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 피아체 비바이, 야스다 칸, 오타루, 오르골, 시로이 고이비토
오타루 하면 영화 러브레터에서 여주인공이
"오겡키데스까? 와다시와 겡키데스"
라고 외치는 애절한 장면이 떠오른다. 촬영되었던 곳이 어디쯤일까 하고 기억을 더듬고 있을 때 오르골 당 앞의 시계탑에서 하얀 증기가 모락모락 하늘로 올라갔다. 15분마다 뿜어져 나오는 증기에 관광객들은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며 좋아한다. '오르골당 본점'앞이다. 사람들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 보니 내부에는 세상의 오르골을 다 모아놓은 것 같다. 서로 자기를 봐달라고 화려한 자태에 낭랑한 소리를 내고 있어 정신이 없다. 오르골은 2개 층까지 전시되어 있는 데다 2층에는 오르골 박물관까지 있다.
한참 동안 돌아보다가 외부로 나왔더니 쌓인 눈 때문인지 오르골 때문인지 마음이 몽글몽글해졌고 어질어질하기까지 하다. 도로에 내린 눈은 10 센티미터 넘게 쌓였고 완전히 빙판이라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쌓인 눈을 자세히 보면 깨같이 작은 돌이 보이는데 이는 미끄럽지 말라고 뿌려 놓은 것으로 우리처럼 마구잡이로 염화칼슘을 뿌리지는 않았다.
사카이마치 도오리에는 옛날에 사용하던 창고가 그대로 남아 있다. 조금씩 개조한 창고는 작은 가게나 잡화상 또는 유리공방으로 운영하고 있다. 홋카이도 특유의 음식점 앞에는 음식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이 이어졌고 관광객들은 이 거리의 분위기에 흠뻑 젖어 있었다.
오타루의 운하를 보고는 솔직히 실망했다. 이 운하에 배가 떴었다고? 파리의 세느강이나 영국의 템즈강 앞에 섰을 때와 같은 마음이다. 이럴 때마다 우리의 한강이 정말 아름다운 것 같다. 하지만 창고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그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한 것은 좋다.
홋카이도 하면 비에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당연히 비에이에 가는 줄 알았다. 덕분에 하얀 설경 속에 가지런히 서있는 자작나무의 호젓한 모습과 괴기하게 흐르다 얼어붙은 흰 수염 폭포는 보지 못했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비에이는 삿포로와 멀리 떨어져 있어 오고 가는데만 8시간이 걸려 3박 4일 일정으로는 어렵단다.
그날 흰수염폭포에서 관광객의 낙상으로 보이는 사망사고가 있었다. 얼마 전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것이 못마땅한 주민들이 자작나무를 모두 베어버렸다는 충격적인 소식도 들었는데 이제는 폭포까지 폐쇄되는 것은 아닐까?
비바이는 눈 축제 기간인데도 관람객은 우리뿐이었다. 허리만큼 쌓인 눈 속에 보이는 것은 덩그러니 학교 건물뿐이다. 탄광지역이었던 비바이가 폐광이 되고 점점 인구가 줄어들자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단다. 이에 이 지역 출신의 세계적인 조각가 야스타 칸은 안타까운 마음에 자기의 조형물들을 기증했고 학교는 아르떼 피아체 비바이라는 박물관으로 태어나게 되었다.
빨간 지붕의 체육관이며 국기 게양대를 보니 학교였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넓이가 7만 평방미터나 되는 뮤지엄에는 눈이 허리만큼 쌓여 있어 처음 그곳에 간 우리는 숨바꼭질하듯 작품을 찾아다녀야 했다. 다행히 운동장 근처에 있는 몇 개의 작품들 앞의 눈은 치워져 있었다. 소박하고 단순한 그의 작품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겨울이 아닌 봄가을에 초록빛 속에 보면 훨씬 좋을 것 같다.
작품은 실외뿐만 아니라 학교 교실 안에도 있다. 실내에는 모금통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모아진 기부금이나 작은 기념품을 판 돈으로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주로 대리석과 철근을 이용하여 만들었단다. 차 한 잔 마시며 창 밖을 내다보니 저 멀리 산자락에도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것이 우리는 아주 일부만 보고 온 것 같다.
홋카이도의 대표 과자는 시로이 고이비또(하얀 연인)다. 영화 러브레터에 나오는 하얀 눈 속의 연인들을 상상하며 과자를 만들었을까? 맛은 우리의 '쿠크다스' 과자 맛인데 이름 때문인지 우유 맛이 많이 나서인지 '시로이(하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제과사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는 캐릭터를 보자 환갑이 넘은 우리들의 마음도 괜스레 출렁거렸다. 건물 내부는 평범했으나 외관은 아기자기해서 좋았다.