섬산행이 좋은 것은 바로 이런 때다. 어디를 봐도 바다가 보였다. 이날 폭풍까지는 아니어도 심상치 않은 바람 덕분에 칼바위길을 걸어갈 때 혹시나 내가 날아가지는 않을까 하고 좀 두렵기는 했어도 거친 산행이 계속되는 동안 별로 땀이 나지 않아 좋았다. 


움푹 들어와 거센 파도의 영향을 받지 않게 생긴 곳에는 어김없이 마을이 있다. 알록달록한 성냥갑 같은 집들이 모여있는 모습은 꽤나 정겨웠다. 


 

드디어 지리산 정상이다. 100대 명산으로 꼽혔다더니 아마도 이 매력적인 능선 때문인 것 같다. 널찍한 암벽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 보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왔다.  아침 일찍 배를 타고 오느라 또 급히 올라오느라 아침을 안 먹었다는 사실까지도 잊고 있었다. 



불모산으로 가려면 다시 산을 내려가야 한다. 다행히 많이 내려가지는 않았지만  얼마나 많은 암릉 사이를 지나쳤는지 모른다.  때론 좁은 바위틈에 몸을 구겨 넣기도 하고 높은 바위를 올려다보며 발 디딜 곳을 찾아 헤매기도 하고 또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다. 아마 이 계단이 없었다면 끝까지 가지 못했을 것이다.  온몸은 벌써 천근만근이었지만 이제는 숙달된 등산가처럼 돌산을 즐기기 시작했다.







아, 꼭 달바위 전망대를 봐야 할까?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어떡해! 하고 망연자실해 있는데 벌써 남편은 저만치 앞으로 가버렸다. 정말 위험한 돌능선 길이다. 그날 바람도 장난이 아닌 데 혹시나 떨어질세라 그 파란 난간을 얼마나 움켜잡았는지 벌써 열흘이 넘게 지났지만 어깨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 그래도 사진을 보니 내가 저런 곳을 다녀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왜 달바위라고 하는지는 다시 저 건너편 산에 가서야 알게 되었다. 





이제부터는 사람이 오르기 어려운 암벽이다.  계단이 계속 이어졌다. 옆으로 눈을 돌려보니 그동안 지나갔던 암벽과는 그 생김새가 다르다. 지나쳐 왔던 바위들은 미끄럽지 않게 울퉁불퉁했지만 이곳의 바위들을 살펴보니 발 디딜 틈이 없다.



드디어 가마봉 도착! 

TV에서 보았던 옥녀봉 출렁다리와 사량대교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고 난이도의 철계단이 있는데 거의 90 도다. 멀리 보지 않고 그저 바로 아래의 난간만 보고 내려갔다. 설악산 울산바위 계단을 오를 때 현기증이 나서 오도 가도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거꾸로 이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도 있다. 나와 다른 코스로 산을 오르는가 보다. 그들은 이제 겨우 이 계단만 올라오고는 다리가 후들거린다고 저렇게 아우성들이다. 난 어깨를 있는 대로 힘을 주며 말했다

 " 아 우리는 저쪽 끝의 수우산 전망대부터 왔는데요"



바로 그때 아가씨들 몇몇이 한바탕 웃으며 우리를 앞질러 가는데 그들은 등산화도 아닌 운동화를 신고 바지도 아닌 긴치마를 입고 있었다. 난 등산 장갑까지 끼고 카메라도 상할세라 일찌감치 가방에 넣고 가는데 말이다. 그러고 보니 어르신들도 간간이 보였다. 내가 아주 힘들게 곁을 지나가자,

"한 팔십 되었어요? 아니면 힘내서 가야지" 아마 그분은 여든도 넘으셨나 보다. 그런데 우리가 이곳에 올 때까지는 별로 사람들이 없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많아졌다.

아마 이 근처 어딘가에서 올라오셨나 보다. 그래도 여든에 여기까지? 


출렁다리 2개의 길이는 각각 39 미터와 22미터로 향봉과 연지봉을 잇고 있다. 어떻게 이 높은 곳에 다리를 놓았을까? 오른쪽으로 사량대교와 하도 그리고 저 너머 옥녀봉의 기암절벽까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또 뒤쪽의  암릉들 또한 뒤지지 않는다. 이곳이 사량도의 최고의 절경을 볼 수 있는 핫포인트다.


그런데 솔직히 출렁다리는 그렇게 아찔하지도 멋있지도 않았다. 아마 칼바위 옆을 지나올 때,  거대한 암릉을 올려볼 때 이미 아찔함을 충분히 맛보았기 때문일까? 출렁다리가 절벽 사이에 있는 모습은 예술이었다.  이 다리가 없었다면 옥녀봉까지 갈 수도 없었을 것이고 또 이 멋진 풍광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옥녀봉에 도착.  사량도의 돌을 잊지 말라는 듯 정상에는 무심한 듯 돌들이 흩어져 있었다. 정말 많은 돌과 함께 독특한 경험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2시 배도 탈 수 있을 것 같다는 욕심이 생겼다. 그냥 사량도에서 해삼 멍게나 먹으며 천천히 나왔으면 좋았을 것을 선착장이 바로 앞이라고 생각해 무리하게 내려왔다. 그런데 바로 앞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읍내는 쉽게 보이질 않았고 끝도 없이 내려와야 했다.  2시 15분 전, 배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저 앞이었으나 당시 나는 두 다리로 걸어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차례차례 다리를 앞으로 겨우 옮기고 있었다. 제시간에 도착은 했으나 선실에 올라가서는 그냥 '갈지'자로 뻗어서 등산화도 벗지 못한 채 끙끙 앓았다. 덕분에 다음날 해골바위는 보지도 못했고 지금까지도 몸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래도 휴대폰에 그 아름답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곳을 걷는 순간에는 사진 찍기 바쁘고 남편 쫓아가기 바빠 제대로 몰랐지만 그 아름다운 모습이 사진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봄에 사량도에 가면 좋다고 하지만 나는 가을 단풍이 들었을 때가 더 멋스러울 것 같다. 


그래도 순간순간의  바다 풍경과 함께 암벽을 탔던 짜릿한 기억이 남아 있다. 암벽등반이라는 표현을 하면 산악인들이 웃을지는 몰라도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기에 사량도에 대한 기억은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여름이면 이순신 공원에 탐스러운 수국도 만발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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